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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5(커버 A) 빅이슈

홈리스 여성 이야기 - 홈리스가 된 수레 님

2025.06.23

보통 여성이 홈리스가 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 여러 이유들을 명사로, 개념의 말들로 열거하자면 실업, 빈곤, 장애, 질병, 여성 폭력, 가정 해체, 복지 체계의 부족 같은 것들일 테다. 들으면 대충은 알 것 같은, 그러나 실감나지는 않는….

얼마 전 수레(가명) 님이 경찰관과 함께 디딤센터에 오셨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몸집이 아주 작은 여성이 본인보다 커 보이는, 짐을 꽉꽉 채운 상자 두 개를 가지고 시설에 들어섰다. 동행한 경찰관 말씀으론 수레 님이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나 힘들어요. 못 살겠어요. 도와주세요.” 하셨더란다.

수레 님은 고시원에서 생활해오고 있었다. 폐지 수집으로 생계비를 마련해왔단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무리 종일 폐지를 모아다 팔아도 생활비가 안 되었다고 한다. 결국 월세를 못 내는 고시원에서 나와야 했고 찜질방에서 며칠 주무시게 되었다. 수레 님의 사정을 들은 경찰관은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시설에 갈 수는 있으니 꼭 가져가야 할 짐만 챙기라고 했다. 그녀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던 손수레는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폐지 모으러 다니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아쉬워하며 말씀하셨다.

살아온 얘기를 가만 들어보니 수레 님은 평생을 한시도 쉬지 않았던 듯했다. 그녀는 아홉 살 때부터 ‘남의 집 살이’를 시작으로 일을 했다. 재혼한 어머니가 수레 님을 아는 집에 맡기면서부터였다. 그 집에서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눈칫밥을 먹으며 집안일을 했지만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학교도 보내주질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지금도 겨우 읽을 수는 있지만 자신 있게 쓰지는 못한다. 시설의 서비스 동의서에 본인 이름을 써야 할 때 펜을 쥔 손이 흔들렸고 자신 없음과 망설임이 느껴졌었다. 청소년기를 남의 집에서 일만 하며 지내다 너무 힘들어 더 이상 그 집에 있을 수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주인집에서는 그녀에게 봉제 공장을 소개해줬다.

그때부터 수레 님은 이 일 저 일을 하며 살았다. 봉제 공장에서 시다(보조원)로 일하다가 나와서 식당 일을 하기도 했고 그러다 남성을 만나 그 집에서 살림을 해주며 함께 살기도 했단다. 최근까지 가장 오래 한 일은 폐지 수집이었다. 그러면서 동네 사람들이 ‘어디 어디에 있는 집의 방이 비었다던데.’ 하면 그 방을 얻어 살았다. 몇 년 전에는 아는 할아버지가 자기네 빈방이 있으니 들어오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 집에 가자마자 그녀 폐에 문제가 생겨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었단다. 결혼을 한 적도, 자녀도 없고, 어릴 때 헤어진 어머니와는 연락을 하지 않으니 그녀를 챙겨줄 가족이 있지 않았다. 그때 빈방을 내어준 할아버지가 자신을 돌봐주었다. 이후에 그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수레 님이 할아버지를 돌보며 몇 년을 살았고, 끝내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수급자였는데 수급비 중에서 매달 20만 원씩을 수레 님께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걸 모아 300만 원을 만들었고, 할아버지 사망 후에 그 300만 원을 가지고 나와 폐지 수집으로 근근이 살아왔던 거다.

인간다움을 해치는 빈곤

일시보호시설을 이용하려면 처음에 결핵 검사를 받아야 한다. 공중보건을 위해서다. 보건소에선 수레 님의 엑스레이 촬영 결과를 알려주며 의심스러운 흔적이 있으니 추가 검사를 해서 정확하게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다시 가래 검사를 받고 일주일 넘게 결과를 기다렸다. 시설의 격리 방에 머물면서 방으로 가져다드린 음식을 먹고 갇혀 있다시피 했는데 답답하다며, 언제까지 혼자 방에만 있어야 하는 거냐고 묻곤 했다.

평생을 고단하게 쉬지 않고 일했지만, 60세가 넘어 방 한 칸도 갖지 못한 수레 님. 빈곤의 굴레라는 흔하디흔한 말이 수레 님의 생을 설명하는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수레 님은 60대에 접어들었으나 아직 만 65세는 안 되었기 때문에 수급 신청을 하더라도 일반수급자로 생계비를 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마도 조건부수급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할 것이고, 조건부수급 자격을 갖게 되면 직업교육도 받고 지역자활센터 일자리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국민이라면 누려야 할 기초 생활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인간다움을 해치는 극단적 빈곤을 벗어나도록 돕는 일,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일 듯하다.

글.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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