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유튜버 엄은향


‘세상에나, 이 향은 대체 어떤 향이길래 이렇게나 절 웃게 해주죠?’ 유튜브에서 구독자 55만 명 채널 〈엄은향〉을 운영하고 있는 코미디 유튜버 엄은향은 ‘1인 코미디 부캐 SHOP’이라고 채널을 소개한다. 10년간 개그맨을 꿈꿔온 그녀는 2019년 채널을 연 뒤 시행착오를 거치다 걸그룹 뉴진스 제6의 멤버인 부캐 ‘누진세’로 조금씩 이름을 알렸고, ‘K-드라마 속 클리셰 시리즈’, ‘인스타 핫플 카페 알바생 특징’ 등 사람들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콘텐츠로 ‘쇼츠 장인’, ‘클리셰, B급 감성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성별과 나이를 넘나드는 1인 다역 연기와 누가 봐도 가짜 같은 초록색 크로마키 배경 역시 엄은향을 나타내는 키워드. 재벌 남주, 톱스타 여주, 형사, 카페 알바생. 초록색 배경 앞이라면 엄은향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콘텐츠 기획, 촬영, 편집 심지어 연기까지 모든 걸 혼자 해내는 엄은향의 콘텐츠는 그야말로 대체 불가다.
아주 짧은 쇼츠 영상일지라도 엄은향의 콘텐츠에는 스토리가 있다. 드라마 속 클리셰처럼 유쾌하고 가벼운 소재를 다루는가 하면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기도 하는 그녀는 영상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평범한 일상 속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그 찰나가 가장 즐겁다는 엄은향은 현실과 맞닿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10년 동안 극단에서 공연하며 개그맨 시험을 준비하다 〈개그콘서트〉가 폐지되면서 유튜브로 무대를 옮겼다. 오랜 꿈을 뒤로하고 갑작스레 진로를 바꾸게 된 셈인데, 걱정은 없었나.
플랫폼만 바뀌는 거지 아예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 게 아니니까 큰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개그 짜는 건 늘 해오던 거고, 그걸 영상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달까. 마침 주변 동료들도 다 유튜브로 넘어가던 시기라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 하니까 나도 발이나 한번 담가볼까.’ 이런 느낌.(웃음)
대학에서는 호텔조리과를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1인 쇼핑몰 창업에 도전했더라. 이후 사업을 그만둔 뒤 지체하지 않고 개그맨 지망생 생활을 시작한 걸 보면 도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있으면 뭐든 망설이지 않고 해내는 편인데, 사실 오랜 시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왔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살아가지 않나.(웃음) 이런저런 일을 했었다고 살아온 경험을 얘기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더라. 그 과정에서 내가 추진력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그동안 스스로에게 못 해줬던 칭찬을 맘껏 해주는 중이다.
콘텐츠 홍수 시대에 55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코미디 유튜브 채널 중 〈엄은향〉의 어필 포인트는 무엇일까.
스토리 아닐까. 브이로그든 스케치 코미디든 상황극이든 결국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영상을 끝까지 보게끔 잡아두는 힘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해서 아주 짧은 쇼츠 영상일지라도 어떤 형태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영상을 만들려고 한다. 근데 사실 이것도 굳이 꼽자면 그런 거고, 내 채널의 강점이 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나도 알고 싶다.(웃음)
누가 봐도 가짜인 것 같은 크로마키 배경을 고수하는 것도 엄은향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웃음)
사실 오프라인 촬영이 더 어려운 일이다. 인력도 필요하고, 섭외도 해야 하니까.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는 그럴 만한 돈도 밖으로 나갈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배경지 하나만 있으면 모든 걸 다 표현할 수 있는 크로마키 앞에 섰던 거고. 분명 처음에 나는 A급을 의도했는데,(웃음) 어느덧 B급 감성과 크로마키 배경이 엄은향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되었다. 언뜻언뜻 비치는 초록 배경처럼 오프라인에서는 좀처럼 흉내 낼 수 없는 허술하고 인위적인 모습들이 웃음을 주는 거 아닐까.
‘1인 다역’ 역시 엄은향 하면 바로 떠오르는 키워드다. 특히 엄은향이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 부캐를 향한 칭찬 댓글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웃음)
사실 어린아이나 다른 캐릭터들을 연기할 때는 목소리에만 신경 쓰지 겉모습은 신경 쓰지 않는데, 남자 주인공 연기를 할 때는 오랜 시간 외모를 체크한다. 남자 주인공은 외모 지분이 100%이기 때문에.(웃음) 어떤 표정을 지어야 조금 더 남자답게 보이는지 어떻게 하면 어깨가 더 넓어 보일지 거울을 보면서 디테일들을 먼저 체크하고 촬영에 들어간다. 내가 여자라는 걸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남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외면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던 남자 가발이 이제 진짜 머리처럼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다.) 가발 개수가 좀 늘어나서 그런가.(웃음) 전에는 그냥 가발을 쓰기만 했다면 이제는 거울을 보면서 왁스로 머리를 매만지기도 한다. 점점 노하우가 생기고 있다.
1인 다역 연기뿐 아니라 콘텐츠 기획, 촬영, 편집까지 모든 걸 혼자 해내는 중이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코미디 유튜버가 비슷할 텐데,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편집자를 고용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스스로 해결하는 거다. 당시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편집이었고, 처음에는 마땅한 촬영 장비도 없어서 카메라 대신 핸드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1인 다역 연기 같은 경우도 처음엔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했다. 배우를 섭외하자니 다 돈이고, 지인한테 매번 부탁할 수는 없으니 1인 다역 연기를 하게 된 거다. 사실 개그를 짜는 사람한테 1인 다역 연기는 익숙한 일이라 별생각 없었던 것 같다.(웃음)
채널의 규모가 커진 지금도 촬영부터 편집까지 유튜브 채널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편집자라든지 PD라든지 사람을 고용할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채널을 조금 더 키워나가려면 지금처럼 혼자로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쨌든 한번 넘어야 될 산이긴 한데, 채널을 키우는 게 첫 번째 목표가 아니라서 조금 미루고 있다. 아직 찍고 싶은 영상들이 많고, 내 능력치가 100이라고 치면 그 한계를 한번 넘어보고 싶다. 아직은 한계를 넘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혼자서 뱉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온전히 다 소비하고 나서 조금씩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서 말한 한계라는 게 어떤 걸까.
수치적으로는 구독자 100만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나서 이후에 다른 사람이랑 합을 맞춰보고 싶다. 사실 내 꿈이 영화감독이다. 오랜 꿈이다. 작년부터 생각해놨던 단편영화 스토리가 있는데, 그걸 영상화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나면 한계를 넘었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롱폼보다는 숏폼을 통해 엄은향을 처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한 편의 쇼츠 영상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크게는 세 가지다.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대본화하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한다.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나.) 당연히 대본이다. 대본만 완성되면 그다음 촬영이나 편집은 빠르게 진행된다. 어차피 연기도, 촬영도, 편집도 다 내가 하니까 컨펌도 필요 없는 데다 내 스타일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대본을 쓸 때 영감이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 편인가.
‘드라마 vs 현실 시리즈’(드라마 속 클리셰와 현실의 간극을 보여주는 시리즈)를 비롯한 콘텐츠들이 대부분 클리셰에 기반을 둔 것들이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걸 접하기보다는 옛날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편이다. 사실 드라마나 예능을 거의 안 본다. 어느 정도냐면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가 〈더 글로리〉다.(웃음) 새로운 걸 찾기보다는 전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들을 다시 돌려보는 걸 즐긴다. 영감의 원천이라고 한다면 내가 과거에 즐겨 봤던 드라마나 영화, 내 무의식 속에 저장돼 있던 기억들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 노래에 어울리는 스토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옛날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맞아. 옛날에는 이런 감성이 있었지.’라며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요즘은 드라마보다는 뉴스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오는 편인 것 같다. 뉴스거리야 찾으려면 끝도 없이 많으니까. 쇼츠에서 제일 중요한 게 트렌드지 않나.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되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슈를 발 빠르게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소식은 없을지 다양한 분야의 기사들을 찾아보는 편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장 많이 돌려본 엄은향의 인생 드라마가 궁금해진다.
인생 드라마는 무조건 〈대장금〉이다. 어느 정도로 좋아하냐면 요즘 유튜브에 드라마 요약본 영상이 많지 않나. 요약본에도 여러 버전이 있는데, 편집자에 따라 요약한 방식이나 장면 같은 것들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걸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대장금〉은 장금이가 겪는 수많은 역경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역경을 지나면 또 다른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 장금이가 그 역경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지켜보면서 힘들 때 많은 위로를 받았다. 장금이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연생아, 그냥 가야 할 때가 있어. 주어진 상황에 어찌할 도리 없이 그냥 가야 할 때. 지금이 그런 때야.” 유튜브가 잘 안 돼서 고군분투할 때 장금이의 대사가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가야 할 때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영상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 신선한 충격이나 영감을 주었던 콘텐츠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고민을 좀 해봤는데, 딱히 없다.(웃음) 아무래도 새로운 콘텐츠를 자주 접하지 않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평소에는 〈인간극장〉 같은 사실주의적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실화를 다루는 콘텐츠를 좋아하는 편인데, 어제도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를 재탕했다. 다시 보면 처음 봤을 땐 안 보이던 장면들이 보이고, 그러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제도 쇼츠 제목 아이디어를 몇 개 얻었다.

여러 인터뷰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콘텐츠가 아닌 현실과 맞닿아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언급한 것을 봤다. 엄은향이 생각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콘텐츠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왜 드라마나 영화는 콘텐츠 특성상 현실의 상황들을 바로바로 반영하기가 어렵지 않나. 한창 코로나19가 유행했을 때도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죄다 마스크를 벗고 있었던 것처럼. 어떻게 보면 현실 도피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현실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난리인데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거다. 물론 이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유튜브 영상에는 비교적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런 문제들을 녹여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의 공감을 사기도 좀 더 유리하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콘텐츠에 녹여내기 위해서 뉴스를 챙겨 보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이슈화가 많이 안 되어 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접하기도 한다. 아직 영상에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찍고 싶은 영상도, 영상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것 같다.
맞다. 아주 많다.(웃음) 전부터 콘텐츠에 녹여내고 싶다고 생각해온 주제 중 하나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다. 장애인에 대한 모순적인 시선을 영상화해보고 싶다. 사실 굉장히 무거운 주제이지 않나. 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주제이기도 하고. 이 주제를 가져오는 걸 망설이게 되는 이유가, 어떻게 하면 영상을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내 목표는 그저 재미있는 영상을 만드는 거니까. 장애인에 대해 다루는 영상을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는 발언이 굉장히 위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유머랑은 다르다. 왜, 정말 진지한 영상도 굉장히 짜임새 있게 잘 만들면 ‘이 영상 되게 재밌다.’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나. 전혀 재미있는 내용이나 웃긴 장면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도 말이다. 그냥 이 영상 자체가 재미있어서 봤는데 알고 보니 장애인 얘기를 다룬 거네. 이런 반응이 나올 만한 영상을 만들고 싶다. 재미가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보지 않을까. 지금도 장애인 차별에 대해 다룬 유익하고 퀄리티 좋은 영상들은 넘쳐나니까, 나는 코미디 유튜버로서 좀 더 대중적인, 누구나 쉽게 접근할 만한 영상을 만들고 싶다. 물론 그러려면 내 능력을 좀 더 키워야 하겠지만.
조회 수나 재미를 위해 잘못된 정보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조롱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누군가를 조롱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엄은향〉의 콘텐츠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개그맨들이 개그를 짤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재미나 풍자의 ‘선’이다. 코미디의 기저에는 풍자가 깔려 있고,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실제 상황을 가지고 와서 변주를 주거나 확대하는 식이기 때문에 선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정말 한 끗만 지나쳐도 조롱이나 폄하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 비록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소재를 가져올 때 마땅히 풍자할 만한 대상인가를 고민한다. 대상이야 어떤 인물이 될 수도 있고 사회현상이 될 수도 있다. 뭐든 간에 사실 그대로만 가지고 와서 ‘이게 문제인가?’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소재여야 한다. 무언가를 풍자할 때 엄은향이라는 사람의 주관이 섞이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걸그룹 뉴진스 제6의 멤버 ‘누진세’가 생각지도 못하게 성공하면서 ‘그냥 내가 웃기고 재밌는 걸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요즘 엄은향을 웃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일까.
내 일상을 들여다보면 유튜브 지분이 100%다.(웃음) 일상의 모든 게 유튜브랑 연결이 돼 있다. 물을 마시다가도 ‘어 이거 재밌는데?’, ‘소재로 써먹을 만한데?’ 싶으면 바로바로 메모한다. ‘물 마실 때 클리셰’처럼 진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때도 많다. 아마 개그맨들은 다 공감할 텐데, 일상의 모든 상황을 개그화하는 게 습관이 돼 있다.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그 순간, 그 찰나가 즐겁고 재밌다.
개그맨을 꿈꿔왔던 시간도, 엄은향의 콘텐츠가 정착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지의 시간도 길었다. 과거의 엄은향이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를 꿈꾸는 여러 지망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올해로 벌써 서른여섯 살이 되었는데, 서른네 살까지도 뭐 하나 이루어놓은 게 없었다. 왜 사회가 서른네 살에게 으레 기대하는 것들이 있지 않나. 회사에서는 몇 년 차가 됐으며, 돈은 얼마 정도 모아야 하고. 뭐 이런 것들. 그래도 꽤 오랫동안 개그를 했는데 뚜렷한 성과 하나 없고, 모아놓은 돈은 당연히 없었다. 그러다 보니까 계속 안 좋은 생각을 하면서 나를 갉아먹고 있던 시기였다. 매일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상하게 포기가 안 되더라. 힘들었던 시기를 어떻게 헤쳐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당시의 나에게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 외에는 원동력이랄 게 없었다. 분명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내 안의 열망이 포기도 마음대로 못하게 나를 자꾸 붙잡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무엇이 아닌 본인의 소리에 집중하라는 거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나를 계속 나아가게 할 수는 없다. 물론 잠시 힘이 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포기할 꿈이라면 애초에 내 마음이 딱 거기까지인 거다. 진짜로 내가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포기하려고 마음먹어도 포기가 안 된다. 내가 경험해보니까 그렇더라. 그러니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꿈꾸는 중이라면, 다른 거 말고 그냥 본인의 소리에 집중을 한번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돈, 명예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네가 지금 정말 그 꿈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게 맞아?’라고.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나니까. 가장 먼저 본인한테 솔직해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끝내 꿈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는 온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으니까.
글. 김윤지 | 사진. 신중혁 | 헤어. 조은혜 | 메이크업. 정윤미 | 스타일리스트. 정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