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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5 스페셜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없다

2021.02.26 | 공학도 H의 이야기

꾸준히 할 것이라 믿었던 직업이나 공부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조급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피부미용을 전공 후 실습을 마쳤던 H는 이제 도시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H는 우리에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야말로 정말 적당한때가 아닐까”라고 묻는다.


예전에 하던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개 부탁한다.

전에는 피부미용을 전공하고, 이후 피부관리 샵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등의 서비스 업무를 했다. 현재 도시공학을 전공하며 도시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시계획가로서 어떠한 도시를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고민하고 탐구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로 하는 일을 바꿨는데, 그렇게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서비스직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에게 친절을 한층 더 베풀어야 하는, 감정노동 성격의 서비스를 잘 못하게 되더라. 게다가 나는 늘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일할 때 일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서비스직 자체와 성향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특히 실무에서 여러 부당한 일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그때 상사의 과도한 비난으로 견디지 못할 만큼 모욕감을 느꼈고,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편입 공부를 시작하고 진로를 다시 정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피부관리 샵을 그만둔 후 한 주 정도는 편하게 쉬었는데, 곧장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전부터 서비스직 말고 다른 길로 가려 시도했지만 번번히 돌아왔다. 단순히 나의 전공이고 지금껏 해왔던 것이라는 생각에 얽매여서 그랬던 것 같다. 미련없이 발길을 돌리기에는 전공을 바꾸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둔 후 2주 만에 편입학원을 등록하게 됐다. 이런 추진력이 자주 발휘되진 않는다.(웃음)



사이사이 한번 해보고 싶었던 분야엔 어떤 것이 있었나.

관심 있는 분야는 영상, 디자인분야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당시 편입 결심을 하기 전 학원을 알아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관련 채용 공고를 보면 대부분 학과와 상관없이 대학 4년제를 졸업해야만 지원이 가능하더라. 소위 ‘현타’가 오기도 했다. 편입 준비로 귀결된 이유이기도 하다. 전공도 전공이지만, 어디든 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편입 준비를 했고, 이과 시험을 준비하며 자연스레 공학계로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간 관심있었던 주거나 도시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고 동시에 디자인적 감각을 필요로 하는 도시공학에 매력을 느껴 전공을 결정했다.

그동안 쌓은 커리어 대신 새로 시작하는 데에 망설임이나 두려움은 없었나.

처음엔 ‘남들보다 늦진 않았을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막상 결정을 한 이후부터는 두려울 겨를이 없었다. 일단 나에겐 하는 일을 바꾸고 싶은 열망이 강했고, 전부터 수학을 매우 좋아했지만 끝까지 열심히 해보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수학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이과편입은 편입영어와 편입수학을 준비한다.) 편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카페에 들어가 보니, 내가 몇 년 전에 남긴 글이 있더라. “스물 한살인데 지금 준비해도 늦지 않을까요?”라는 내용이었다. 지금보다도 어린 나이에 그런 고민을 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피부미용과 도시공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내가 느끼는 미용과 도시의 공통점은 두 분야 모두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자 미적인 요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느끼는 차이점은 나의 관심도 차이다. 예전엔 내 직업임에도 미용제품이나 기술적인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전공과 관련한 도시계획, 도시재생, 주거문제, 도시 및 주거정책 등에 대해 더욱 폭넓게 흥미를 느끼고 공감하게 된다.




바뀐 전공이나 일에 대해 최근 하고 있는 고민이 궁금하다.

아무래도 취업이다. 현재 인턴 활동을 하는 중인데,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해 퇴근 후 독서실에 다닌다. 머릿속에 취업 생각으로 가득하다. 편입 시험 때보다 더 긴장을 해야 할 것 같다. 신기한 건, 지금 내 모습이 처음 피부미용 서비스직을 시작할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활기가 넘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만 이번에는 꼭 주눅들지 않고, 지금 느끼는 그대로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다.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은?

인턴으로서 실무에서 도시개발사업 등 도시계획의 전반적인 업무보조를 맡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일 중 하나가 지형 분석인데, 학교에서 미처 습득하지 못했던 정보를 직접 찾아가면서 공부할 수 있어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지속 가능한 ‘나의 일’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일이 좋은 일이자 지속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견딜 수 없다면 더 이상 그 일을 지속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더 이상 힘을 낼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일이라면 말이다. 나 역시 커리어를 변경할 때, 타인이 나를 끈기 없는 사람으로 보진 않을까 무서웠는데, 막상 일을 그만두니 다들 격려해주더라. 그동안 고생했다고, 잘 버텨냈다고, 넌 참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었다.’는 말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

편입을 처음 고민했을 때 바로 시작했다면 물론 시간이 절약됐을 것이다. 하지만 피부미용 서비스직을 하며 겪었던 일도, 그로 인해 느낀 수많은 감정들도 모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가치 있었고, 유의미했던 시간이라고 본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인생은 긴데, 1~2년 정도의 공백이나 준비기간이 지금은 길어 보여도 나중엔 아주 짧은 순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황소연
이미지제공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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