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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1

청년이 제 힘으로 제 집 찾는 새로운 방법

2020.02.21 | 사・경・해! 사회적경제로 해법 찾기

26세. 유럽 청년들이 부모에게서 떨어져 자립하는 평균 나이다. 같은 연령대의 우리나라 청년은 열 명 중 서너 명이 자립한다. 나머지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이다. 이는 부모 세대는 물론, 청년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다. 캥거루족의 우울감이 자립한 청년에 비해 2.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청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몇몇 사람은 사회적경제에서 해법을 찾았다. 사회적경제는 민주적 참여를 통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공동의 조직을 만들어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빅이슈코리아는 '사회적경제로 해법 찾기, 사・경・해' 시리즈를 통해 주거, 일자리, 경제 등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들의 생생한 삶은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유튜브와 빅이슈코리아 웹사이트에서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스물네 살 김용남 씨는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 입학하면서 부모의 집에서 나왔다. 그러나 자립하진 못했다. 그의 첫 번째 집은 학교 기숙사 2인실이었다. 이따금 하는 아르바이트로는 한 달에 60만 원인 기숙사비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부모에게 손을 벌렸다. 졸업 후 시험을 준비하면서, 용남 씨는 기숙사를 비워야 했다. 다달이 학원비로 쓰는 돈은 45만 원. 집을 구하려면 최소한 월 50만 원은 줘야 했다. 용남 씨는 이번에도 부모의 도움으로 5평 남짓한 반지하 방을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40만 원 조건으로 구했다.

그와 동갑내기 김동은 씨는 5년 전인 대학교 1학년 때 부모에게서 독립했다. 동은 씨가 구한 집은 부천의 한 셰어하우스. 용남 씨와 달리, 그는 방학 때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받은 돈을 모아 직접 방을 구했다. 책상과 침대, 옷장을 두고도 여유 공간이 널찍한 1인실의 월세는 약 20만 원. 입주할 때 낸 30만 원 외에는 따로 보증금이 없어 부담이 없었다. 이제 대학교 마지막 학기지만 집을 옮길 걱정도 없다. 입주 기간에 제한이 없어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 중 한 명은 가상 인물, 다른 한 명은 실제 인물이다. 누가 실제일까? 동은 씨는 실제 인물이고, 용남 씨는 최근 통계를 바탕으로 구성한 대한민국 청년의 표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동은 씨처럼 청년이 자기 힘으로 독립된 공간을 갖는 건 꿈같은 일이다. 주거비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혼자 사는 청년은 월세로 평균 49만2천 원을 낸다. 국토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1인 청년가구를 위한 주거복지 정책 방향' 연구에 나온 금액인데, 올해는 더 높아졌을 수 있다. 이는 소득이 있어도 부담스러운 액수다. 교육부가 주관한 '2018년 고등 교육기관 졸업자 취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한 달에 2백44만 원을 번다. 월급의 5분의1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셈이다. 청년들이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라 불리는 열악한 집을 선택하거나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캥거루족이 되는 이유다.

동은 씨는 어떻게 스스로 힘으로 집을 구했을까. 동은 씨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두더지하우스'에 산다. 두더지하우스는 부천의 청년 조직인 모두들청년주거협동조합(이하 모두들)이 공급하는 공동체주택이다. 공동체주택이란 입주자들이 공동의 공간에서 공동체 규약을 갖추고 공동체 활동을 생활화하는 주택을 말한다(주택법 제2조). 모두들의 특징은 모두들이 보증금을 지원해 청년들이 목돈 부담 없이 입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입주 후에는 원하는 만큼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 방이 대부분 1인실인데도 평균 비용이 27만 원(월세와 조합비 합계)으로 주변 시세의 70% 수준이다.


보증금 없이 독립…
서로의 '집사람'이 되는 공동체주택


"두더지하우스에 오면서 진로를 더 탐색하고 실험할 시간을 번 느낌이 들어요. 주위를 보면 취업을 준비하다가도 당장 한 달을 버티기 어려워 급하게 직장을 찾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아직 100% 독립은 못 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독립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도 생겼어요."

스물다섯 살의 취업 준비생 김혜정 씨는 동은 씨의 '집사람'이다. 집사람은 하우스메이트를 일컫는 모두들만의 호칭이다. 혜정 씨는 원래 친구와 전세 보증금 6천5백만 원을 절반씩 부담하며 자취를 했다. 부모에게 지원받은 금액에 일부 대출을 더해 구한 집이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당장 다른 집을 구해야 하던 차에 동은 씨의 소개로 3개월간 두더지하우스에서 독립을 연습해볼 기회를 얻었다. 두더지하우스로 온 뒤, 혜정 씨의 보증금 부담은 이전에 비해 99%가량 줄었다.

이런 혜택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들이 사회적경제 조직의 한 형태인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란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조합원들이 협력해 물자를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조직이다. 모두들은 조합원이 십시일반 모은 자금으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지역 청년들에게 저렴한 공동체주택을 공급한다. 두더지하우스에 새로 입주하는 사람 역시, 처음에 모두들에 30만 원을 출자해 거주조합원이 돼야 한다. 거주조합원이 되면 두더지하우스에 입주할 권리를 얻고, 주택의 운영이나 조합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게 된다.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겨요. 분기마다 집사람들과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집의 날' 지원금이 나오는데, 그 액수도 조합원들이 직접 정해요. 각자가 목소리를 더 내면 1년 예산에 그대로 반영되죠.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어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내 의견이 반영되는 경험을 하면서 자부심도 느껴요." (김동은)

협동의 정신은 집 안에서도 발휘된다. 두더지하우스의 집사람들은 매월 '집 회의'를 통해 생활 규칙을 정한다. 회의에서 정한 액수만큼 생활비를 걷어 생활용품과 식재료를 구입하고, 같이 영화를 보거나 맛집 탐방을 다니기도 한다. 각자 회계 담당, 논의 담당, 사랑 담당 등 역할을 맡는데, 나이 불문 상호 존대, 또는 상호 반말을 하는 평등한 분위기다. 사랑 담당인 혜정 씨는 집사람들과 파티를 하거나 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혜정 씨는 전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 "혼자 살았다면 정서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순간에도 긴장을 유지할 수 있어 도움이 돼요. 친한 친구랑 살 때는 오히려 할 말을 못 하거나 다투기도 했는데,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 전보다 편하죠."

동은 씨와 혜정 씨가 사는 두더지하우스 2호는 사회투자지원재단의 '터무늬 있는 집' 사업을 통해 혜택이 한층 보강됐다. 터무늬 있는 집은 청년 주거 문제 해결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무이자(또는 최대 1%)로 출자하면, 재단이 이를 지역의 청년 공동체에 전세 보증금과 사업비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2호집은 덕분에 화장실 환기구 공사나 가구 구입비를 지원받고, 다 같이 취미 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갈 수 있는 공동체 지원비도 활용하게 됐다. 재단의 보증을 통해 장기로 임대계약하다 보니 갑작스럽게 보증금이 오르거나 집이 재개발에 들어갈 걱정도 덜었다. 실제 입주한 청년들은 이전에 비해 보증금을 94%나 줄였다고 한다. 터무늬 있는 집은 서울과 경기 부천, 시흥 등에 총 열네 채의 공동체주택을 지원하고 있다.


취향과 가치관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 주거
주거협동조합, 사회적주택, 공유주택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 주거의 종류는 다양하다. 두더지하우스 같은 공동체주택은 구성원이 함께 공동의 생활 규칙을 정하고, 공동체를 이뤄 함께 생활하는 것을 강조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방 하나를 여럿이 공유하거나 부엌, 화장실 등 공용 공간을 공유하는 공유주택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생겼다. 공유주택은 독립된 세대에서 살면서 서로 관심사를 나누는 이웃으로 살아가는 '코하우징' 방식도 있다. 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사회투자지원재단 터무늬제작소장)은 "최근 1인 가구가 늘고 '느슨한 이웃'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모델이 많이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하 민쿱)도 협동조합 형태로 공동체주택 '달팽이집'을 공급한다. 민쿱은 청년의 문제를 청년 당사자가 직접 해결하자는 취지로 2014년 발족했다. 청년이 자본금을 출자해 주택을 임대하고, 이를 청년을 위한 공동체주택으로 공급한다. 30만 원을 출자해 입주조합원이 되면, 시세의 50~80% 이하로 원하는 기간만큼 거주할 수 있다. 단, 연령제한이 있어 만 19~39세만 입주가 가능하다. 입주한 청년들은 주택 관리, 행사 기획, 기록 등 역할을 맡아 주택을 함께 운영하게 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 부천, 전북 전주 등에 총 12호의 달팽이집이 공급돼, 현재 약 2백 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서울의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조합원 여럿이 출자금을 모아 집을 매입하거나 신축하는 코하우징 주택이다. 2020년 3월 입주 예정인 '함께주택' 3호는 서울시의 땅을 저렴하게 장기 임대해 조합원들이 살고 싶은 건물을 직접 설계하고 내부 인테리어에 참여하기도 했다. 1~2억 원 선인 임대 보증금은 건축 비용을 기준으로 정하는데, 월 사용료 등 세부적인 비용은 입주자들이 회의를 거쳐 직접 결정한다. 조합이 직접 소유하기 때문에 최대 10년까지 거주할 수 있으며, 향후 보증금 인상이나 관리비 걱정이 없다. 지금까지 서울에만 총 3호를 공급했다.

공공 기관에선 '사회적주택'이란 이름으로 청년 주거를 지원한다. 공기업이나 지자체가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지역의 사회적경제 주체가 이를 운영하는 형태다. 모두들과 민쿱 같은 공동체주택도 일부는 공기업의 임대주택을 위탁받아 인근 시세의 50~80% 수준으로 청년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대표적인 지원 기관이다. 서울 등 지자체들도 지역 내 빈집이나 민간 주택을 매입해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에게 공급하고 있다. 채준배 한국사회주택협회 조직국장은 "최근 사회주택이 시중의 셰어하우스보다 임대료나 공간의 질 측면에서 좋은 공간을 많이 공급하고 있으나, 이 역시 민간 업체와 입주자가 계약을 맺는 것"이라며 "보증금 미반환 가능성 등 위험요소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높은 주거비와 취업난에서 벗어나 지방에서 살도록 돕는 공간도 생겼다. 문화기획사 (주)공장공장은 전남 목포 구도심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괜찮아마을'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6주간 셰어하우스에서 생활하는데, 이 동안 함께 여행하고 휴식하며 목포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작당하며 시행해본다. 2018년 괜찮아마을 1, 2기 청년 60명 중 23명은 목포에 남아 취직하거나 공방, 채식 식당 등을 창업했다. 경북 상주에선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충남 금산에선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 경남 남해에선 팜프라가 청년 주거와 삶의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다. 이들의 공동체엔 지・옥・고도, 캥거루도 없다.


주거 안정 해법을 찾는 청년이 정보를 얻을 만한 기관

모두들청년주거협동조합 modoodeul.com
터무늬 있는 집 themuni.co.kr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minsnailcoop.com
한국토지주택공사(LH) www.lh.or.kr
서울주택도시공사(SH) www.i-sh.co.kr
서울시 사회주택플랫폼 soco.seoul.go.kr/soHouse/index.do


박혜연
'빅이슈' 객원기자.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과 솔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전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 기자.

사진 성수한・최두용
사진제공 모두들청년주거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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