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334(커버 B) 커버스토리

COVER STORY - 바라본다면

2025.05.19

카와시마 코토리 작가

카와시마 코토리의 이름을 모르는 이조차도 ‘미라이짱’의 사진을 본다면 단박에 미소가 스르르 지어질 것이다. 이 사진을 SNS나 친구의 메시지 창에서 봤을 수도 있고, 미라이짱의 사진을 처음 보더라도 그 사진에는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다정한 마력이 있다. 새빨간 볼, 깜찍한 바가지머리, 진한 눈썹, 그 아래의 크고 까만 눈. 세 살배기 소녀가 양 볼을 물들인 채 눈 속을 뛰어다니고, 콧물 방울이 맺힐 정도로 서럽게 우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미라이짱을 촬영한 시리즈는 작가가 친구의 집에 1년 여간 머물며 그 집의 아이였던 미라이짱을 오래 관찰하고 일상의 자연스러움울 포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물이다.

미라이짱을 비롯한 사진가 카와시마의 사진에서 시작되는 봄날의 온도와 같이 따스한 빛이 풍기는 이유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카와시마 코토리의 개인전 소식에 진작부터 그의 사진집을 해외직구로 구매해 소장하고 있었던 팬들은 부지런히 예매를 서둘렀다. 작가의 상업 데뷔작 〈BABY BABY〉부터 그의 대표작인 〈미라이짱〉 연작, 서울의 가을과 겨울을 배경으로 한 신작 〈사랑랑〉까지 총 309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사란란〉에서는 1997년부터 2024년까지 카와시마 코토리가 걸어온 작업의 연대기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카와시마 코토리: 사란란〉
기간: 25년 10월 12일까지
장소: 석파정 서울미술관
미술관 운영시간: 수~일 10시부터 18시까지 (매주 월, 화 정기휴무)

이건 카와시마 코토리 사진이 분명하구나, 작가의 인장과도 같은 아련한 따스함과 부드러운 색감, 피사체가 그의 앞에서 얼마나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어우러진 사진은 모두의 추억을 자극한다. 을지로의 낡은 간판, 쓰레기와 고양이, 칼국수 그릇 등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던 서울의 풍경들이 낯선 외지인의 시선을 통해 피사체가 되어 작품으로 남았다. 서울 곳곳을 누비며 자신이 마주한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은 작가의 눈에 이 도시, 서울은 어떻게 비쳤을까.

카와시마 코토리 작가© 주희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개인적으로 작품을 찍기 위해 매달 서울을 찾았습니다. 그전까지 한국에 대한 기억은 열여섯 살 때 교환학생으로 2주간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후로는 일 때문에 몇 번 오는 정도였는데, 이번 7개월의 촬영 동안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고 친구도 사귀면서 서울은 저에게 정말 대체할 수 없는 장소가 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언젠가 서울에서 사진전을 여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는데, 운이 좋게도 서울미술관 측에서 연락이 와서 정말 기뻤습니다.

수많은 도시 중 서울을 찾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다시 한번 사진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다는 동기를 가지고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아직 사진을 시작하지 않았던 시절의 나, 열여섯 살 때의 기억 속 서울의 공기를 느끼면서 사진을 찍고자 했어요.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밤늦은 시간에도 명동에 데려가주는 등 이국에서 온 저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친절을 베풀던 서울 소년들의 따뜻함, 학교 언덕 위에서 바라본 겨울의 풍경 등은 지금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서울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도시가 가진 에너지와 속도감에 압도당하면서, 동시에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포착하려고 했어요. 옛 골목길의 풍경이라든지 부담 없이 말을 걸어주시는 아저씨의 친절함 같은 것들이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이 상반된 두 가지를 작품에 동시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미라이짱〉 사진집은 정식 발매 전부터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한국에서 미라이짱의 사진이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매우 놀라고 기뻤어요. 제가 미라이짱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작은 섬에 살며 마치 현대의 도시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듯한 생경함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함을 한국분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도 눈이 많이 오는 아키타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미라이짱 가족들과 함께 보낸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치 어린 시절의 저를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자유롭게 웃고, 화내고, 울고, 뛰는 미라이짱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지금도 미라이짱과 연락을 하고 지내나요?) 그럼요. 미라이짱과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그녀는 아주 다정한 여성으로 성장했습니다.

전시명인 〈사란란〉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사랑’과 ‘사람’을 조합해 만든 단어예요. 전시명에 대한 비하인드를 들려주신다면요?

저는 한국어를 전혀, 아니 거의 못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어요. 전시 제목을 고민하다가 문득 ‘사랑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어감이 좋고, 말장난 같기도 하면서, 뜻이 궁금해지는 말이라 ‘이거다’ 했어요. 생각난 걸 노트에 옮겨 쓰는데, 제가 정말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라 ‘사랑랑’을 ‘사란란’으로 잘못 써버렸죠.(웃음) 서울미술관 관계자분들이 제목을 써둔 제 노트를 보고 다들 재미있다고 하셔서 잘못 쓴 글자가 전시 제목이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석파정 서울미술관 별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세 개 층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전시예요. 그중 관람객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섹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20년 넘게 사진을 찍어오면서 그때그때 작품을 발표할 기회는 많았지만, 초창기 작품부터 미발표작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제 작품을 선보일 기회는 사실 일본에서도 없었기 때문에 매우 감격스러웠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랑랑〉은 아직 사진집으로도 나오지 않은 최신 작품인 동시에 가장 최근의 제 감정이 담긴 작품이기도 해서 오래 머물러주셨으면 하는 섹션입니다. 한국 관객들의 눈에 제가 포착한 서울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설레는 마음입니다.

vocalise, 2024

© 주희

vocalise, 2024

전시장 내부를 을지로 골목을 본 따 탐험하듯 작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전시를 기획할 때 ‘이것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 혹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던 부분이 있나요?

미술관 관계자분들이 제 모든 작품과 인터뷰 등을 보시고 카와시마 코토리의 작품을 깊이 이해한 뒤 전시를 구성해주셨기 때문에 크게 강조한 부분은 없습니다. 굳이 부탁드린 것이 있다면 사진을 붙이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가급적 작품에 구멍을 뚫지 않는 방식으로 전시를 해서 가장 깨끗한 상태의 작품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최초로 시도한 영상 작업물이 공개되기도 하죠.

전시에서 제 인터뷰 영상을 상영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본에서는 작가가 그림자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저 개인적으로도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적었는데 이번 시도로 영상이 다각적으로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작가의 뮤즈라고도 할 수 있는 미라이짱을 비롯, 일본의 배우 나카노 타이가 등 작가의 렌즈를 통해 포착된 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는 것 또한 이번 전시의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사진가로서 인물의 어떤 모습을 포착하려고 하는 편인가요?

사람이 변화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 굉장히 집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라이짱의 경우 자아가 싹트기 전부터 자아가 싹트기까지의 과정들을 좇고 싶었습니다. 아이라는 존재는 매초 변화하니까요. 나카노 타이가 씨를 비롯해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사람, 안주하지 않고 변화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고, 그런 모습들을 담아내려고 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가로서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있다면요?

〈BABY BABY〉. 사진을 막 시작했을 때만 낼 수 있는 전혀 계산되지 않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모든 작품의 근원 역시 〈BABY BABY〉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사진을 찍어오면서 사진 작업 방식이나 관심을 두는 피사체가 지속적으로 변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요리, 청소, 빨래 등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서투른 집안일을 열심히 해내는 중이라서요. 어쩌면 다음 작품은 그런 순간들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원래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사람이나 사물을 최대한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대상의 좋은 면을 찾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싫은 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좋은 일일 때가 있거든요.

미라이짱, 2009-2011

© 주희

© 주희

사랑랑, 2024

사랑랑, 2024

사진에 대한 열정도 에너지도 바닥난 상태에서 찾은 곳이 바로 서울이라고 들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작업은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나요?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은 제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숨기고, 인스타그램 게시물도 전혀 올리지 않았어요. 온전히 저 자신과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거든요. 사진을 시작하기 전에 방문했던 이곳에서 순수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고, 대화를 나누고,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역시 나는 창작을 하는 것 그리고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사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살았다면 어디에 살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을지로3가와 서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는 사진가로서보다는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제작 과정에서 항상 고민과 걱정이 끊이지 않았는데,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노트에 고민을 적어 내려갔던 시간들 또한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20여 년의 작업 여정을 돌아본 소회가 궁금합니다.

이번 작업은 초심으로 돌아가 나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랑〉에서 피사체가 되어준 다원 씨에게 〈BABY BABY〉 속 피사체처럼 은행나무잎 위에 누워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이런 과정들을 통해 시간을 초월해 사진 속에서 부유하는 영원한 순간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같은 사진을 찍고 싶은 팬이자 미래의 사진가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을 때 결국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 덕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내가 사진을 왜 좋아하는지 생각해보고, 사진을 ‘좋아한다’는 강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이번 전시가 어떤 경험으로 남았으면 하나요?

요즘은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도 쉽게 사진을 접할 수 있지만, 전시라는 경험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전시장에 가기까지의 과정 같은 것들이요. 그날의 날씨와 공기는 물론이고 혼자 갔을 때와 누군가와 함께 갔을 때의 감상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미술관에서 전시라는 경험이 주는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기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이야기 들려주세요.

5월에 일본에서 〈사란란〉 사진집을 낼 예정이에요. 가을과 겨울의 서울을 찍었으니 또 새로운 마음으로 봄과 여름의 서울도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글. 김윤지 | 사진제공. 서울미술관·카와시마 코토리


1 2 3 4 5 6 7 

다른 매거진

No.336

2025.06.02 발매


빅이슈코리아 336호

No.335(커버 B)

2025.04.30 발매


최고심

No.335(커버 A)

2025.04.30 발매


가수 손태진

No.334(커버 A)

2025.04.01 발매


엄은향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