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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8A 빅이슈

홈리스 여성 이야기 - 귀로

2024.10.16

글. 김진미

주연(가명) 님이 내가 일하는 여성일시보호시설 이용을 끝내고 방을 마련해 독립했다. 시설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무료 급식을 위한 주방 보조 자활근로에 참여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일을 해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물어봤었다. 그러자 “예, 제가 요즘 행복해요.”라고 답했다. 홈리스 상황에서 내뱉은 행복이라는 단어가 다소 이질적으로 들려서였을까, 나는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그녀도 말을 하고 비슷한 느낌이었던 건지, 그 대답이 끝나고 나서 1초쯤의 휴지 후에 서로 얼굴을 보며 깔깔 웃었었다. 그런데 좀 더 듣고 보니 그녀의 행복은, 그럴 만했다. 휴대전화를 두 번이나 분실해서 형제들과 연락할 길이 없었는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번호 하나가 있어서 전화를 해보았더니 동생 전화번호가 맞았고, 그 동생을 통해 각지에 살고 있던 형제들과 연락이 닿았다는 얘기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16년 전 외국으로 떠나면서 헤어진 옛 동거남에게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했는데 그가 전화를 받아주었고, 아직 싱글이었다. 또 본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려 하더라며 그를 만나 받아 온 케이크를 보여주었었다.

그녀는 시설에서 두 달쯤 자활근로에 참여해 고시원비를 모은 뒤 독립할 예정이었다. 머나먼 외국에서 비자 만료로 추방당하고 귀국해서 얼마간의 돈을 찜질방 이용료로 다 쓰고, 주민등록증도 통장도 없어서 몇 군데 문을 두드려본 취업처에서 거절당한 상태였다. 메모해둔 가족들 연락처도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시원비라도 마련해 독립하려면 그 정도 기간은 시설에 있어야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와 극적으로 연락이 되면서 그 시기를 앞당겼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방을 얻었고, 그 방에 살러 들어가기 전에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 집을 방문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그녀의 홈리스 상황은 비교적 빨리 끝났다.

추방

내가 일하는 곳은 노숙을 하거나 노숙할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도록 긴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니 주연 님이 ‘일시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지지 자원을 찾아 신속히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충분히 ‘운’이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시설을 이용하는 여성들의 여러 사연 중에는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국길이 홈리스가 되는 길이었던 경우가 종종 있다. 고향 땅이라지만 아무런 자원도 연고도 없는 곳에 홀로 떨어지게 되었을 때 그 위기를 넘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주연 님에 대해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O.J. 님은 일본에서 불법 취업을 했다가 여권 기간 만료로 강제 추방되어 노숙에 처한 여성이었다. 일본에서는 식당 설거지를 하며 살았는데 돈을 모으지는 못해서 막상 60세가 넘어 추방되었을 때 한국에 거처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되었다. 형제들과는 연락이 끊어졌고 오래된 친구 한두 명 외에 아는 사람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주민등록도 말소되어 주소지를 마련하고 신원을 회복해야 했고, 간이정신진단 검사를 진행했더니 대부분의 항목이 위험 수준이거나 문제 수준이어서 정신과 진료도 시급한 상황이었다.

비슷한 예로 J.S. 님은 20여 년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식당에 취업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실직하면서 살기가 힘들어 귀국했다.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급여를 제대로 지급 받지 못했고 몇 번의 사기를 당하기도 해 모은 돈이 별로 없었다. 70세가 넘어 귀국할 때는 지인에게 받은 50여 만 원이 전 재산이었는데 그것도 2주간 코로나 격리호텔(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국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비용으로 소진하고는 격리가 풀린 후에는 공원에서 노숙을 했다. 자녀가 있으나 이혼 후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아 연락처조차 알지 못했고, 고령에 허리를 다쳐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고 있었으니 일을 찾아 생활을 꾸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H.O. 님도 일본에서 추방된 여성이었다. 앞서의 O.J. 님이나 J.S. 님처럼 젊은 시절 취업을 위해 일본으로 떠났던 여성이다. 일본 체류를 연장하기 위해 일본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남성과 서류상 결혼을 했으나 그와는 함께 살지 않았고,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던 중 만난 일본인 남성과 동거를 했다. 그렇게 몇십 년을 살다가 동거남이 돌연사하자,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법체류자인 것이 확인되어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당시 그녀는 동거남의 갑작스러운 사망에다 추방으로 충격이 컸던 데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생활의 불편이 컸으며 우울증 약도 복용하는 심신 취약 상태였다.

K.S. 님은 미국에서 세금 문제로 가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되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경찰서에서 하루 자고는 일시보호시설로 연계되었었다. 미국에 엄마와 아들이 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고 한국에 가족이라고는 없다고 했다. 고혈압과 천식, 백내장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너무 오래 고국을 떠나 있어서 병원을 가려 해도, 관공서를 가려 해도 너무 낯설고 길을 찾아다니기도 힘들다고 호소하곤 했다.

귀국 후 홈리스가 된 여성들

추방은 아니지만 더 이상은 외국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서 귀국을 선택한 여성들도 있었는데, 아무 대책이 없는 귀국은 역시나 홈리스가 될 위험이 큰 결정이었다. J.Y. 님은 2000년 초반쯤에 남편, 아들과 함께 남미의 한 나라로 취업 이주를 했던 여성이다. 20여 년 넘게 외국에서 살던 중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고 아들은 집을 나가 연락이 되지 않아서 홀로 귀국했다. 처음엔 이민 전에 살던 동네의 지인을 찾아가 더부살이를 했다. 하지만 가족도 아닌 지인 집에서 계속 그렇게 지내기 어려워 집을 나왔고 며칠은 빨래방 등지를 다니며 노숙했다. 그녀는 외국 이주 전에는 남편과 재활용봉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였고 이주 후에는 보따리 장사, 한인 공장 찬모 등으로 쉼 없이 일했지만 돈은 모으지 못했다. 교통사고를 네 번이나 당하기도 했고, 번 돈은 주거비와 생활비로 써서 남은 게 없었다. 결국은 빈털터리로 60세가 넘어 귀국해서 곧이어 홈리스가 되었다. 안정적으로 머물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데다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통증이 있고 걷는 것도 불편해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지인들에게 들으니 수급자가 되면 나라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해서 자신도 신청했는데 생계비가 그냥 나오지는 않고 일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푸념했다. 65세가 안 된 경우에는 근로 능력을 평가받아야 하는데 의사의 진료를 받고 근로가 힘들다는 소견이 있어야 생계비를 받게 되고, 그런 증빙을 하지 못하면 자활근로를 하는 조건부 수급자가 된다고 설명하자, 자신은 몸이 안 좋아 일을 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반복하곤 했다.

살기 힘들던 시절에 일자리를 찾아, 혹은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외국으로 이주했지만 불법체류의 불안정성 속에서 추방되거나, 일자리 유지의 어려움, 가정의 해체, 건강의 악화 같은 악조건을 버티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여성들 중 일부는, 극히 일부이겠으나 홈리스가 되었다. 주연 님은 다행히도 좋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런 운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 법. 결국 귀로에 선 그녀들이 고향 땅에서 홈리스가 되지 않으려면, 홈리스 상태를 벗어나 다시 삶의 터전을 일구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든든한 비빌 언덕이 돼주는 길밖에 없으리라.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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