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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6호(표지B,C) 에세이

한영인의 소설 읽는 밤 - 시험관 필독서

2025.07.30

김의경, 〈헬로 베이비〉

1.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섹스를 해야 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성공적인 임신을 위해 얼마만큼의 섹스가 필요한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은 건 섹스를 덜 해서가 아니라 피임을 잘해서라고 생각했다. 까짓것 맘먹고 배란 예정일에 맞춰 열심히 좀 하다 보면 아기 금방 생기는 거 아니야? 하지만 몇 달에 걸친 시도가 연달아 실패로 돌아가면서 위기감이 엄습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조언을 종합한 결과 임신을 위해서는 배란 예정일 하루에 관계를 가지는 걸로는 턱도 없으며 배란 예정일 5일 전부터 배란 예정일 3일 후에 걸쳐 매일 섹스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중증의 섹스 중독자도 8일 연속은 안 하지 않을까? 그사이 하루쯤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처럼 쉬어가지 않을까? 갑자기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평범한 주변의 이웃들이, 다른 의미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해야 하면 해야지. 초심을 되찾으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뜨거웠던 시절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호르몬이었다. 10년의 세월은 우리의 난폭했던 리비도를 포근한 옥시토신으로 바꾸어놓았고 나는 마흔이 되었던 것. 그런데 8일 연속이라니. 어떻게든 하긴 해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근데 무작정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병원에 가서 검사부터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몸에 문제가 있다면 8일이 아니라 80일간 세계일주 하듯 섹스를 해도 아이는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재빨리 제주시에 위치한 난임 전문 병원을 찾았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우리의 정자와 난자는 둘 다 멀쩡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은 건 단지 우리가 덜해서였단 말이지? 원인이 분명해진 만큼 전의는 새롭게 불타올랐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다가오는 배란 예정일을 맞이했으나 역시 8일 연속 섹스 같은 건 가능하지 않았다. 선명하게 한 줄이 뜬 임신 테스트기를 손에 든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시험관 시술을 받기로 했다.

시험관 시술에 관해서라면 남자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매일 아침 배란유도제가 든 주삿바늘을 배에 찔러 넣어야 하는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맡겨진 역할은 매우 단출하기 때문이다. 엽산을 잘 챙겨 먹은 뒤, 정자 채취실에서 자위행위를 통해 정액을 배출해서 건네기만 하면 끝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얕봐서는 곤란하다. 수음을 통한 정액 채취 과정에서 상당한 수치심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연어 양식장에서 인공수정을 통해 연어알을 수정시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암컷 연어의 배를 갈라 알을 짜낸 후 그 위에 수컷 연어의 배를 문질러 정액을 마구 뿌린 후 잘 버무리면 무려 수정률이 90%에 달한다고 한다. 정자 채취실에 들어간 남자는 모두 가련한 한 마리 수컷 연어가 된다. 그것도 수정률이 형편없는 불량 연어!

테주 콜의 장편소설 〈오픈 시티〉(창비, 2023)에는 나이지리아 출신 정신과 의사 줄리어스가 정처 없이 뉴욕 거리를 떠돌다 옛 은사 사이토 교수의 집에 들러 한담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때 줄리어스는 사이토 교수에게 최근 자신이 상담했던 한 가족의 사례를 들려준다. 그 가족에게는 백혈병에 걸린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치료 과정에서 심각한 불임 위험을 동반하는 처치를 앞두고 있었다. 소아과 의사는 소년의 정액을 냉동 보관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인공수정을 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며 부모를 안심시키려 했다. 다행히 소년의 부모는 정액 보관과 인공수정에 열려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오순절교회파라는 보수적인 기독교인이었던 그들은 “자기 아들에게 수음을 허용한다는 발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차라리 아이의 불임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기 아들에게 그들이 오나니슴의 죄라고 부르는 것을 범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시도 만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나는 오순절교회파로의 개종을 진지하게 검토해보았을 것이다.

김의경, 〈헬로 베이비〉, 은행나무, 2023

2.

시험관 시술을 결정하자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게임기 속 두더지처럼 돌출하기 시작했다. 배부르다고 손사래 치는데도 끊임없이 음식을 입에 넣어주는 시골 할머니처럼, 한번 검색했다 하면 물릴 때까지 관련 영상을 눈앞에 들이대는 알고리즘 덕분이었다. 며칠 동안 계속된 난임 영상 시청은 나의 세계 인식에 거대한 균열을 가져왔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은 아이 낳아 기르기를 포기한 세계 최강 저출생 국가인데 다른 한편에는 아이를 갖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하지만 간절한 기대와 크나큰 상심 사이를 왕래하며 지쳐가는 난임 부부의 존재는 저출생 디스토피아를 전망하는 흉흉한 목소리에 묻혀 마치 달의 뒷면처럼 가려져 있다.

김의경의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은행나무, 2023)는 그 은폐된 달의 뒷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다. 김의경은 이 소설에서 시험관 시술의 구체적인 과정과 그에 임하는 여성들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실감나게 묘사하는 한편 임신과 출산, 육아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쟁점을 “직업도 성격도 경제적 상황도” 제각각인 여성들의 시선을 통해 다채롭게 드러낸다. 이 책의 초점 화자는 모두 여성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난자 채취 과정과 달리 수음을 통한 남성의 “정자 채취는 쾌락이 수반”된다는 대목처럼 온전히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간혹 눈에 띈다.(작가님, 그것이 쾌락이라면 저는 기꺼이 금욕주의자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처 헤아리기 어려운 여성의 복잡한 심경을 이 소설을 통해 상상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험관 시술 유경험자로서 감히 말하건대,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남편이라면 반드시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 강문정(44세), 한지은(38세), 윤소라(37세), 이혜경(44세), 장은하(37세), 김정효(46세)는 “난소 기능 저하로 임신이 힘든 부류로 분류되어 있을 35세 이상의 예비맘”이다. 이들은 “스스로 배에 주사를 놓고, 수면마취를 하고,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 과정을 거친 뒤 임신, 비임신 판정을 받는 피검사 날의 좌절을 경험한 뒤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친 강문경이 만든 단톡방 ‘헬로 베이비’의 멤버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소제목은 ‘44세 강문정’ ‘38세 한지은’처럼 나이와 이름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 아호(雅號)처럼 이름 앞에 떡 하니 놓여 있는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난임 시술에 임하는 ‘학생’의 예상 성적표 역할을 한다. 소설은 지난 시험관 시술 때 병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이후로 좀처럼 동행하지 않으려는 남편 때문에 혼자 병원에 가 난자 채취 시술을 받는 강문정이 김정효의 뒤늦은 출산 소식을 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꼴찌의 반란이 시작된 것일까?

‘헬로 베이비’ 멤버들은 “15년 동안 난임병원에 다니면서 스물일곱 번의 시험관 시술”을 받은 바 있는 김정효의 임신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오랜만에 모이기로 한다. 이 단톡방을 이끄는 사람은 여성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강문정이다. 그녀는 소설을 쓰는 남편과 결혼한 이후 경제적으로 빠듯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남편의 소설이 드라마 판권으로 팔리게 되면서 작은 여유를 갖게 된 문정은 비로소 아이를 갖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남편의 정자엔 염증이 있는 데다 그녀 역시 난소 기능 저하로 채취할 수 있는 난자 개수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어 근심이 한가득이다. 강문정은 절박유산기가 있어 입원한 병동에서 막 계류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한지은을 만났다. 한지은은 늠름하고 건장한 태권도 사범을 남편으로 두었지만 알고 보니 남편은 무정자증. 다행히 고환에서 정자를 채취할 수 있어 시험관 시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직장 생활을 이어가면서 시험관 시술을 이어가는 것이 점점 힘에 부친다. 한지은은 결국 회사에 난임 휴가를 신청한 선배를 향한 익명 게시판의 악담(“나중에 출산휴가 육아휴직까지 다 쓰고 퇴직금 받으며 그만두겠지? 애 낳은 게 무슨 벼슬이라고.” “3년 내내 시험관 한다고 툭하면 자리 비워, 이식한 다음엔 안정 취해야 한다고 출장도 안 가. 애 낳기도 전에 저 지랄이니 애 들어서면 큰일 날 듯.”)을 보고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헬로 베이비’ 멤버는 아니지만 최설주 역시 “육아휴직을 쓰다가 시터를 못 구해서 그만두게 되면 육아휴직 먹튀, 계속 회사를 다니면서 칼퇴근을 하면 맘충 소리를 들을” 거란 사실을 착잡하게 인정하고 ‘전업맘’을 선택한다. 배아에서 육아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삶은 매 고비 보이지 않는 편견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문정과 같은 병원에 다니면서 우연히 친해지게 된 카리스마 넘치는 변호사 이혜경과 부잣집 맏며느리 이정효 역시 겉보기와는 다른 시끄러운 속내를 간직하고 있다. 이혜경은 사회적으로는 명망 높은 판사지만 실은 우유부단한 마마보이인 판사 남편 때문에 속을 끓이고 가난한 집 맏딸로 살다가 부잣집에 시집간 정효는 오매불망 손주 타령인 시어머니의 기대에 질식하기 직전이다. ‘헬로 베이비’ 멤버 중 유일한 미혼 여성인 윤소라도 아이를 원하는 건 마찬가지다. 윤소라는 언젠가 아이를 가질 날을 그리며 난자를 냉동한다. 그러나 그녀가 정식으로 혼인관계를 맺거나 외국에 나가 정자를 제공받지 않는 이상 그녀의 냉동 난자가 아이로 변신할 기회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에서는 “레즈비언 커플이 인공수정을 받는”다던가 “미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반드시 법적인 남편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토록 입만 열면 저출생이 문제라고 떠들어대면서 임신과 출산을 남성의 동의와 허락 아래 꽁꽁 묶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아이를 원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내밀한 사정을 통해 한국의 가족 제도와 출산 및 양육 문화 전반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3.

‘시험관 필독서’로서 이 소설이 지니는 최고의 강점은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부푼 기대와 여지없는 실망의 마음을 매우 현실감 있게 묘사한 대목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한지은이 남편과 함께 이식할 배아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러고 보니 자기 닮은 거 같아.” “정말?” “응, 귀엽고 사랑스러워.” “내가 보기엔 오빠 닮았어. 벌써부터 건들거리는 게 운동신경이 좋은 것 같아.” 두 사람은 사랑이 넘치는 눈길로 배아를 바라보며 ‘찰떡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시험관 시술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험관을 하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렇게 된다. 형언할 수 없는 애틋한 간절함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심리적 갈등과 싸움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맡는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보니 아내가 어떤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어떤 마음으로 통과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기 어렵다.(맞다. 내가 그랬다.) 이 소설은 남편을 향해 쏟아내는 불만과 분노의 세목이 요연하고 위트 있게 정리되어 있어 남편 입장에서 미리 읽는다면 그에 맞춰 올바른 대비 태세를 갖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는 남편에게 이 소설을 거듭 추천하는 데는 이런 실용적인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한다.

난자 채취를 위해 대기 중이던 강문정은 대기실 한쪽 벽에 붙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거기엔 이렇게 써 있었다.

(인용문)

난임부부 여러분 힘내세요.

아기는 발이 작아 아장아장 천천히 온답니다.

아기의 발이 얼마나 작을지, 그래서 우리에게 오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나 역시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저 문구를 읽었다. 그 순간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이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에도 작은 발을 꼬물거리며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을 아이를 기다리는 수많은 난임 부부들에게 부디 발 작은 아기가 천천히 걸어와 끝내 품에 안기길 빈다.

참, 그런데 46세 김정효는 어떻게 임신에 성공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글. 한영인

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정일과 함께 쓴 비평 서간집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 문학비평집 〈갈라지는 욕망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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