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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8 에세이

파리엔 '재연과 모니카의 행방불명'

2021.09.12

연재를 마치는 시점에서 말하기도 뭐하지만, 나는 ‘모니카 인 파리’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프랑스인은 이렇다 저렇다 하고 글을 쓰기가 죽을 만큼 싫었다.

파리가 프랑스의 표본도 아니며, 6개월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내가 만나서 대화하는 몇 안 되는 프랑스인을 기반으로 ‘프랑스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싫었던 것이다.

6월 26일. 파리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종착점인 레퓌블리크 광장의 모습.

하지만 한 개인이 이 커다란 세계의 한 공간, 길다란 시간의 한 토막을 통과하면서 본인의 주관에 따라 멋대로 판단하고 그 결과 나름의 왜곡된 세계관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역시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관대하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어렵다고, 이는 내가 파리에서 한국인으로서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싫어했던 점이기도 하다. 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가 5년, 10년 전과 비교해 훨씬 주목받게 된 덕분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특정 반응을 받곤 한다. 한국에는 맛있는 것이 참 많다, 한국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한국 사람들은 옷을 잘 입는다, 한국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한다, 한국 사람들은 춤을 잘 춘다 등등.

그런데 이번에 특히 신기했던 것은 내 이름을 ‘모니카’라고 말했을 때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노을 지는 퐁뇌프 다리의 풍경.

교환학생 학기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백신 접종률이 올해 5월을 기점으로 꽤 높아진 유럽은 (아직 불확실한 점이 너무나 많지만) 벌써 코로나19 종식기를 맞은 듯하다. 나 또한 2차 접종까지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상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보건 패스(Pass Sanitaire) 도입을 두고 말이 많다. 보건 패스란 백신 접종을 마쳤는지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 패스로, 7월 말에서 8월 초부터 이것이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고 클럽에서 춤도 추거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6월 말쯤 팔레 루아얄(Palais-Royal) 공원에 들어갔더니 보건 패스에 반대하는 사람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인이 유난히 신분증 보여주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여전히 논란이 많은 것이다.

진짜 내 이름은?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자가격리를 비롯한 코로나 19로 인한 온갖 규제를 떠올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학교에서 동기들과 교수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재연이라고 소개할지 모니카라고 소개할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개강 날 학교에 갔을 때 얼떨결에 ‘내 이름은 모니카’라고 자기소개를 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식으로 사람을 부를 때 문재연 학생, 문재연 씨, 문재연 님 혹은 재연아 하고 부를 것이 아니면 모니카라고 불리는 편이 덜 이상 하다는 것이 당시의 내 논리였다. 나에게는 모니카가 진짜 이름이기도 하고.

너는 한국인인데 왜 이름이 모니카야?
나는 이 질문이 매우 무례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매우 놀랍기도 하다. 케이팝 아이돌이나 한국 배우가 국제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이제는 프랑스 사람들도 어떤 이름이 한국식 이름인지 아는 것이다. 내가 약 10년 전 캐나다에서 잠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만 해도 한국에서 온 꼬마가 ‘내 이름은 모니카’라고 소개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북미에서 북미식 이름을 쓰는 것이 당연했다.

퐁피두 센터 앞에서 공연하는 재즈 사중주단.

물론 동양인이 서양에서 서양식 이름을 갖는 이유의 맥락을 모르는 경우 궁금할 수는 있다. 그러니 적당히 친 해지고 나서 나에게 한 번쯤 물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종종 내가 자기소개를 하자마자 곧바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 한국 이름 있잖아, ‘진짜’ 이름 써도 돼. 물론 악의를 갖고 하는 말이 절대 아니며, 보통 선심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본인의 젠더, 섹슈얼리티, 국적 등 정체성에 포함되는 무언가를 무언가라고 밝혔을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본인도 수정하고 검토하고 고민하느라 지켜내기 힘든 경계선을 건드리는, 큰 실례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당황하고 심하면 매우 날카롭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다.

스위스 산장 풍경.

하지만 이런 경계선을 침범당하거나 상처받는 일 없이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나도 이런 말을 몇 번 듣고 나서 내가 왜 이렇게 방어적으로 반응하는지 생각해봤다. 일단 이 이름이 ‘가짜’ 이름으로 시작했다는 점, 게다가 백인 사회에 쉽게 편입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수치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이름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심지어 그렇지도 않기 때문에 자부심도 없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 학원을 의무적으로 다닌 내 또래 친구들은 모두 적어도 한때 영어 이름을 가져봤을 것이다. 나는 예닐곱 살 때 영어 학원 선생님이 영어 이름 리스트에서 임의로 골라 지어준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이 가짜 이름을 학원을 벗어나 성인이 되면서 잃기도 하고, 어느 순간 본인의 일부분을 지칭하는 진짜 이름으로 변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모니카가 이제 진짜 이름인데도 무엇 때문인지 친구들에게 나 자신을 100%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적당히 친해지면 내 한국 이름도 알려주곤 했다.

비 오는 날 밀라노의 두오모.

올해 유럽 전역에 비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오는 등 이상기후 징후가 있었다.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나의 방어적인 태도는 결정적으로 나의 ‘진짜’ 이름을 묻는 데에서 나온 것 같다. 그러니까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은 어정쩡한 이방인의 세계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특권적 위치에서 나온다. 본인은 늘 일관되게 ‘진짜’ 이름을 써도 아무 문제없이 살아왔으니까. 한국에서도 한국말을 쓰다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영어 단어를 섞어 쓰고, 외국에서도 ‘정’ 같은 단어를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하는 이중 이방인으로서 나는 내 ‘진짜’ 이름이 둘 중 뭔지도 모르겠다. 두 이름 모두 나 자신의 일부를 지칭할 뿐이고, 나는 해당 사회에서 내 삶이 더 수월할 수 있는 이름을 선택할 뿐이다.

한편 나와 똑같이 타국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 이름을 고수하는 어려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요즘은 이런 사람이 나처럼 영어 이름을 쓰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들이 하는 싸움 덕을 본다는 생각도 들고, 이 사람들은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가짜 이름으로 살아감으로써 또 하나의 진짜 이름을 얻는 과정이 의미 있다.

영화에서 ‘치히로’는 온천의 주인 ‘유바바’에게 이름의 일부를 빼앗기고 ‘센’이 라는 간단한 이름을 얻는다. 온천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치히로는 ‘하쿠’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진짜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하쿠의 진짜 이름 ‘고하쿠’를 되찾아주면서 ‘진실된 사랑’을 실천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치히로가 어른이 되어서도 센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 같다. 난생처음으로 부모님에게서 벗어나 독립된 존재로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고 본인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책임졌던 시절의 이름을 기억하리라 믿는다. 어떤 이유에서든 센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생긴 이후 치히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글 | 사진. 문재연
디지털 문학 플랫폼 ‘던전’에서 영화 에세이 시리즈 ‘싸우자, 취향아’를 연재하고 있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
브런치 @puppysizedelep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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