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판매원의 이야기
오목교역 2번(지하)
임락선 빅판
2023.03.29
긍정적인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힘차게 살아가는 강남역 1번 출구 ‘임락선’ 빅판의 이야기
'믿었던 지인의 배신. 호의로 개인정보를 알려준 일이 그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개인 파산을 선택한 후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다. 내가 남에게 나쁘게 굴지 않았기에 남도 나에게 나쁘게 굴 것이라 생각지 못하고 살았다. 사람을 믿은 죄로 상상도 해본 적 없던 빚이 생겼다. 살면서 억울하고 분한 일이 많았지만, 이제 인생은 맘 편한 게 최고라는 것을 깨달은 임락선 빅이슈 판매원(빅판)을 만났다. '
얼마 전에 큰 수술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지금 건강은 괜찮으세요?
계속 약을 먹고 있어요. 지난해 8월에 심장 수술을 했거든요. 갑자기 심장이 멈춰서요. 8월 5일 즈음이었어요. 길을 걷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쫙 흐르고 구토가 나오려고 하면서 곧 죽을 거 같더라고요. 가슴도 쥐어짜듯 막 아프면서요. 길에 쓰러져 있다가 간신히 추슬러서 억지로 억지로 집에 왔어요. 당시 아래층에 사시는 분이 저희 집에 올라왔다가 쓰러져 있는 저를 발견하고 바로 병원에 데려갔어요. 심장내과인가 의사한테 가니까 바로 수술해야 한다며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하더라고요. ‘난 혼자 몸이니 죽어도 괜찮다.’ 하는 마음으로 동의했지요.(웃음) 바로 수술하고 깨어나니 중환자실이더라고요. 기저귀를 채워놓고 머리고 가슴이고 어디고 막 무슨 줄이 연결돼 있고 그렇더라고요. 간호사한테 몸에 왜 이런 걸 달아놓았냐고 물으니까 제가 3일 동안 못 깨어났대요. 3일 만에 깨어난 거래요, 제가. 참 힘든 고비를 넘겼네요.
굉장히 큰 수술을 하셨군요.
네, 큰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도 오래 있었으니 병원비가 걱정되더라고요. 간호사한테 치료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병원하고 연계된 사회복지재단이 있다고 하대요. 거기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요. 그래서 그 재단에 가서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내가 홀몸이고 병원비를 내기 힘든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병원비는 복지재단에서 내줄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했죠. 무척 고마웠어요.
몇년 전에 《빅이슈》를 판매하시다가 그만두셨었죠?
알고 지내던 빅판에게 빅이슈를 소개받아서 1년 정도 빅판으로 일했었어요. 그때만 해도 고시원에서 지냈는데, 계속 그렇게 지낼 순 없겠더라고요. 고시원에서 벗어나고 싶고, 돈도 모으고 싶어서 다른 일을 찾았죠. 한 청소업체에 들어갔어요. 근데 나이가 차니까 그 일도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집에서만 지내니 잡생각이 떠나지 않고 머리가 돌 것만 같았어요. 또 제가 워낙 술을 좋아했어요. 술도 자꾸 더 마시게 되고 이렇게 지내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지방으로 막노동을 하러 갔어요. 산에 보면 전신주 있잖아요. 그거 세우는 작업을 하러 다녔어요. 세우려면 땅도 파고 기초 작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 일을 하면서 강원도에서 3년을 지냈죠. 서울에 와봐야 또 친구들하고 어울리게 되고, 그럼 술 마시게 될 게 뻔하니까 일부러 안 올라오고 그곳에서 지냈어요.
그런데 다시 빅판으로 돌아오셨어요.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막노동은 겨울에 일이 끊겨요. 일이 없어져서 서울에 올라와 다시 고시원을 얻었죠. 서울에 돌아오니 우편물이 엄청나게 와 있더라고요. 보니까 카드 회사에서 뭐가 많이 왔어요. 딱 보는데 불길하대요. 카드 회사에서 저한테 우편물을 그렇게 많이 보낼 일이 뭐가 있겠어요. 예전에 한 지인을 믿고 제 개인정보를 넘겨준 적이 있는데, 그때 카드를 만들어 마구 쓰고는 종적을 감춘 거더라고요.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카드 회사를 찾아갔죠. 가서 알아보니 저한테 카드 빚이 7000만 원 정도 있었어요.
서울시에서 나와서 법무 일을 보시는 분이 계세요. 그분 찾아가서 이만저만하다고 사정을 얘기하니 개인파산 신청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려면 채권자한테 부채증명서를 받아 와야 한대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이런저런 서류를 다 준비하고 해서 결국은 개인파산 신청을 했어요. 갚을 능력도 안 되고,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요.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데 행정절차만 7~8개월이 걸려요. 기간도 기간이지만 사람이 그렇게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시달리니 살 수가 없더라고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어요. 강원도에 가서 일하느라 우편물도 못 받아보고 카드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있던 사이에 벌어진 일이에요.
무척 억울하고 분하셨겠어요. 또 앞으로 먹고살 일도 큰 걱정이셨을 듯합니다.
그사이 ‘노가다’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닥치는 대로 했죠. 그러다 나이도 더 먹고 하니, 65세가 넘으면 어디서도 써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빅이슈 사무실에 다시 전화를 했어요. 잡지 판매 일을 시작해야겠더라고요. 이 일은 앞으로 계속 할 수 있으니까 빅이슈로 돌아왔지요. 이제부터 이 일이 내 직업이다 생각하고 있어요. 빅판 일이 제가 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잖아요. 어딘가에 소속돼 일하고 동료들이 있고, 내가 노력만 하면 한 권이라도 파니까 생계에 도움이 되죠. 어떤 날은 하루에 한 권도 못 팔아요. 그래도 판매지에 나가 서 있으면 사람 구경이라도 하고 잡생각도 없어져서 좋죠.
이 글은 '사람에게 실망하고, 희망도 얻고 ― 강남역 임락선 빅판 (2)'로 이어집니다.
글. 안덕희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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