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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6

새해의 시작, 홈리스를 떠올려야 하는 이유

2024.02.19

김조명 님 추모제.김조명 님이 생활하던 작은 나무집 앞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새해 첫날 아침에 받은 첫 전화는 한 홈리스의 부고였다. 간밤 새벽 두세 시까지만 해도 기척이 있던 그가 아침 6시에는 숨을 거둔 모습이었다고 했다. 외국인이던 그를 주변에서 물심양면 돕던 홈리스들은 추모제를 치르고 싶어 했다. 그는 이따금 아들 얘기도 했지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안다. 까마득한 수십 년 세월을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지낸 가족이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30년의 이민 생활, 10년의 홈리스 생활 끝에 남은 것은 거리에서 만난 동료들뿐이었다.

홈리스행동과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은 매년 동짓날 거리와 쪽방 등지에서 명을 달리한 홈리스 추모제를 연다. 2023년 한 해 동안 서울에서 사망한 홈리스는 404명. 1월 1일 아침 돌아가신 김조명(가명) 님도 내년 홈리스 추모제에 위패를 모시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2022년 동짓날부터 김조명 님까지 약 1년간 서부역 텐트촌에서만 세 분이 돌아가셨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많은 숫자다. 무척 추웠던 2022년 동지 다음 날엔 서부역에 처음 텐트를 쳤던 정◯◯ 님이 돌아가셨다. 봄에는 서부역에 살던 한 여성 홈리스가 면식이 있던 비 홈리스 남성에게 폭행당해 사망했다.

이렇게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홈리스의 사망률이 높다는 점은 명징하다. 노숙인 의료급여 이용자의 사망률을 추적해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같은 연령대 비 노숙인 의료급여 이용자에 비해 네 배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적절하지 못한 집, 이것이 의미하는 가난은 생의 길이에 개입한다.

비주택 거주민 숫자, 3년 만에 오름세로
집 아닌 곳에 사는 삶이 고단하다는 점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해마다 겨울이면 수많은 온정의 손길이 서울역과 쪽방촌에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온정이 우리 사회 연대 의식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는 온정은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는 점도 안다.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 이외의 거처’는 57만 2,279가구로, 182만 9,932명이 집 아닌 곳에 거주한다. 이는 전년보다 2.3% 증가한 수치다.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주택 외 거처 거주민의 숫자는 무엇을 뜻할까? 최근 몇 년간의 집값 폭등, 경기 악화, 금리 인상과 같은 연쇄적인 사건이 더욱 심각한 주거 불평등을 낳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를 단지 불평등이라고 표현하면 안 될 것 같다. 불평등은 대개 커진 격차 정도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불평등을 실제 경험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격차’ 정도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높아진 집값으로 ‘로또’를 맞은 소수는 이를 불평등의 확대로 경험하지 않지만, 이로 인해 높은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세입자나 그마저도 없이 비적정 거처 내지는 거리로 밀려나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된다. 불평등은 언제나 더 가난한 이들에게 그 결과를 떠넘겼다. 확대된 격차의 진짜 의미는 월급 대부분을 월세로 내야 하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일상,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저당 잡힌 삶에서부터 건강을 위협하는 잠자리나 두 시간이 넘는 통근을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력에 따른 ‘선택’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에 이른다.

텐트촌에 사는 고양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주민은 사람 손은 타지 않아야 한다며 유의한다. 나쁜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면 나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주거 불평등의 진짜 의미
한 사회가 부를 만드는 방식은 빈곤을 만드는 방식과 같다. 집으로 돈 버는 사람, 수십 채의 집을 가진 사람이 있는 사회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한 집에 사는 대가로, 혹은 집이 없어서 죽음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가장 많이 집을 구매한 상위 30명이 산 집은 7,996채에 달한다고 한다. 8,000채에 가까운 집이 단 30명의 소유물이 되는 동안 8,000개의 주거 빈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한 토론회에서 만난 국토교통부 공직자는 나에게 ‘주거복지만 신경 쓰시면 되지 공급 정책을 왜 언급하느냐.’는 불평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가 반빈곤 활동가인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당장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위한 복지 확대까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복지 이전에 한 사람에게 몰아닥친 가난이 있고, 가난 이전에 가난을 주조한 우리 사회가 있다. 이에 대해 함께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가난한 이들의 개별적 현실을 넘어 빈곤을 만드는 사회의 구조 그 자체를 바꿀 힘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추위 속에 사망한 홈리스에 대한 온정을 넘어 사회적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고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 그 자체다.

애도를 넘어 연대로
김조명 님은 2024년에는 꼭 본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들을 만나면 ‘아이 러브 유’라고 말하고 싶다며 웃었던 김조명 님이 이 말을 직접 전할 길은 사라졌다. 다만 그를 애도하는 사람들이 남았다. 김조명 님 사망 후 거리의 동료들은 그가 눕던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추모제를 치렀다. ‘외국인이니 병원에도 못 다녔겠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산재로 손을 다친 후 직장을 잃었다는 그의 생애사에 공감했다. 한국에서 사망한 홈리스의 가족을 찾는 데 양국 외교부가 정성을 다해줄 것인가 의심도 했다. 그의 마지막 식탁에는 평소 좋아하던 순대, 먹고 싶다고 했지만 아무도 사주지 못했다는 짜장면이 올랐다. 떠난 김조명 님을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 둥그렇게 하나의 마음이 떠 있다. 안타까움이었다가 그리움이었다가, 내 삶에 대한 회한이 되기도 하는 이 마음이 서로를 구할 다리가 되기를. 새해 아침 떠난 김조명 님이 남긴 것들이다.

소개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글 | 사진. 김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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