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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7 에세이

기후와 시인 - 핵 없이, 재난 없이, 슬픔과 고통 없이

2024.04.09

이 글을 쓰고 있는 2월 중순, 내가 살고 있는 전주에는 요 며칠 비가 내리고 있다. 기온이 제법 올라 곧 봄이 올 것이란 게 느껴지지만 연이어 내리는 비에 마음이 침체되기도 한다. 대응 중인 핵발전소 현안과 관련한 일정으로 근래 들어 분주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노후 핵발전소인 고창–영광 한빛핵발전소 1·2호기 수명연장 현안과 관련해 지자체의 주민공람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고, 노후화된 핵발전소를 수명 연장하는 것의 위험성과 법적, 기술적 문제점을 파악하는 특강 일정이 있었다.

현재 호남권에서는 한빛원전 1·2호기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지역 주민들이 공람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에 대응해, 주민공람을 시작한 지자체에 공람 철회를 촉구하는 한편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이슈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일을 연대체에서 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전북녹색연합도 연대체들과 함께하고 있다. 신입 활동가인 나는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전면에서 일하시는 사무국장님을 도와 함께 긴장해 있던 터였다.

사무국장님은 밤새 기자회견문을 작성하시고, 기자회견 진행과 그날 오후 이어졌던 특강 진행으로 피로도가 높으셨을 텐데 계속 사후 보도되는 기사들을 모니터링하시거나 이후 진행할 새만금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셨다. 나는 몇 가지 현수막과 손 피켓을 직접 만들고, 웹자보를 제작한 터였다. 홍보 일에 조금 더 감각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사안이 급박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천천히 현수막 글씨를 썼다. “부안군은 위험천만 노후핵발전소 한빛 1·2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을 철회하라.” 당일에 한 번 쓰고 버려질 현수막 하나에 수명연장 철회의 사활이 걸리기라도 한 듯 글자들을 커다랗게, 붓에 물감을 묻혀 공들여 썼다. 아무리 공들여도 잘 써지지 않아 속상했다.

핵과의 가슴 졸이는 동거

한빛핵발전소 1·2호기는 곧 40년의 수명이 만료된다. 2025년과 2026년이 각각 그 운영 만료 시기이다. 핵발전소는 그 자체로도 매우 위험한데, 발전소가 지어진 지 이미 40년이나 지났고(내가 태어나기 전에 세워진 발전소라고 생각하니 연식이 체감되었다), 폐로는커녕 사용 기간을 늘리겠다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실 공포스러움보다는 의아하다는 게 더 먼저 든 감정이다. 내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연식이 그토록 오래됐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 일어났던 사고가 여기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핵발전소 시설을 신뢰해서는 아니지만, 안전하게 지어지지 않았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방사선은 일상적으로도 노출될 수 있다는데 별일이야 없겠지, 그토록 위험함에도 건설된 것이라면 관계자들이 말하듯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이 맞겠지, 그리고 설사 사고가 있더라도 중대 재해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는 게 안일한 내 생각이었다.

핵발전소가 야기하는 위험한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과학 지식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핵발전이 ‘깨끗하고’ 효율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것,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에 길들은 사회에 살면서 핵발전소 수명연장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현재 일반적인 건축물이나 자동차와 같은 상용하는 설계물조차 안전을 고려해 정밀하게 설계되고 폐기되는데, 그 위험하다는 핵발전소가 군사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식이라니 언제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미 핵발전소 주변에서 거주해온 사람들에게서 갑상선암을 비롯해 방사선 관련 암이 발병했다는 점은 밝혀져 있다.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은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이 불가항력적인 폭력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걸 겪어야 했고, 소리 없이 재난의 피해자가 되어야만 했다. 사고가 없음에도 이와 같은 피해가 속출하는데, 핵발전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넘어선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고효율 에너지를 얻는다는 이유로 핵연료 폐기물과 끝이 보이지 않는 동거를, 가슴 졸이며 해야만 한다. 비단 그 피해가 인간 사회에 그치지 않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최근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다. 핵에너지는 폐기 과정뿐 아니라 그 원료를 정제해 수급하는 과정에서만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마련되어야 하는 설비들에서만도 탄소배출량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핵발전소는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한대로 큰 위험한 시설인데, 그걸 지속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너무 무자비하고 무책임하다. 기실, 핵에너지는 전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전쟁을 위해 태어났다고 한다. 그와 같은 기원을 따져본다면 현재에도 핵이라는 거대한 힘이 고스란히 폭력적인 세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게 선연히 보이는 듯하다.

기자회견과 특강이 있고 며칠 후, 나는 몸살을 앓았다. 거의 엎드려서 몇 시간 동안 현수막을 썼던 게 화근이었다. 현수막이 뭐라고, 목에 담이 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같이 일하는 국장님이 한의원을 추천해주셨다. 평소 한의원 갈 일이 없었는데 나는 체질 점검도 받을 겸 해서 한의원에 가기로 결심하고, 기울어진 목을 겨우 추슬러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전주 시내에 있는 광장에 들렀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과는 조금 방향이 다른 곳, 한옥마을과 이어지는 교차로에 광장이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이나 시청광장과 비교하자면 무척 작다. 그 작은 곳에, 오히려 이 땅 틈틈이 기억할 것을 마땅히 기억하려는 힘을 새겨놓겠다는 듯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추모 천막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해 있다. 거대한 폭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회적 참사. 결이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와 같은 참사들은 지금이 도대체 어떤 시대인지를 떠올려볼 때 거대한 사회 시스템과 관련해 핵발전소가 야기할 위험과도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미비한 재난 안전 시스템과 무책임한 공권력, 그리고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줄 수 있는 마음이 부재한 기이한 야만의 정동들.

나는 내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인지, 좋은 활동가 또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렵고 두렵다.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특정한 삶을 흉내 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닐 수 없다. 핵에너지는 우리를 위한 에너지가 아니다.

희뿌연 미래

재작년 출간된 한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구체적으로 핵이 야기하는 공포를 상상해본 적이 있다. 이원석 시인의 첫 시집 <엔딩과 랜딩>(문학동네, 2022)에 수록된 시 중 한 편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다음 시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수록된 에피소드 중 한 편을 재창작한 시로, 먼 훗날의 참상이 이전 체르노빌 때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일이 핵처럼 일상에 가득한, 희뿌연 미래를 떠올려본다.

(인용문)

소방관이었다는 할아버지가

불타는 우크리티예를 잠재우러 집을 나설 때

할머니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다는데

병원에 실려온 할아버지의 목구멍으로 가제 손수건을 넣어

입안 가득 부서져 올라오는 폐와 간의 조각들을 닦아내고

사랑하는 사람이 빛도 없이 타올라 재가 되는 광경을

내내 지켜보았다는데

체르노빌의 불이 할아버지의 몸을 태우고

할아버지의 몸에서 할머니의 몸으로

할머니의 몸에서 몸안의 아이에게로 옮겨붙어

결국 할아버지의 발치에 아이를 묻었다는데

빛도 열도 없는 불이 아이에게로 모여들어

할머니는 목숨을 건졌지만

오늘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

  • 이원석, 부분

윤은성
거리와 동료, 시(詩), 그리고 수라 갯벌의 친구. 시집 <주소를 쥐고>를 펴냈으며, 전북녹색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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