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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7 에세이

영화 기자의 칸영화제 출장이란, 잠은 죽어서 자지 뭐 (1)

2022.06.28

칸국제영화제 출장이 결정됐을 때, 왠지 영화제와 석사논문을 맞바꿔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아서 결국 본심 연기 신청을 했다.) 팬데믹 이후 존폐 위기가 진지하게 제기됐던 칸영화제는 그들의 자존심을 걸고 축제가 다시 정상화됐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했다.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제임스 그레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다르덴 형제, 조지 밀러 그리고 톰 크루즈까지. 이 사람들이 진짜로 다 온다고? 호들갑을 떨 만한 라인업에 업무량도 수직 상승했다. 칸 출장을 간 <씨네21> 기자들이 반드시 챙겨야 할 경쟁부문 초청작은 야금야금 한 편씩 추가되더니 최종 21편의 리스트가 확정됐고, 무엇보다 한국 영화만 네 편씩이나 칸의 부름을 받을 줄이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경쟁부문에서 상영될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정재는 그의 감독 데뷔작 <헌트>를 미드나잇 섹션에서 공개하면서 N번째 전성기를 누리는 그의 사주가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내가 꼽는 2010년대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한 편인 <도희야>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의 신작 <다음 소희>도 비평가 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이 사람들의 인터뷰도 다 해야 할 텐데…. 역시 잠은 죽어서 자야 하나?

노마스크의 칸 거리

칸에 도착하자마자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극장 안에서도 마스크를 고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2020년부터 우리 일상을 지배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없었던 일인가 싶다. 입 주변이 허전해서 어색했던 것도 잠시, ‘노마스크’에 익숙해지는 데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으니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하지만 내가 영화제와 논문을 맞바꿨던 것처럼 마스크 없는 쾌적함은 그 이상의 불편함으로 되돌아왔다. 자유로운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꾀한 칸영화제는 원래 몇 시간씩 줄을 서서 표를 구해야 했던 아날로그 시스템을 버리고 온라인 예매 사이트를 여는, 보수적인 그들로서는 무척 파격적인 변화를 감행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허약한 서버와 느린 인터넷은 성질 급한 한국인 기준에서 보기엔 너무 느긋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5일 후 상영작 티켓팅을 해야 하는데 로그인하는 데만 두 시간씩 걸렸다. 표를 예매하기까지는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새벽까지 한국에 보낼 원고를 마감하고 세 시간 정도 소파에서 자다 일어나서 티켓팅 하고,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전 세계 프레스들이 쿠크다스 서버에 분노하는 기사를 쏟아냈지만 영화제 측은 정체 모를 공격을 받아서 그렇다는 이상한 해명을 했고(디도스 같은 거라는 거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서버는 영화제 중반 이후에나 안정화됐다. 하아…. 부산이나 전주, 부천영화제 예매 시스템이 이랬다면 한국의 네티즌들이 들고일어나 불바다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예매 팁을 고민하고 영겁의 인내심을 기른 덕분에 나는 한국 기자 중 거의 유일하게 비경쟁부문 상영작 <탑건: 매버릭>을 감상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트위터에 “솔직히 재미로만 따지면 칸에서 본 영화 중에 <탑건: 매버릭>이 제일 재밌었다.”는 감상을 남겼다. 각종 커뮤니티에 너무 많이 퍼져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고 있다. 나는 지적인 시네필로 보이고 싶었는데….)

이 글은 '영화 기자의 칸영화제 출장이란, 잠은 죽어서 자지 뭐 (1)'로 이어집니다.


글 | 사진.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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