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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7 스페셜

집으로의 휴가, 책장 파먹기(1)

2021.09.07

종이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늘 있어왔지만, 집집마다 몇 권의 책은 늘 존재한다. '집콕' 휴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난 지금, 책은 의외의 휴가지 혹은 도피처가 되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도서 판매 권수는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 종이책에 대한 사람들의 끌림은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독서가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여러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재미있는 신간은 늘 쏟아지지만,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하면서 펼치지 못한 책에 시선을 줘보는 건 어떨까. 누구에게나 오래전에 샀지만 읽지 않게 되는, 책장에 여전히 잠들어 있는 책들이 있다. 읽고 싶어서 산 책은 읽지 않고 새로운 책을 또 사는 것을 멈추고, 책장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책을 깨워보자. 냉장고 파먹기 대신 '책장 파먹기'를 하면서, 책 속으로의 휴가를 더나보는 건 팬데믹 속 두 번째 여름을 아름답게 장식할 기회가 될 것이다.

첫번째 책, 『세인트☆영멘』

11권을 선물한 이유

파트너와 책장을 합치면서 책 분류법을 고민하게 됐다. 문학과 비문학으로 구분할까, 더 세분화해서 장르별로 구분할까, 단순히 초성순으로 배열하는 게 좋을까? 심각한 토론을 거듭해 만화/소설/비소설/잡지/기타라는 분류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다면 다 읽은 책을 제자리에 꽂아놓기란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는 ‘고급 교양’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책장 맨 위 칸의 만화 코너를 제외하곤 ‘자유롭게’ 비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장 자주 손을 뻗는 곳은 만화 코너다. 만화 애호가인 파트너 덕분에 새로운 만화를 탐독하는 즐거움이 크다. 게다가 다른 책과 달리 만화를 읽을 땐 문장과 단락의 연결과 의미 파악에 그다지 집중할 필요가 없어서 술을 곁들이기 좋다. 위스키나 럼, 보드카 등의 스피리츠 종류에 탄산수만 첨가해 뚝딱 한잔을 말고 만화책을 펼치는 순간(!)을 최고의 여가 중 하나로 친다.

그럼에도 손이 가지 않는 만화책이 있었다. 세인트☆영멘 11권이다. 이 책을 가지게 된 이유는 기구한데, 세인트☆영멘 시리즈를 아주 재밌게 읽은 친구가 한번 읽어보라고 선물해줬다. 선물을 받고 “왜 1권이 아니라 11권이야? 이게 제일 재밌어?”라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은 “서점에 이거밖에 없어서”였다. 1권부터 10권은 알아서 찾아 읽으라는 것인지 혼란을 가득 안고 돌아와 책장 한쪽에 모셔두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 책은 사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연재되고 있는 인기 개그 만화다. 주인공은 부처와 예수이고, 두 성인이 사람들을 인도하며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다가 지상으로 휴가를 떠나와 일본 도쿄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종교를 소재로 한 개그 만화라 풍자와 희화화가 주 내용인가 싶었는데 종교 여부를 막론하고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만화를 표방하는 모양이다. 11권에는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설화의 ‘노아’가 대홍수 시절 방주 안에 있었던 동물들을 그리워하며 남몰래 동물원에 출몰하다 들키는 에피소드, 셀카를 못 찍는 부처를 도와주려던 예수가 부처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발견하고 그 빛을 조명 삼아 자기 셀카를 찍는다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종교의 교리나 전해져오는 설화에 대해 많이 알수록 웃음 포인트를 더 잘 캐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교인들에게도 추천한다. 11권으로 입교(?)한 나도 이번 휴가에는 1권부터 돌아가서 이 만화가 왜 재밌었는지 탐구해볼 계획이다. 그러면 11권이라도 선물하고 싶었던 급하고 다정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양수복


두번째 책, 『미스터 메르세데스』, 『이상한 논문』

어쩌다 사서 왜 못 읽었는지

“아가씨 책장 보고 그냥 가려고 했잖아.”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에게 듣는 말이다. 이삿짐센터에서 제일 싫어하는 이삿짐이 다름 아닌 책이다. 대략 몇 권이나 있는지 세어본 적은 없지만, 우리 집에 와서 내 책장을 본 친구들은 “천 권은 넘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서적을 아껴서 보유하느라 책장을 짜고 햇빛이 닿지 않게 조심한다거나 가치가 있는 고서를 소장하고 있다거나, 책등 컬러나 작가별, 제목별로 꺼내 보기 쉽게 잘 정리를 해둔 것도 아니다. 귀찮아서 이중 삼중으로 마구 꽂아놔서 필요한 책도 못 찾아서 또 사기 일쑤다.

그냥 게으르고 정리를 못 하고 미련만 많아서 이사할 때마다 쓸모도 없는 책까지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이다. 오죽하면 도서관에서 힘들게 빌려 온 책이 이미 내 책장에 보란 듯이 자리하고 있을 때도 있다. 쉽게 잘 동하는 줏대 없는 성격 덕분에 책 구매에 있어서도 기준 없이 일단 사고 본다. 매일 출간되는 책만 해도 몇 천 권인데 언제 어떤 기준으로 책을 사느냐. 물론 믿고 보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을 때, 광고 문구에 끌려서 사기도 하고, 모으던 만화책의 다음 편이 나왔을 때에도 주저 없이 산다. 그리고 책 좀 읽는다 하는 선배의 추천, 글 잘 쓰는 사람이 추천하는 책도 주저 없이 산다. 서평을 읽고 발췌된 문장을 보고 살 때도 있다. 저 문장이 담긴 책을 소유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에 지갑이 열린다. 그렇게 사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읽지도 않은 책들이 쌓였는데, 내 책장에 천 권가량의 책들은 대부분 안 읽은 책들이다. 읽고 너무 좋았던 책들은 자리가 없어 처분하고, 도저히 안 읽어지는 책들만 지니게 된 것이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한때 친했던 선배의 추천으로 산 책이다. 문장을 잘 다루던 선배는 당시 추리 장르물을 쓰고 있었는데, “스티븐 킹 신작이 나왔는데 역시 좋다.”며 송희 너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쇼생크 탈출', '미저리', '샤이닝', 거기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쓴 그 스티븐 킹? 거기다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에드거상까지 탔다니! 이건 안 살 수가 없잖아? 그렇게 이 책이 나오자마자 샀고 읽지도 않고 책장에 고이 잠든 게 6년째다. 심지어 책등에 박힌 동그란 무늬를 볼 때마다 김치 국물이 묻은 줄 알고 매번 책을 꺼내 닦으려다 원래부터 디자인된 무늬라는 걸 확인하기만도 몇 번인지. 휴우, 뭐가 묻은 건 아니구나 안심하고 다시 책장에 끼워 넣는다.

이 글을 쓰면서 이번엔 꼭 읽어야지, 하다가 또 못 읽었다. 천하의 스티븐 킹이 쓴 추리소설인데 왜 이렇게 손이 안 가는지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이상하게 안 읽게 되는 내 책장 속 또 다른 한 권, 일본의 코미디언 산큐 다쓰오가 수집한 특이한 논문 13편을 소개하는 책 이상한 논문이다. 세상에는 별별 논문이 다 있다. 불륜남의 머릿속, 고양이의 치유 효과, 가슴의 출렁임과 브래지어 위치의 어긋남 등을 분석한 논문도 있다. 저런 주제가 논문 심사에 통과됐다니 그게 더 이상하지. 어쨌든 일본의 이상한 논문을 모은 책이라 책 제목도 이상한 논문이다. 아쉽게도 이 책을 읽는 일도 이번에도 실패했다. 책을 구매했을 때에는 그냥 언젠가 읽겠지 싶어서 덮어두었다면, 이번에는 더 이상 일본 남성 코미디언의 개그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다시 두 책을 책장에 다시 꽂아놨다는 슬픈 결말.

글. 김송희


세번째 책, 『4천원 인생』

월급이 삶을 정의하지 않도록

책이 출간된 2010년, 최저임금은 4,110원이었다. 올해 최저임금은 8,720원.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삶은 ‘8천 원 인생’으로 고쳐 부를 수 있을 만큼 변화했을까. 이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뉴스로 한국의 노동 현실을 ‘충분히’ 접하고 있다 착각하고 있는 2021년 여름, 4천원 인생을 펼쳤다. 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혹시 이 상황을 갑자기 발생한 ‘사건사고’ 정도로 여겼던 건 아닐까. 이 착각을 깰 답을 찾고 싶었다. 이 책은 주간지 '한겨레21' 기자들이 소위 말하는 ‘위장취업’을 해 일한 뒤 써낸 기사를 엮은 결과다. 식당, 공장 등에서 일한 날들의 기록이 날것으로 담겨 있다.

임지선 기자가 일했던 인천의 B감자탕집에선,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노래 ‘클레멘타인’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직원들은 클레멘타인이 울릴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출입문을 바라본다.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업무를 하면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직원들의 상황을 상징한다. 여덟 시간 이상 근로하는 노동자들에겐 한 시간 이상의 휴게 시간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감자탕집 직원들에겐 아니었다.

2020년대에 4천원 인생이 다시 써진다면, 책은 더 두꺼워져야 할 것이다. 열악한 노동환경도, 거기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상황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안다. 임 기자는 감자탕집 위장취업 성과 중 하나로, ‘내가 지금 테이블 벨을 누르면 달려오는 이가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늘어났다는 것을 꼽았다. 월급으로 타인의 삶을 정의하지 않는 이들. 그들 덕분에, 세상은 오늘도 한 뼘 더 나아지고 있다.

글. 황소연

* 집으로의 휴가, 책장 파먹기(2)로 이어집니다.


사진.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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