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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서서, 한 권의 잡지를 건네보다 – 빅돔체험기

2025.10.23

어쩌면 흔한 풍경일 수도, 처음 보는 광경일 수도 있는 길 위의 사람들. 빨간 조끼를 입고 한 손에는 잡지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는 판매원, ‘빅판’이다. 이들이 건네는 한 권의 잡지는 단순한 판매가 아닌 자신의 삶을 다시 세워가는 단단한 건넴이다. 간혹 가다 이러한 빅판의 옆자리에 서서 함께 잡지를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빅돔’이다. 빅돔은 그날 빅판을 옆에서 응원하고 돕는 동료로서, 잡지를 판매하는 것을 보며 그들의 하루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게 된다.

빅이슈코리아 임팩트 기자단으로서 하는 마지막 활동이기에 나도 기꺼이 빅판을 체험하였다. 처음, 이 기회에 대해 들었을 때는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특히 낯선 공간, 낯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일은 내게 큰 용기가 필요하다. 혹시 내가 방해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이 행동이 누군가의 삶을 위한 발걸음이라는 사실이 나를 붙잡았다. 그렇게 설렘과 무서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나는 빅돔으로서 거리에 서게 될 준비를 마쳤다. 이 낯선 체험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또 어떤 변화를 느끼게 될지에 대한 호기심을 품으며 길 위로 나가보았다.

합정역 판매지 모습

빅돔으로 처음 나가게 된 장소는 합정역 7번 출구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오후 3시에 판매가 시작되어 여유를 두고 2시에 집을 나섰다. 평소라면 그냥 무심히 지나쳤을 길이었지만 유독 걸음걸이마다 주위를 의식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사람들의 발걸음, 손에 쥔 무언가, 빠르게 스쳐 가는 표정 하나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합정역에 도착하자 역 안의 상황은 예상보다 더 복잡했다. 출구로 향하는 계단, 계단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고, 길모퉁이마다 활기가 가득했다. 친구를 기다리는 얼굴, 전화를 붙잡고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 무심히 음악을 들으며 지나치는 사람까지, 저마다 다른 일상들이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7번 출구 앞 스마트 도서관에 다다르자 잡지를 하나씩 꺼내고 계신 빅판을 만날 수 있었다. 정성스럽게 깐 천에 잡지를 하나씩 놓고 모자와 빨간 조끼를 입으면 오늘의 판매가 시작되었다.

단순히 조끼를 걸친 것 같았지만 거리의 구경꾼에서 현장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았다. 내게 주어진 일은 단순했다. 빅판의 앞에서 잡지를 들고 서 있는 것. 합정역에서는 소리를 내어 크게 판매하면 역무원들이 찾아와 주의를 준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나의 일은 그저 묵묵히 서서 사람들에게 잡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스쳐 지나가는 사람, 잡지를 힐끔거리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멀리서만 눈길을 주는 사람들까지 대부분은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 속에서 나는 작은 존재일 뿐이었다. 판매 시간이 흐를수록 다리가 아파졌다. 빅판 선생님은 나에게 간이 의자를 내주며 여기 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셨다.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 텐데 재차 의자에 앉으면서 하라고 하셨다. 나를 먼저 배려하는 그 마음이 낯설 만큼 크게 다가왔다. 그 따뜻한 한마디에 다시 잡지를 움켜쥐고 서 있을 힘을 얻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갔고, 앞에서 묵묵히 서 있는 빅판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남성분이 다가와 “여기 카드 결제도 되죠?”라고 묻는 순간, 온몸에 힘이 돋았다. 남성분의 일행에는 한 여성분이 계셨는데 빅판 선생님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구매하신 머리핀을 건넸다.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그 손길이 거리 한복판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간혹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 때도 있었는데 이는 잡지가 아닌 길을 묻기 위해서였다. 놀라웠던 건 빅판 선생님이 모든 길을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거리를 누구보다 깊이 살아온 사람만의 묵직한 삶이 느껴졌다.

브이를 하고 계신 합정역 빅판

잠시 숨을 고르며 질문을 건넸다.

Q. 요즘 날씨가 그래도 점점 풀리고 있어요.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면서 어떤 계절이 가장 힘드시나요?

A. 여름이 제일 힘들죠. 더워서 좋긴 좋은데… 겨울은 뭐 추워도 옷만 잔뜩 껴입으면 되는데 여름에는 답이 없어요.

Q. 그래도 이제 여름이 점점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걸 판매하면서 이제 느끼는 계절이나 날씨의 변화가 있을까요?

A. 변화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이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니까 선선해지고 좀 낫긴 낫네요. 그런데 판매는 여름이나 다른 계절 다 비슷해요. 3시부터 6시 정도까지는 원래 한 권 나갈까말까 해요. 6시 반부터 이제 서너 권씩 팔리고. 그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거예요.

Q. 그러면 혹시 합정역에서 판매하신 지 4년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4년 동안 여기서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이나 장면이 있으신가요?

지금도 일주일인가 한 8~9일마다 한 번씩 오시는 아주머니가 있으세요. 그분이 오시면 무조건 한 권. 똑같은 잡지여도 무조건 한 권씩 사주시고, 음료수 하나 사주시고. 항상 감사하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빅돔은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매일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서 잡지를 들고 서 있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몸소 느꼈다. 다리가 아프고 지쳐가던 순간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빅판의 모습은 말 없는 응원처럼 다가왔다. 특히 늘 지나가는 이들에게 친절을 건네는 태도는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빅판의 옆자리에서 응원하는 것이지만 도리어 응원을 받고 돌아온 듯하였다. 단순히 잡지를 판매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온기를 나누는 일이었다. 이렇게 거리에 오랫동안 사람을 살펴볼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거리 위에 서 있으니, 누가 지나가고, 누가 멈추는지 세상이 고스란히 보였다. 바쁘게 스쳐 가는 발걸음 속에서도 작은 관심과 눈빛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달았다. 이 경험은 빅돔의 자리에 서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소중한 배움이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일이 이렇게 묵묵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단순한 봉사나 체험이 아닌, 잠시 멈추어 서서 도시의 다른 얼굴을 마주하고, 내가 몰랐던 따뜻함과 무게를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감히 권하고 싶다.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단단히 묶는 실의 작은 매듭이 되어보며.


글/사진. 빅이슈코리아 임팩트기자단 1기 권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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