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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8 컬쳐

새봄, 새 출발, 새로운 영화제 -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2024.05.07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을 지나고 있다. 속신에 따르면, 이날 농촌에서는 몸이 건강해지길 바라며 물이 괸 곳을 찾아가 개구리나 도롱뇽의 알을 건져 먹고, 흙을 만지는 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벽에 흙을 바르거나 담을 쌓고, 고로쇠나무나 단풍나무의 수액(水液)을 마셔 속병이 나지 않도록 준비한다고 한다. 하나같이 지난겨울을 지나며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축원일 것이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3월. 1월과 2월을 허망하게 보내버린 게 아닐지 괜히 마음이 분주하고 조바심이 나려는데 옛사람들의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절기의 힘에 기대며 다시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경칩을 지나면서 비로소 몸과 마음에 새바람이 도는 듯 이제야 신년이 시작되는 것 같다.
국내의 영화제들도 하나둘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한껏 경직된 시장 상황과 그보다 더 팍팍해진 지원 정책 속에서 좀처럼 긍정적인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 구체적인 문제를 짚는 일은 다른 기회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 대신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뭔가를 시도하고 그리하여 돌파해 즐거운 놀이의 터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이다. 영화제 이름에서부터 말하고 있듯,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로 영화제를 만들자고 도모해, 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반짝’ 열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제다. 올해는 3월 29일부터 3월 31일까지 홍대에 있는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된다.
이 영화제의 전신이라고 해도 좋고 이 영화제가 시작된 연유 혹은 버팀목이라고 해도 좋을 영화제가 있다.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관심을 가져온 관객이나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2001년에 시작한 인디다큐페스티발이다. 매년 3월 말 6일간 국내외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집중적으로 상영하고 신진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영화를 소개하며 제작 지원까지 시도해왔다. 작품을 발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독립 다큐멘터리스트들 간의 의미 있는 만남과 연대, 네트워크의 자리를 만들려 시도했던 거점이기도 했다. 2020년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사(史)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하나의 장(張)임이 분명하다.

글. 정지혜

미약하지만 위대한 시작
영화가 단지 만든이의 자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만들어진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영화 매체의 오랜 과제이자 질문이며 어쩌면 영화를 영화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영화제 하나가 사라진 게 무슨 큰일인가 싶다가도 영화는 결국 보는 이가 있을 때 완성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랜 역사의 영화제가 사라졌다는 건 커다란 상실감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소위 말하는 주류, 대중, 상업 영화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영화, 특히 상대적으로 볼 기회가 많아 익숙한 극영화와는 또 다르게 진입 장벽이 높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떻게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 게다가 대규모 제작 지원을 받는 방송사 자체 다큐멘터리나 각종 국제영화제의 피칭 프로그램이나 펀딩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면 관객을 만날 기회는 더 줄어든다. 사비를 털어서 만들거나 얼마 되지 않는 공적 지원금으로 제작된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고 동료 다큐멘터리스트들과 교류하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런 갈증과 질문을 안고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영화제를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한 게 바로 반짝다큐페스티발이다. 국제적 규모의 영화제가 놓치거나 덜 주목하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하고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 터이다. 기존의 영화제 심지어 인디다큐페스티발의 개최 방식과도 얼마간 다른 자신들만의 영화제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상영 활동가들이 호스트가 돼 영화제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상영작 감독들은 게스트로서 참여하는 게 통상의 영화제라면 반짝다큐페스티발은 완전히 그 반대다. 감독들이 직접 호스트가 돼 기획, 운영, 현장 진행까지를 모두 책임진다. 객이 아니라 주인장으로 해야 할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또한 기존의 영화제라면 있을 법한 사무국 체제를 두기보다는 일단 최대한 몸집을 가벼이 하는 쪽을 택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영화제가 열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칫 갖게 하는 부담과 경직보다는 그때그때 참여할 수 있는 감독들이 있다면 운영을 시도해보자는 쪽이다.
출품 요건도 눈에 띈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3회 이상 상영된 적이 없는 60분 미만의 중단편 다큐멘터리, 제작 연도 제한 없음, 출품 시 한글 자막 필수.’ 기성의 영화제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또는 ‘국내 첫 공개’ 등의 수식어를 앞다퉈 가져와 일종의 ‘셀링 포인트’로 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길이다. 비교적 덜 알려졌거나 상영할 기회조차 없었던 영화를 주목한다. 신작 중심으로 편중된 영화제 라인업에서 완전히 배제된 구작을 발견, 발굴하려는 의지의 반영이다. 한글 자막이 필수인 것도 그렇다. 심사위원, 관객 모두 비장애인 중심으로 생각해온 영화제의 오랜 관행을 벗어나려는 시도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영 후 진행되는 모든 관객과의 대화에 수어와 문자 통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반짝다큐페스티발은 폐막식을 대신해 ‘내년에도 반짝다큐페스티발을 계속할 수 있을까’에 관한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올해 두 번째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열린다. 공모를 통해 150편의 작품이 접수됐고 그중 29편이 최종 선정됐다. ‘실험’, ‘발굴’, ‘호흡’이라는 올해의 슬로건에 어울리는 영화들, 그 어느 곳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색다른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올해 영화제에서 만나게 될 창작자들과 관객들이 나눌 이야기가 아마도 내년 봄 반짝다큐페스티발의 씨앗이자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절대 가볍지도 않은 시도의 영화제로 봄날을 맞아 보는 것도 꽤 산뜻한 출발이 되지 않을까 싶어 권해본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영화에 관해 말하고 쓰며 영화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한다. 영화와 글쓰기, 그 사이에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하고 도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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