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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6호(표지B,C)

오후의 시각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2025.07.30

믿기지는 않지만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계에는 꽤 많다고 한다. 심지어 그 명단의 제일 첫 번째 줄에 지상 최고의 권력자라는 미국 대통령의 이름도 적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변화 불신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발언을 들어보면 꽤나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는 아마 평생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왜 그들은 기후변화를 믿지 않기로 작정했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 대통령씩이나 된 사람이 한낱 무지렁이인 나도 아는 걸 알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근래 몇 년간 일어난 전 지구적인 이상 현상은 기후변화를 부정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증거들이었다. 그럼에도 (정보가 부족하거나 자신이 처한 환경 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 몇몇 사람은 정말 진지하게 기후변화 음모론을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대통령이 이를 부정한다고? 그건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아주 합리적으로 추론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기후변화를 알고 있지만 부정하는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왜 굳이 그렇게 행동할까? 간단하다. 그게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비율의 국가별 통계를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집트 등이 상위권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화석연료 매장량이 높은 국가다. 당연히 그들의 수익 중 상당수는 기후변화를 촉발하는 화석연료에서 나온다. 그러니 기후변화가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실제 사실을 호도해서 받아들이게 만든다. 반면 한국은 기후변화 음모론을 믿는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이는 당연히 한국의 수준 높은 의무교육 덕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동시에 한국이 딱히 화석연료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부정할 이유가 없다. 기후가 변화되면 우리는 얻는 것도 없이 잃기만 할 테니까.

하지만 이 모르는 척도 계속할 순 없다. 일반인은 괜찮겠지만 미국 대통령이라면 언젠가는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세계가 끝장나버릴 테니까. 그렇다면 트럼프를 포함해서 미국의 강경 정치인들은 언제쯤 기후변화를 인정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기온이 올라 북극항로가 충분히 열릴 때가 되면 슬며시 기후변화를 인정할 것이다.

북극항로는 미국의 미래?

북극항로, 말 그대로 북극을 통과하는 항로를 말한다. 세계 물류의 대부분은 바닷길을 통해 운반된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이 운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용을 못하는가? 북극에는 추운 날씨 때문에 빙하가 많아 안전하게 운행하기가 어렵다. 현재는 이용하려면 쇄빙선의 에스코트를 받아야 하며 이조차도 특정 시기에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혜택이 많아 이용하는 선반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는 북극항로의 가능성을 점점 더 키우고 있다. 북극 지역의 동토가 녹아 지하자원이 추가되는 것은 덤이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물류를 장악하는 것도 미국의 패권을 연장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자신만의 무역로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북극항로에 접하고 있지 않다. 북극항로가 중요해지면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취임을 전후해 트럼프가 한 이상한 행동이 많은 부분 이해된다. 그는 갑자기 덴마크에 그린란드(북극항로에서 중요한 기점이 된다)를 내놓으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했으며, 캐나다(북극항로에서 포션이 높다)에게는 미국에 소속되라는 SNS를 날렸다. 이는 명백히 북극항로를 염두에 둔 행동이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파나마를 겁박하여 운하의 운영을 자신들이 유리하게 하도록 변경한 것 역시 해상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도 그 그림으로 보면 자연스럽다. 북극항로에 접한 것은 물론 중국과 인접한 러시아와 사이가 좋아야 중국을 더 철저하게 견제할 수 있다. 사실상 산업이 약한 러시아는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보다 훨씬 부리기 좋은 상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부터 러시아와의 관계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쳐들어가면서 대중국 전선이 흐트러졌고 러시아와 중국이 다시 가까워졌다.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대한 전쟁을 빨리 정리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희토류를 우크라이나에서 뺏을 수 있다면 금삼청화겠지. 중국에 점점 밀리고 있던 러시아 입장에서도 나쁠 것 없는 딜이다.

북극항로만 염두에 둬도 트럼프의 많은 행동이 이해가 된다. 캐나다가 미국에 귀속될 일은 없겠지만, 덴마크에게서 독립을 원하는 그린란드는 미국과 가까워질 확률이 높다. 그냥 트럼프가 미친 X여서 미친 짓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어쩌면 진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트럼프는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그 행동은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사실 나는 트럼프가 1기 때에 비해 너무 강한 신념을 가진 것 같아 오히려 그게 더 걱정스럽다. 과거에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인기가 없을 것 같으면, 실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트럼프는 이상하게 신념에 가득 차 있다. 취임 후 그는 그냥 1기 때처럼 협박만 했어도 충분히 실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더 나아간다. 정말 실현해버린다. 스스로 말한대로 총기 암살에서 자신이 살아남은 것을 정말 신의 은총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자신의 사명이 있다고 여기는 걸까? 그는 과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 혁명가가 될까, 아니면 세계를 망친 지도자가 될까?

아무튼 그는 명령을 내렸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글. 오후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일곱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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