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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8 에세이

어쩔탱고 - 주의력 경찰, 탱고

2024.05.08

글. 최서윤

전문가의 진단을 받지 않고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신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만 의심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내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ADHD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ADHD 자가진단 항목이 온라인 공간에 돌아다니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슬쩍 들여다봤는데, 상당히 많은 내용이 내 특성과 겹쳤다. 책을 읽거나 대화하는 도중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그러면서도 또 어떤 일에는 과도하게 집중한다. 조심성 없이 실수를 많이 한다. 일을 순리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즉각 말한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차례를 기다릴 때 초조하고 답답하다 등등….
최근 Y가 산만하고 쉽게 주의가 분산되는 내 성향을 지적했다. Y는 이렇게 물었다.
“너 뭐 꾸준히 하는 게 있기는 하냐?” 일단 스스로를 방어했다.
“그래도 나, 한번 시작하면 엄청 열심히는 아니어도 근근이 계속하지 않아?”
“너 요즘도 그림 그리고 있어? 연기 수업은?”
내가 몇 개월 신나게 즐기다 요즘에 안 하는 게 뭔지 Y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너무 정확해서 푹,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혔다. Y의 ‘비수 날리기’가 있기 전, 나는 Y에게 요즘 소설 쓰기에 빠져 있다고 얘기했다. Y는 아마 이건 또 얼마나 가려나 싶었나 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강백호의 심정이다. 채소연 앞에서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라고 말했던.

소설 잘 쓰고 싶은 마음
갑자기 웬 소설인지 의아한 독자가 있을까 싶어 소설이란 무엇이고 왜 쓰는지 너무 잘 정리해놓아서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에 새겼던 몇몇 구절을 소개한다.


가장 짧은 대답은, 진실을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에요. 단순히 사실을 합쳤을 때보다 더 많은 진실을 말해주는,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정돈된 거짓말을 만드는 과정인 셈이지요. (…) 위대한 책은 이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사 능력이나 성격 묘사, 문체 같은 특징을 제외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해서나 정서적인 면에서, 아니면 둘 다에 대해 새로운 진실을 말해준다고 인식되는 책이지요.
– <작가란 무엇인가 3>, 줄리언 반스와의 인터뷰 중


목적이란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가? 무엇을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가? 도대체 진실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조금이라도 평화를 느낄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결국 우리를 그들과 거칠게 떨어뜨려 놓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기뻐하며 살겠는가? (알잖나, 그 명랑한 러시아식 커다란 질문들.)
–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중


거짓말이 허용됐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 재미있지 않은가? 쓰면서도 재미를 느꼈다. 현실에 불화하는 인물이 또라이같이 굴어 발생되는 갈등을 상상하며 키득거렸고, 큰 붓으로 휙휙 그림 그리듯 담대하게 거짓말을 써나가며 즐거웠다. 문제는 쓰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읽는 사람도 재미를 느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읽는 사람에게도 재미를 주고 싶었다. 전문가와 글 친구의 피드백을 듣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돈으로 해결책을 사기로 했다.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소설 합평 수업을 등록한 것이다. 순서를 돌아가며 한 주에 두세 편의 소설이 공유되고, 그 주 작품을 공유한 수강생은 다른 학우들과 선생님으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수업이었다.
최근 내 소설을 보여주고 받은 피드백을 정리해보면 대충 이렇다. 인물 설정이 참신하고 대화도 흥미로워 톡톡 튀는 매력이 있지만, 중심 갈등이 무엇이고 그로써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말이 무엇인지, 독자로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따라가야 할지 헷갈렸다고 했다. 즉 이야기가 산만하게 느껴진다는 것. 아무래도 나, 소설을 쓸 때도 주의력이 부족했나 보다…. 플롯과 주제에서 벗어나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농담을 주저리주저리 써내려가다 보니 쓸데없는 부분이 길어지고 방향도 잃었던 것이다.

일단 약물 말고 춤으로
앞으로 좀 더 간결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잊지 않은 채, 소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한눈팔지 않고 직진하는 시도와 훈련을 지속해야지 생각하다가, 이 문제가 소설만의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동안 ‘어쩔탱고’도 늘 길게 써오지 않았던가? 거의 A4용지 기준 3장 정도였다. 요즘 세상에 그 긴 글 다 읽은 독자분들이 얼마나 됐을지 의심스러워졌고, 혹여 그동안 꾸준히 읽어주신 분들이 계신다면 진정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약속. 앞으로는 글을 좀 더 짧고 밀도 있게 쓰겠다.(물론 소설도 꾸준히 쓸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ADHD를 의심하면서 왜 병원에 가지 않고 있나? 아직은 춤으로 해결(?)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맛 좋고 밥과 무척이나 잘 어울려 그거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인, 마치 밥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게 하는 반찬을 ‘밥도둑’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간장게장이, 또 누군가에게는 스팸이 밥도둑일 것이다. 이에 대응되는 단어로 ‘밥경찰’이 있다. 해당 반찬이 나오면 밥맛이 뚝 떨어져 결과적으로 밥을 지켜준다는 뜻이다.
주의력에도 도둑과 경찰이 있다. 탱고는 도둑이자 경찰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재미있어서 주의를 독점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의력을 향상시키고 지켜준다는 맥락에서다.(그러니 ‘밥경찰’과는 쓰이는 맥락이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으로만 경험한 현상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몰리세 대학의 다비데 비지아노(Davide Viggiano)와 그 동료들은 집중력 장애 ADHD가 있는 청소년들이 10분 정도 뒤로 걷기가 포함된 두 달 동안의 훈련 프로그램을 마친 후 그들의 주의력이 뚜렷이 개선되었으며, 객관적인 테스트에서 충동성이 명확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뒤로 걷기는 당신이 춤을 출 때 덤으로 받는 주의력 훈련인 셈이다.
나는 탱고를 춘다. 한 가지 춤에 종종 15분까지 걸리는데, 탱고 무도회의 밤에 나는 평균 여섯에서 열 가지 춤을 춘다. 여성인 나의 춤동작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뒤로 움직인다. 이제야 내가 탱고를 추게 된 후 주의력이 좋아진 까닭을 알겠다.


자,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 30초씩 뒷걸음질로 화장실을 가든지, 아니면 간단히… 춤을 추러 가라! 춤에는 뒤로 걷기가 포함돼 있으니까.
– 장동선‧줄리아 크리스텐슨, <뇌는 춤추고 싶다> 중


요즘 고작 한 달에 한 번 출 정도로 탱고를 다소 멀리하고 있었는데(이것 역시 주의력이 분산됐기 때문일 것…), 3월부터는 차차 다시 늘려가볼 작정이다. 주의력 결핍으로 고민되는 독자분들도 탱고를 시도해보는 것이 어떨지!


최서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게임 <수저게임>, 영화 <망치>를 만들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 <미운청년새끼>(공저)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onthl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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