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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4 스페셜

문명의 목격자들 —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 (2)

2022.05.10

이 글은 문명의 목격자들 —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 (1)에서 이어집니다.

4월 20일,
여의도에 모인 휠체어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수많은 장애인들이 집회 참석을 위해 여의도에 모였다. 행사를 진행하는 연단에는 발언자들이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도록 리프트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발언은 모두 수어로 동시통역 됐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이해지(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 대표) 씨는 “장애인 혐오 발언을 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통해 모든 청년들이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반대하고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게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애인들의 기본권을 위해 연대하고 함께하는 비장애인 청년들도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참여했다.”고 밝혔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행사에 처음 참가한다는 ‘ck’라는 닉네임의 장애인은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뭔가 험난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축제처럼 사진 찍고, 맛있는 것도 먹고 평화적인 집회를 해서 긴장했던 게 싹 사라졌어요.”

행진 중 만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서권일 씨는 인수위에서 장애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도 목소리를 안 낼 순 없고,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야기해야죠. 우리 장애인들이 이렇게 이동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그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비문명 사회’라고 생각해요.” 옆에서 함께 행진하던 센터 소장 양준호 씨는 이번 집회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이준석 대표가 이런 형태의 시위 문화가 비문명적인 국가에서 행해지는 처사라고 하신 데에 아쉬움이 크죠. 공당의 대표인 분이 그렇게 말을 하면, 그 혐오를 따라 하는 이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대표가 원하는 바를 달성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그는 ‘결국 원하는 결과를 이뤄낼 것’이라는 낙관을 비쳤다. “10년, 20년 전 서울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말했을 때도 똑같은 비난을 들었지만, 그 결과 엘리베이터가 생겼고 많은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하고 있어요. 그 과정을 모르고, 마치 평화롭게 엘리베이터가 생겼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지만요. 시간이 지나면 시민들이 다르게 평가해줄 거라고 믿어요.”

4월 21일,
출근길, 당연히 지하철을 타다

전장연은 인수위에서 브리핑한 장애인 정책의 내용이 “21년째 외치고 있는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시민권을 보장하기에 너무나 동떨어지고, 추상적인 검토”라고 밝혔다. 오전 7시, 경복궁역에는 재개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참석을 위해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모였다. 취재진과 휠체어, 비장애인으로 북적이는 와중 혐오 표현과 고성, 욕설이 승강장과 열차 안에 쏟아졌다. 한 사람이 욕을 하니 다른 이들이 동조했다. “다 잡아다 넣을 수 없어?”, “권리 주장하기 전에 니들 꼬라지를 좀 봐!”, “아주 내리고 타고 신났네!”. 이날 들은 폭언의 극히 일부다. 그 안에서 휠체어는 움직였고, 또 멈춰 섰다. 이날 경복궁역의 시위는 한쪽 문으로 휠체어 여러 대가 일렬로 탑승한 후, 전동차를 가로질러 다시 한쪽 문으로 나가는, 한 바퀴를 도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들과 경찰 사이의 실랑이가 벌어졌고, 장애인들의 이동 수단이자 몸과 같은 휠체어를 경찰이 강제로 이동시키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전날 여의도에서 만났던 양준호 씨를 경복궁역에서 다시 마주했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당연히 이 시위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인권 보장 활동을 지지했는데, 이러면 지지를 해줄 수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전 그동안 어떤 지지를 해오셨는지 묻고 싶어요. 그럼 왜 장애인들은 아직까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걸까요?” 그는 경찰의 대응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물론 휠체어 탑승 시위로 지연이 발생하긴 하지만, 경찰이 탑승을 중간에 막음으로써 더 지하철이 지연되는 것도 있다고 봐요. 답답한 부분이 있죠.”

경찰과의 실랑이 한가운데서 묵묵히 시민들의 비난을 듣던 박길연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박 씨는 스물일곱 살 이후 장애인의 삶을 살고 있다. “오래전엔 이런 시위가 많지 않아서 장애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제되어 살아왔다는 의미겠지요.” 그의 고향인 남해에 가려면, KTX를 타고 순천까지밖에 갈 수 없다. “순천까지만 가서 10년이고, 20년이고 그 자리에 머물라는 소리밖에 더 되나요.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면, 우리가 비장애인 승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일상이에요. 저희는 기다릴 수 없어요.” 그는 이어 말했다. “이 시위를 통해 비장애인 시민들에게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리고 싶어요.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3~40분간의 불편함을 저희는 몇 십년간 겪어왔습니다. 오늘 경찰이 저희를 마치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것에 많이 분노했고 실망스럽습니다.”

전장연은 ‘집회시위 매뉴얼’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는 방법을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 매뉴얼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모두가 진실의 한 부분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진실을 전유할 수는 없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로 발생한 비장애인의 불편함이 진실이라면, 21년간의 투쟁에도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민이 존재하는 것 역시 진실일 것이다. 휠체어가 없으면, 출근길의 ‘문명’은 유지되는 것일까? 넓은 간격 사이를 오가고 승강장을 가로지르는 휠체어 바퀴를 본 우리 모두는, 분명 문명의 목격자다.

| 사진.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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