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판매원의 이야기
신촌역 2번
송기배 빅판
2021.12.15
힘찬 인사로 독자분들께 진심을 전하는 신촌역 2번 출구 ‘송기배’ 빅판의 이야기
그의 지나온 삶에 대해 듣다 보니, 그가 마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마구 내달리던 사람 같았다. 인형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일이 다 끝난 밤, 혼자 기술을 익혀 미싱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봉제 공장을 운영하며 사장님 소리도 들었다. IMF 여파로 공장이 부도난 후에는 또 직업을 바꿔야 했지만, 금세 여기저기서 불러주는 솜씨 좋은 도배사가 되었다. 아파트 공사, 대형 호텔 리모델링, 코엑스 박람회장 세트 등 벌이가 좋은 굵직한 작업을 했던 그였지만 홈리스가 되었다. 어지럽게 내달리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평평한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듯한 송기배 빅이슈 판매원(빅판)을 만났다.
조금 피곤해 보이시네요.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좋지 않아요. 당뇨가 있어 허리, 다리, 어깨… 아프지 않은 데가 없네요. 솔직히 파스 힘으로 살아요. 여기저기 파스 안 붙인 데가 없어요. 이것도 다 당뇨 합병증이지요.
당뇨는 식단 관리가 매우 중요한데, 어떻게 관리하세요?
혼자 사니까 뭐 제대로 되겠습니까? 몸에 좋은 것 챙겨 먹기가 힘들지요. 만들어서도 먹고 사 먹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도 밥은 꼭 잡곡밥을 지어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데워 먹어요. 반찬은 사 먹고요. 시장 가서 2만~3만 원어치 사면 일주일간 먹어요. 혼자 사니까 반찬도 잘 줄지 않아요.(웃음)
홈리스가 되기 전, 젊을 때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제가 서울에 올라온 지 50년이 넘었어요. 1973년에 왔으니까요. 서울 와서 아는 분 소개로 봉제 공장에 들어갔지요. 왕십리에 있는 공장이었는데 거기서 3~4년 일했어요. 완구 봉제여서 인형 안에 솜 넣는 일을 했지요. 옛날에는 끝에 ‘–사’ 자 붙는 직업을 알아줬거든요. 의사, 판사, 검사…(웃음) 우리 일에서도 봉제사를 최고로 쳐줬어요. 그래서 봉제사가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공장 일 마친 뒤 야간에 따로 혼자 기술을 익히고 연습했지요. 그 회사에서는 미싱 기사를 최고로 알아줬어요. 밤에 기술을 터득해 미싱 기사 생활을 오래했어요. 10년 이상 했어요. 그때 벌이가 짭잘했지요.(웃음)
오랫동안 미싱 기사 일을 하셨네요. 그럼 그사이에 결혼도 하고 가정을 이루셨나요?
거기서 집사람을 만나 결혼했지요. 딸 하나 낳아 가정 꾸리고 잘 살다가, 기술이 있으니 봉제 공장을 차렸어요. 집사람 형제가 7남매였는데 그땐 제가 제일 잘나갔지요. 사장님이니까.(웃음) 근데 IMF가 왔잖아요. 회사가 부도나고 결국 망했어요. 쫄딱 망하고 나니 집사람 보기도 미안하고 딸 앞에 서 있을 수도 없고. 주위에서 그래요. “야, 남자가 집에서 나와야지 여자가 나오면 딸은 아빠가 못 키운다. 딸은 엄마가 키워야지.” 그래서 가방 하나 들고 집을 나왔어요. 돈암동에 있는 쉼터에 입소해 하루에 2만 5000원 받고 지하철 공공 근로로 일하면서 버텼어요. 그러다 쉼터 소장님이 도배 일을 배워보라고 권유하셨고, 저도 괜찮겠다 싶어서 도배 기술을 배웠어요. 그것도 벌이가 괜찮더라고요. 도배가 일당이 좀 세요. 그때 도배 의뢰하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많이 왔었어요. 기술이 좋다고 소문났었나 봐요.(웃음)
이 글은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사나이: 신촌역 송기배 빅판 (2)'에서 이어집니다.
글. 안덕희 |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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