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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2 빅이슈

깡희 님과 연수 님의 공공일자리 졸업 (2)

2023.07.05

이 글은 '깡희 님과 연수 님의 공공일자리 졸업 (1)'에서 이어집니다.

ⓒ pixabay

졸업생 연수 님
연수(가명) 님은 깡희 님이 질투하고 샘내던 그 아무개 참여자였다. 연수 님도 시설의 공공일자리에 오래 참여했고, 열심히 일해서 실무자들에게 격려를 받던 분이다. 연수 님은 주로 시설에 들어오는 중고 후원 의류를 정리하는 일을 했었다.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 소개도 했던 여성인데 의류 보따리 장사 경력이 길어서 옷 정리에는 자신이 있다고 했고 실제 계절별, 크기별로 잘 분류하고 정리해서 한몫을 단단히 했었다. 연수 님은 코로나19가 터지고 중국을 드나들며 하던 옷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떠났었다. 빚 때문에 형제와도 의가 상해서 오직 빨리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설의 공공일자리에도 참여하고 새벽 시장에 가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랬다. 시설 이용 기간도 몇 차례나 연장했었다. 생활시설에 입소해서 또다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다며 연계를 거부했고, 고시원도 생활비가 더 들어가니 자기 형편에 힘들다고 나가지 않고 버텼다. 그녀도 감사할 정도로 열심이었지만 가끔은 감정이 섞인 문자 폭탄으로 실무자를 곤욕스럽게 했다. 시설 이용 기간이나 일 참여 기간으로 상담을 한 날이면 며칠 있다가 문자를 남겨 자신의 상황을 봐주지 않는 실무자를 원망하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하곤 했다. 여하튼 그녀는 긴 실랑이와 격려와 독려 끝에 시설 근처 고시원으로 독립해 나갔다. 나갈 때까지 섭섭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지 가끔 드리는 안부 전화에 밝지 않은 목소리로 응대해 걱정을 안기고는 했지만.

그녀를 며칠 전 우연히 전철역 근처 길에서 만났다. 근처 잡화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그녀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하며 다가왔다. 묻기도 전에 밤일을 끝내고 아침을 사 먹고 고시원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물류 일인데 밤일이어서 급여가 높다며 9월 ‘며칠’이면 다 끝난다고 했다. 그게 무슨 날이냐니까 자기 빚을 모두 청산하는 날이란다. 그간 그렇게 열심히 일을 찾아하시더니 이제 끝이 보이나 보다고, 너무 잘되었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그녀는 빚을 다 정리하면 시골집에 맡겨둔 책 중에서 <토지> 같은 좋은 책을 보내겠다고 했다. 자기가 시설의 책 몇 권을 가지고 나왔는데 책에다 매일매일 일기 쓰듯이 낙서를 해놔서 돌려줄 수 없었다고, 빚을 갚으면 이제 집에 갈 수 있으니 그걸 찾아 시설에 기부하겠노라고 했다. 말하면서도 졸린지 눈이 감기는 그녀를 더 붙잡아둘 수 없어서 빨리 들어가 쉬고 건강 잘 돌보시라고, 조금만 더 힘내시라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시설의 공공일자리는 홈리스 여성들에게는 긴급 수혈 같은 것이다. 어떤 홈리스 여성들은 수혈을 거부할 정도로 의욕이 없지만 또 어떤 여성들은 그런 일을 통해 생활을 꾸려가고 그 속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다. 가끔은 긴급 수혈 일자리에 안주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월세 내고 생활비를 충당하고 빚을 갚는 것처럼 자신감을 북돋는 게 없다. 홈리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내고 연결하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소개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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