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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4 커버스토리

전설은 현재진행형 2

2021.02.10 | <아르미안의 네 딸들> 작가 신일숙 인터뷰

※ 본 기사는 이전 기사 <전설은 현재진행형 1>에서 이어집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명장면

모계사회를 판타지물로 그린다는 기획을 처음 편집부가 접했을 때 반응도 궁금합니다.
획기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그렸어요. 출판사 사장님은 재미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때는 편집부라는 게 따로 없었어요. 제가 알아서 한 권을 그려 가면 출판사에서 마음에 들면 사고 안 들면 안 사는 식이었어요. 책을 계속 내며 어느 정도 인정받은 작가는 신작을 가져가면 대체로 사주기는 했죠. 그 대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격이 별로 안 올라가죠.


가격이라면 매절로 계약한 건가요?
매절과 비슷한 거죠.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지만 책을 몇 쇄를 찍든 작가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출판사에서도 순정 만화라서 별로 돈이 되지 않으니까 끼워 팔기 정도로 생각했어요. 당시 박봉성 선생님이 <신의 아들>이라는 작품을 하고 있었고, 그게 굉장히 잘 나가고 있었거든요. 순정 만화를 끼워 팔아도 박봉성 화실만 잘 유지되면 출판사는 걱정 없었던 거예요. 그냥 여자 작가들에게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작품 내용이나 전개에 대해서는 자율권을 가지셨던 셈이었군요.
출판사에서도 제안하긴 해요. 안 들으면 그만이죠, 뭐.(웃음) 내 작품 하면 그만인 거예요. 물론 재미없다든지 반응이 없다든지 하면 그 작품을 빨리 끝내고 다음 작품을 시작하게 하는데, 작품이 좋으니까 별다른 소리 안 들었어요.


역사 판타지 장르를 많이 그리셨는데 이 장르를 좋아하신 이유가 있나요?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했을 거예요. 작품이 주로 길어서 상상의 세계에서 좀 오래 살았어요. 역사에 대해 생각하면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잖아요. ‘고대에는 민주주의가 있었는데 왜 중간에 없어졌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제가 고등학교까지 마쳤는데 학교에서는 이런 생각을 펼칠 기회가 없었어요. 이런 얘기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없었으니까. 당시에는 학생이 너무너무 많아서 선생님들도 역사 같은 과목은 기계적으로 때우듯 수업하고 나가버리셨어요. 질문해도 달가워하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제 나름대로 혼자 다 생각해야 했어요. 지금은 인터넷이 있으니까 뜻이 맞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지만, 답답한 세월을 지내다 보니 혼자서 상상하며 많은 구멍을 메웠어야 했어요. 궁금증이 많았죠.


만화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졸업도 하기 전에 취직을 했어요. 저는 차멀미가 무척 심한데 출근하는 데 버스로 한 시간 반, 퇴근하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어요. 출퇴근하면 한 시간씩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게다가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그때그때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무척 힘들고 괴로웠어요. 돈을 적게 벌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던 차에 회사가 도산해서 직장을 새로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죠. 그사이 1년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습작 만화를 친구들한테 보여주신 일도 있나요?
그 과정은 다 거치는 거죠. 친구들이 첫 독자예요. 친구들이 재미있으니까 자꾸 더 보여달라는 거예요. ‘아, 힘들다.(웃음) 내 시간도 빠듯한데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또 노동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죠. 제가 친구들에게 친절한 성격도 아니었거든요.


<리니지>는 게임으로도 워낙 큰 성공을 거뒀잖아요. 작가님도 <리니지> 게임을 해보셨는지 궁금했어요.
네, 해봤어요.


잘하시나요?
잘하죠. 캐릭터 몇 개를 다 만렙으로 올려놨는데.


원래 게임하는 걸 좋아하시나요?
원래 좋아하는 건 없죠. <리니지>를 해보고 익숙해지니까 다른 게임도 궁금해서 하게 되고, 그러다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고 했어요.

같이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신일숙 작가님인 줄 모르죠?
모르죠. 나이를 속여요. 그래야 같이 놀아주거든요.(웃음)


만화 독자들의 열광과 게임 플레이어들의 열광에 차이가 있을 텐데요.
만화는 제가 만들어낸 세계고,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각자 주인공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죠. 당시는 온라인 게임 초기였는데, 매너도 각양각색이었어요. 조폭들이 게임 안에 많이 들어와 있었거든요. 조폭들은 자기가 생활하던 그대로 게임에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플레이하면서 보니 조폭들도 그냥 사람들이더라고요. 편견이 오히려 줄어들기도 했죠. 그런데 돈을 엄청 따져요. 게임도 돈이 되어야만 해요.


게임은 모든 인물을 통제하면서 작품을 완결하는 만화와 달라서 낯설어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제가 틀렸네요.
거기서 사회성을 배우죠. 나도 상당히 모난 성격을 가졌다는 걸 게임하면서 많이 알게 됐어요. 게임 속 인간관계는 자기 얼굴을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 좋은 사람만큼이나 비열한 사람도 많이 보게 되죠. 사기 치는 사람도 있고, 남한테서 아이템을 뜯어내기 위해 작업하는 사람도 있어요. 친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서운 세상이었어요. 거기는 실제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까 배신도 더 적나라하고요. 하지만 현실에서도 속을 다 들여다보면 비슷하겠죠. 게임 하면서 사람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컴퓨터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지금 연재 중인 웹툰 <카야>는 컴퓨터로 작업하시나요?
종이에 먼저 작업한 뒤 스캔을 떠서 컴퓨터로 옮겨요. 컴퓨터로 작업할 수도 있는데, 컴퓨터 화면을 많이 보니까 시력이 확 떨어져서요. 종이도 빛 반사가 있지만 모니터는 더하거든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보는 여성 독자들은 극 속 남자들 중 누가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인지 따지기보다 여자들 중 누가 자신과 비슷한지를 더 많이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가님도 더 감정이입을 하거나 본인과 닮았다고 느낀 캐릭터가 있나요?
사람들은 제가 첫째 ‘레 마누아’를 닮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네 딸 모두에 제 성격이 조금씩 투영돼 있어요. 굳이 꼽는다면 ‘샤리(레 샤르휘나)’가 저와 가장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첫째 딸의 모델은 제 언니였거든요. 저와 나이는 얼마 차이나지 않지만 여성스럽고 야무진 성격이라 동생들을 후려잡으려고 했어요. 첫째 레 마누아의 성격에는 제가 좋아하는 부분과 나는 못 하겠다 싶은 부분, 제가 싫어하는 부분이 섞여 있어요.


샤리의 어떤 점이 작가님과 비슷하다고 느끼시나요?
샤리는 자기 나라에서 추방당하잖아요. 자기 혼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있어요. 그런 면이 저와 비슷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내가 하려는 걸 이루려고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첫째 성격 중 저와 비슷한 면은 밖에서 보이는 얼굴과 집에서 보이는 얼굴이 다른 점. 저도 친구들에게는 딱딱하게 대했는데 식구들한테는 잘하는 편이었어요. 언젠가 친구가 집에 와서 저를 보고 놀란 기억이 있어요.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제일 큰 고비는 언제였나요?
만화계가 몇 번이고 허물어졌다가 웹툰으로 지금처럼 성장했잖아요. 만화계의 틀이 바뀔 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작품 활동에서 고비도 그때 왔어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갑자기 판이 흔들려버렸어요. 지면이 없어지면 작품을 할 수 없으니까. 제가 젊을 때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 게 좋지 않았죠. 몸도 갑자기 아팠고.


좋아하시는 웹툰이 있으신가요?
<카야>를 연재하고 있으니까 웹툰을 봐요. 정설화 작가의 <더 콩쿠르>, 이경탁 작가가 글을 쓰고 노미영 작가가 그린 <심해수>도 좋아해요. 여러 플랫폼에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봐요.


웹툰을 연재하면서 댓글을 바로 볼 수 있잖아요. 팬레터를 받던 때와 문화가 많이 바뀌었는데, 이런 점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저도 그렇고 저를 아는 독자들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악성 댓글이 많이 달리지는 않아요. 가끔 그림이 너무 이상하다든지, 내용이 어려워서 못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있죠. 그걸 보고 제가 느끼는 건 별로 없어요. 저는 게임도 했잖아요. 온라인 게임에 PK(Player Kill)라는 게 있어요. 게임 속 사람을 그냥 죽이는 거예요. 악감정이 있어서 죽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한번은 제가 들어간 혈맹에 게임 안에서 결혼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두 사람이 섬으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그 섬은 초보자들이 많은 섬이었어요. 그 부부가 초보자들을 싹 다 죽였어요. 그걸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사람은 알 수 없는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하고 있어요. 그 마음으로 댓글을 보면 상처를 많이 받지 않아요. 완결작에 대한 평가를 보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연재 중에 댓글을 계속 보면 영향을 많이 받아요. 어느 정도 단단해졌다는 나도 이 정도이니 신인들은 더 크게 영향을 받겠죠. 사실 신인들은 보고 싶겠죠. 하지만 좋은 얘기보다 나쁜 얘기가 더 눈에 잘 들어와요. 나쁜 부분을 자기가 고칠 수 있다면 그나마 괜찮을 테지만 고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아요. 가능하면 보지 않는 편이 좋죠.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싶은 다른 작품이 있으신가요?
출판사에서는 <리니지> 얘기를 하고 있고, 제가 책으로 안 낸 <불꽃의 메디아>도 있어요. 사실 저는 단편집을 하고 싶어요. 단편에 제 성향이 많이 들어 있는데, 단편이라 장편에 묻히는 경향이 있어요. 단편집을 내고 싶어요.


웹툰 <카야>를 작업하시면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혹시 있나요?
일주일 한 번 연재니까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아요. 인간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어요.(웃음) 이 많은 웹툰 작가들이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러면 작가 수명이 짧아지는데. 젊을 때부터 이런 강도로 일하면 나중에 버티기 힘들어요. 글과 그림을 다 직접 쓰고 그리는 작가가 극도로 적어질 거예요. 이미 글 작가, 그림 작가가 따로 있거나 원작이 있는 작품을 웹툰화하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림 실력이 있는 게 오히려 본인에게는 안 좋은 결과로 작용하게도 되고, 중간 작업자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제 주변에도 글 작가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림 작가가 진짜 힘들거든요.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게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죠.


연재 중인 <카야>를 <아르미안의 네 딸들> 팬들에게 직접 소개해주신다면요.
<카야>는 이상 세계를 다루고 있어요.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정서적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것이 발전의 한 형태는 아닐까요. 남의 아픔을 안다면 아무리 위에 올라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래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죠. 자식에게 부가 대물림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똑같은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다면 불행의 많은 부분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평상시에 인간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을 그리고 있어요. 제 인생의 마지막 장편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기교를 많이 넣었어요. 복잡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전 작품보다 더 나은 작품이어야 저 자신부터 만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하고 있어요. 저와 함께해온 독자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길 바라며 시작한 게 <카야>예요.


작가님 사진 중에 고양이랑 같이 찍은 사진들이 있더라고요. 몇 마리와 같이 살고 있나요?
지금은 다섯 마리랑 함께 살아요. 여섯 마리였는데 재작년에 한 마리가 죽었어요. 나이가 제일 많은 아이부터 차례로 신이, 진주, 나루, 밍키, 니키. 만화 주인공 이름이 많죠. 니키는 나이키에서 따서 지은 이름이고요.


나이가 제일 많은 고양이가 신이인가요?
올해 열일곱이에요.


건강한가요?
건강해요. 아직까지는.(웃음)


이다혜
<씨네21> 기자, 북칼럼니스트. 팟캐스트 <이다혜의 21세기 씨네픽스> 오디오클립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진행.
<출근길의 주문> <코넌 도일> <아무튼 스릴러> 등을 썼습니다.

이미지제공 거북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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