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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7 컬쳐

몽골의 보르또

2020.10.30 | 온 더 로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고층 건물이 즐비하지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 넓은 나라가 온통 평원과 사막뿐인 자연 그대로의 땅이었다. 포장도로가 거의 없었으니 몽골을 여행하려면 4륜구동 지프를 이용하는 게 필수였다. 내가 묶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여행자들을 모집해 지프 운전자를 알선해주고 있었다. 보름 일정으로 고비사막을 다녀오는 코스에 빈자리가 하나 있는 것을 보고 선택했다. 일행은 모두 여섯 명이었고 국적은 제각각이었다.

우리가 고용한 운전사는 그의 어린 아들을 조수석에 태우고 다녔다. 부자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yes나 no조차 몰랐다. 우리는 보름 동안 손짓, 발짓, 몸짓을 동원해 소통했고, 때때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의 이름은 ‘보르또’였다. 열두 살이었지만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여정을 돕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였다. 아마도 여행자들을 실어 나르는 일이 벌이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운전사는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고 틈틈이 아들에게 일을 가르쳤다.

하루 종일 벌판을 달리다 잠시 쉬어가고 있을 때였다. 보르또가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걸어왔다. 둘 다 그림 실력이 미천해서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답답해하던 보르또는 다짜고짜 내 팔을 잡아끌며 앞장섰다. 우리는 함께 작은 언덕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보르또는 자기 아지트에 나를 데려온 것처럼 기뻐했다. 여정 내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였던 보르또는 환하게 웃으며 활기 넘치게 주변의 바위를 타고 넘으며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보르또는 오랫동안 내 안에서 맴돌았다. 아이를 그리워하다 보면 종종 코끝이 찡해왔다. 하지만 동정은 금물이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라는 책에서 브라질 정글의 원시 부족이 그렇게 단순하고 미개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들은 단지 우리와 다른 사회를 가진 것일 뿐이라고. 세상에 우월한 사회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든 고유한 정서와 풍토의 차이만이 있을 뿐. 몽골을 여행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당시의 나는 20대 중반이었는데, 지금의 보르또는 어른이 되어 당시의 나와 비슷한 또래가 되어 있겠지. 보르또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운전사가 되었을까? 언젠가 인연이 되어 몽골을 다시 가게 된다면 보르또를 꼭 수소문할 것이다.


·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사람이 만든 풍경에 대해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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