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플레이 화면 캡처
* 게임 <30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월 중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은 생산 금지하고, 인체 유해성 낮은 친환경 번개탄 등의 대체제를 개발하고 보급”. 이 계획이 번개탄 자체에 대한 직접적 ‘규제’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분노했다. 전문가들은 치명적인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는 정책이 자살 사망자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다는데, 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화가 났을까? 어쩌면 그건 번개탄이라는 사물 너머에 도사린 풍경 때문 아닐까?
게임 <30일>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살을 맘먹게 만드는, ‘치명적인’ 환경과 조건들이 등장한다. 유저의 선택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이 게임에서 당신은 고시원 총무 ‘유나’가 된다. 유나는 4층짜리 고시원에서 발생하는 의미심장한 일들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대화나 단서 찾기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게임 오프닝에서 등장한 누군가의 ‘사망진단서’를 없던 일로 되돌려야 한다. 게임이 30일에 가까워올수록 유나가 해야 할 퀘스트는 복잡다단해진다.
<30일>에서 유나의 일상을 구성하는 건 고시원 입주민들과의 상호 작용과 총무로서의 업무다. 쌀을 씻어 밥을 짓거나 물 등의 비품을 채워두는 일부터 월세를 독촉하거나, 입주민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도 한다. 눈에 띄는 건 유나가 고시원 입주민들과 나누는 상당한 양의 대화다. 대충 보고 넘겨서는 답변의 선택지를 고르기가 어렵다. 어떻게 응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나는 30일에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의 생활에 개입하거나, 그들의 숨겨진 사연을 듣는다. 게임의 중반인 2분기에서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보러 나서는 장면 등은 진행에 중요한 터닝포인트다. <30일> 제작을 위해 개발자들은 약 2년간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자문을 받기도 했다. 그 고민의 흔적을 플레이하면서 확인할 수 있다.

ⓒ <30일> 플레이 화면 캡처
게임의 또 다른 주인공 설아는 우울증 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난 그저 평범한 고시생일 뿐이라고. 그래서 우울증 같은 건 걸릴 일이 없다고. 그러나 한 번 실패가 영원한 실패로 취급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신속 정확하게 계급이 구획되는 한국 사회의 치명적 조건 안에서, ‘평범한’ 사람이 완만한 정신 건강을 갖추는 건 가능할까? 에드윈 슈나이드먼은 <자살하려는 마음>(한울아카데미, 2019)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살에서 공통되는 목적은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자살은 무작위 행동이 아니다. 절대로 목적 없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중략) 어떻게 이것으로부터 벗어날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살이 쓸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인 것처럼 보인다.” 마음속에서 긴급하게 해결책이나 결론을 내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사회는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해 비극적 결정을 유도한다.
누군가에겐 ‘번개탄’에 집중한 일반 시민들의 분노나 어이없음이 뉴스 한 줄에 ‘버튼 눌린’, 정밀한 논리에 바탕 하지 않은 잠깐의 끓어오름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국가는 그 분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 끓어오름이 만들어진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의 질곡을 짐작하려는 태도에 문제의 해결법이 있지는 않을까?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오래된 정의는 슬프다. 이에 경쟁 사회에서 탈락한 결과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은 더욱 슬프다. 에드윈 슈나이드먼은 같은 책에서 이렇게도 말한다. “자살의 대안에 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중요하다.” <30일>의 등장인물들은 망설이면서도 결정적 순간에 상대방에게 중요한 대화를 건넨다. 게임의 마법이다. 가끔은 현실에서도 마법이 가능하길 바란다. 국가가 국민에게, 혹은 ‘번개탄 뉴스’에 마음이 심란했던 우리가 서로에게.
글. 황소연
사진. <30일> 플레이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