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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9 에세이

마음의 거처

2024.05.03

글. 유지영

내게 세월호 참사는 아주 구체적인 중학생들의 얼굴로 다가오는데, 아마도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내가 교생으로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 중학교에 실습을 나갔기 때문이라 짐작해본다. 2015년 4월 16일, 나는 중학교 교내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어둑한 교실에서 학생들은 누구 하나 장난칠 엄두조차 내질 못하고 커다란 사이렌 소리에 압도돼(혹은 다른 무엇에 압도돼)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색 교복 아래로 작은 왼손과 오른손이 비죽 튀어나와 서로를 꼭 붙들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 채로 훌쩍였고, 이내 훌쩍임은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이 옆 사람에게 번졌다.

그다음 날, 나는 실습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딸이 교생실습을 나간다며, 엄마는 내게 새 옷을 잔뜩 사주셨다. 나는 엄마가 사준 그 익숙하지 않아 버석거리는 옷, 익숙하지 않게 높은 힐을 신고서 세월호 참사 합동 분향소에 갔다. 합동 분향소에 추모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두 시간여를 기다려야 비로소 내 차례가 왔다. 묵념하는 시간은 30초 남짓이었고, 묵념이 끝나고 발길을 돌리자 비로소 발에 통증이 시작됐다. 발을 느릿느릿 끌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통증은 주말 내내 발끝에 머물렀다. 나는 그 통증을 반겼다. 오로지 그 통증만이 나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실습을 나갔던 중학교는 지독한 언덕을 올라야 비로소 정문이 나왔는데, 나는 그 언덕을 오르며 봄을 보냈고, 더 이상 언덕을 오를 일이 없게 되자 봄은 끝나 있었다. 학생들은 고작 한두 달을 머물 교생에게 온 마음을 열었고, 간혹 나는 그 마음을 곱씹다가도 되돌려줄 길이 없어 스스로 허탈해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해 봄에는 매일매일 세월호 참사를 생각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실습을 끝마치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궁금해했다. 이듬해 봄에도 중학교 교내에 사이렌 소리가 들릴지를, 그리고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사이렌 소리가 계속 들릴지를. 돌이켜보면 그들이 꺼냈던 그 무겁고 귀한 마음들이 향하는 종착지가 궁금했던 것 같다.

매우 이상한 숫자, 10

중학교로 실습을 나갔던 해, 웃으면서 다시 만나자고 굳게 약속했던 학생들이 내년이면 교생실습을 나갔을 당시의 내 나이가 된다. 성인이 되는 일을, 그래서 생기는 무한한 자유를 동반한 무한한 책임을 한없이 무서워하던 학생들이 성인이 된 이후로도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이들이 내게 건넨 다시 만나자던 약속이 지켜지는 일은 없었지만, 내게는 그보다는 그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기억한다는 것, 여전히 그날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정말 괜찮은 걸까. 세월호 참사를 겪었으니 더는 참사 없는 안전한 한국 사회를 만들자고 했던 약속은 무참하게도 계속 이어지는 참사에 오갈 곳을 잃었다. 참사가 반복되고, 누군가의 이름 석 자 앞에 유가족이라는 수식어가 달리고, 각종 집회와 시위를 하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드높인다.

10이란 이상한 숫자임에 분명하다. 1(일)부터 9(구)에게는 꽉 찬 숫자이지만, 11(십일)부터 19(십구)가 보기에는 텅 빈 숫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세월호 참사가 10주기를 맞는다. 8이나 9에게 10은 완결된 숫자이나, 그래서 기다려온 숫자이나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완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11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내년이 되면 세월호 참사 11주기가 된다. 잊지 않겠다는 그 무수히 많았던 다짐들을 뒤로하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이제 잊히지 않기 위해 싸운다. 망각이라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상대를 두고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11주기에도, 12주기에도 망각과 싸우는 상대의 곁을 지키겠노라는 다짐을 한다. 지금은 다소 어설프게 보이는 첫 마음을 길게 꺼내놓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소개]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함께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사람 하나, 개 하나랑 서울에서 살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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