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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4(커버 A) 에세이

한영인의 소설 읽는 밤 -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2025.05.19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문학동네, 2024

1.

중국 창사(長沙)에 간 적이 있다. 졸업 후 프랑스로 떠났던 동아리 선배가 창사에 있는 대학의 교원으로 가게 된 남편을 따라 거기 머물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선배를 생각하면 미셸 투르니에가 떠오른다. 신입생 시절 내게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민음사 펴냄, 2003)을 선물해준 사람이 불문학을 공부하던 선배였기 때문이다. 늦은 밤 술자리에서 어릴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 〈로빈슨 크루소〉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건네준 선물이었다.

제주에서 상하이를 거쳐 창사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던 친구와 아내도 함께 떠났다. 제주에서 상하이까지는 한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입국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자기부상열차 ‘마그레브’를 타고 상하이 시내로 진입했다. 내 나이 열 살 때 대전에서 엑스포가 열렸다. 한빛탑 앞에서 앙증맞은 포즈를 취하던 꿈돌이를 기억하는지? 그때 나는 엑스포 공원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자기부상열차가 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 뜨겁고 간절했던 꿈은 최고 시속 400㎞가 넘는 ‘마그레브’를 타고서야 이루어졌다. 대전 엑스포 공원을 거닐던 자기부상열차는 놀랍게도 얼마 전 당근마켓에 매물로 나왔다. 가격은 1억 5000만 원. 아예 쳐다보지도 못할 가격은 아니라서 기분이 이상했다.

상하이에 왔으니 동방명주를 봐야지. 와이탄도 둘러봤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친구가 임시정부 청사에 가자고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특별한 추억이 서린 곳이라면서. 옛 유럽 열강의 조계지였던 신천지를 지나 임시정부 청사 앞에 섰을 때 친구는 회한에 젖은 모습이었다. 아빠 살아계실 때 상하이로 가족 여행이라도 떠난 적 있어? 친구는 고개를 저은 뒤 말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독재자처럼 군림했거든. 하루는 어머니가 그런 아버지를 향해 혼잣말처럼 이건 왜정 때보다도 더하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어. 그러자 아빠가 벌컥 화를 내면서 이러시는 거야. “왜정은 무슨 놈의 왜정이야?” 엄마와 나는 아빠의 서슬에 눌려 숨을 죽이고만 있었어. 그런데 잠시 후 아빠가 이러시더라고. “임정 때라고 해야지!”

그게 다야?

내가 묻자 친구는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2.

상하이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다음 날 저녁 창사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후난성의 성도인 창사는 마오쩌둥의 고향이자 장가계의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늦은 밤 창사 공항에 내린 우리는 미끄러운 빗길을 ‘마그레브’처럼 질주하는 총알택시를 타고 선배의 남편이 재직하는 ‘호남상학원湖南商学院’으로 향했다. 정문에서 내려 조금 걷자 선배 내외가 살고 있는 교원 숙소가 나타났다. 한밤중이었지만 외관의 허름함을 똑똑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내부 역시 무척 남루했다. 표리부동하지 않구나, 이 건물은.

선배의 집 앞에서 옆집에 사는 노부부와 마주쳤다. 정년퇴직한 교수 내외분이라고 했다. 퇴직한 교수 부부가 왜 이런 허름한 교원 사택에 살고 있느냐고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는 중국 대학은 교수라고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퇴직한 뒤에도 학교가 제공하는 집에 머물러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 학회 간사를 하면서 회원 주소록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한국에서 교수는 직업이 아니라 신분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데.

사회주의 국가는 다르구나 싶었다. 그 노부부의 허름한 보금자리는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고 재배치하는 객관적인 정치적 힘을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흔적으로만 존재하는 그 힘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제아무리 진보적인 교수라 해도 저 중국 교수의 노년을 기꺼이 자신의 미래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지식분자들이 꿈꾸는 급진적인 사회적 상상에 그런 그림은 결코 끼어들 틈이 없다. 모두가 평등하게 잘살 수 없다면 일단 나부터라도 잘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3.

이튿날에는 악록서원을 방문했다. 주자학의 창시자 주희가 오랫동안 강의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악록서원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옅게 낀 구름 사이로 따뜻한 봄 햇살이 내려앉았고 간밤에 내린 비는 흙에서 싱그러운 풋내를 길어 올렸다. 그러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봄날의 따뜻한 햇살도 싱그러운 나무의 잎사귀도 아닌 KFC였다. 길 어귀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KFC를 발견한 나는 중국의 오리지널 치킨 맛이 너무 궁금해서 매장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문짝만 한 프로모션 메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자엔 젬병이었지만 그래도 숫자 五와 一은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가 잠시 뒤엔 혹시?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이었다. 메이데이를 기념하며 출시한 ‘5.1절 특별 메뉴’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인가? 5.1절 메뉴에 포함된 오리지널 치킨을 먹으며 나는 ‘인터내셔널가’를 처음 배웠던 스무 살의 봄날로 되돌아갔다.

내가 몸담았던 동아리는 ‘정치경제학회’였다. 이름만 보면 정치학과 경제학을 함께 공부하는 학구적인 동아리 같지만 ‘정치경제학’은 한국 학술장에서 ‘마르크수주의’의 위장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일이고 내가 입회했을 무렵에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는 거의 사라지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개량주의자’들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고 세미나 한 시간보다 술을 마시고 집회에서 함께 부를 노래를 배우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인터내셔널가’도 그때 배웠다.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 반파시스트 저항군들이 동료의 장례를 치르며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영상만 따로 오려 감상하기도 했다.

영화 〈랜드 앤 프리덤〉 스틸 ©브리티쉬브로드캐스팅코퍼레이션

선배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구호 같은 것을 외치곤 했다. 그것을 ‘아지’라고 했는데 영어 ‘agitation’의 앞 두 글자를 딴 거라고 했다. ‘인터내셔널가’의 ‘아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예심판사 앞에 선 16세 봉제공 엠마리스〉이다. 이 시는 짧고 간결하지만 힘차고 웅장하다. 뜨거운 동시에 날카롭다. 하지만 모든 ‘아지’가 이런 품격 있는 문학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해방을 향한 진군’이라는 노래의 ‘아지’는 다음과 같다. “노동자 계급의 쇠망치로 자본가의 대가리를 박살 박살 개박살!”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문학동네, 2024

4.

김기태의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이전에도 ‘인터내셔널가’가 등장하는 소설은 존재했다.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에서는 ‘국제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박민정의 단편 〈세실, 주희〉에서는 세계시민적 엘리트주의의 기만성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맥락에서 ‘인터내셔널가’가 소환된다. 하지만 이 노래를 지나가는 단역이 아니라 핵심 주연으로 삼은 작품은 김기태의 이 소설이 유일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권진주와 김니콜라이이다. 김니콜라이는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4세이고 권진주는 서울에서 자고 나란 한국인이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급우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곧바로 서로를 알아본다. 그 알아차림은 매력적인 개성의 발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낙인처럼 찍힌 가난의 표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두 사람 모두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로부터 “내야 할 어떤 돈을 내지 않았다는 안내문”을 독촉장처럼 받는 ‘흙수저’ 학생들이었던 것. 담임 선생님은 두 사람을 향해 선심을 베풀 듯 이렇게 말한다. “둘이 친하게 지내.”

당연히 두 사람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김니콜라이가 공업계 특성화고에 진학하고 권진주가 인문계 여고에 진학하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끈은 완전히 끊어져버리고 만다. 그러다 중학교 졸업 5년 만에 둘은 경기도 동남부의 한 도시에서 재회하게 된다. 김니콜라이는 ‘외국인 노동자’로 이런저런 공장을 전전하는 중이고 권진주는 대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무원 시험에 도전 중이었다. 두 사람이 낡은 다세대주택과 빌라들이 즐비한 낙후된 수도권 변방의 도시에서 재회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의 재회는 우연이지만 그 우연의 무대는 계급적 필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솥뚜껑 삼겹살과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 탕수육과 즉석 떡볶이, 코다리갈비찜과 페퍼로니 피자를 함께 먹으며 우정과 사랑, 연민이 묘하게 섞인 감정을 키워나간다. 열거한 음식들은 혼자 먹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혼자 사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되 그렇다고 쉽지도 않지 않은가? 오늘날 사람들은 가난을 이유로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을 포기한다. 하지만 우치다 타츠루는 〈곤란한 결혼〉(민들레 펴냄, 2017)에서 가난하고 여유 없는 사람일수록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그편이 돈이 더 적게 든다는 것이다. 권진주와 김니콜라이가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읽기라도 한 걸까? 두 사람은 생활비를 아낄 목적으로 “마을버스도 올라오지 않는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낡은 빌라를 구해 함께 살기 시작한다. 첫 동거를 시작한 풋풋한 커플은 어색함을 떨쳐내려는 듯 달콤한 사랑을 고백하는 대신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친한 사이야.”

두 사람의 외침은 담임 교사가 교무실에서 던졌던 ‘아무 말’에 대한 유쾌한 패러디이다. 선생님이 두 사람에게 친하게 지내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암시도 권유도 요청도 아니었다. 하지만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선생님의 ‘아무 말’을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예언”으로 바꾸어냈다. 사람이 온다는 건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기에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시인 정현종은 썼다. 김기태는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라는 두 사람의 기적적인 만남을 그려내기 위해 파리 코뮌과 러일전쟁, 한일병합과 고려인 강제이주라는 역사적 사건을 불러온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오는 길은 그야말로 ‘인터내셔널한’ 순간들로 포장되어 있다.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강의〉 에디토리얼, 2022

5.

‘인터내셔널’은 무거운 단어다. 거기에는 스러진 혁명의 꿈과 제국주의에 짓밟힌 국제주의의 비전이,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국경을 넘나드는 고단한 국제 노동 분업의 현실이 녹아 있다. 김기태는 이렇게 묵직한 ‘인터내셔널’이라는 기호를 더없이 부박한 ‘짤’/‘밈’을 통해 가볍게 포착해낸다. 그런데 가벼움이라니? 김기태 소설이 가벼운 세태 소설에 불과하다는 일각의 비난에 내가 동참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그럴 리가. 나는 누구보다 문학의 가벼움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1984년 하버드 대학교로부터 강의 요청을 받고 강의록을 작성하던 도중 사망한다. 그때 남긴 노트를 갈무리한 유작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강의〉의 첫 장에서 그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서로 대조해보고 가벼움의 덕목을 옹호”하겠다고 선언한다. 가벼움의 덕목을 예찬하는 칼비노의 태도는 문학과 삶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타격한다. 우리는 흔히 진지하고 고뇌에 찬 무게감을 지닌 소설만이 더없이 우울한 인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칼비노에 따르면 “무거움, 무기력함, 세상에 대한 불명료함” 같은 건 “피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경우 곧바로 글쓰기에 달라붙는” 악덕에 불과하다.

좋은 소설가는 무거움의 유혹에 함부로 투항하지 않는다. 그는 불명료한 세계 인식에 들러붙은 거추장스러운 요소들을 모두 떼어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준다. 가벼움은 얕고 천박한 태도가 아니라 어떤 것을 묘사하거나 형상화할지를 정확하게 가려내는 결단력의 산물이다. 김기태는 그와 같은 소설적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작가다. 이는 그가 ‘짤’/‘밈’이라는 다루기 다소 위험하고 까다로운 재료를 소설 구성의 기본 재료로 채택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정지돈의 소설을 ‘지식조합형 소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 파편적인 정보와 지식을 조합하는 것은 이제 독자들에게도 어지간히 익숙한 소설의 창작 방법이 되었다. 김기태 역시 조합의 원리를 방법론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합형 소설의 계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김기태는 〈롤링 썬더 러브〉에서는 대중가요를 그리고 〈보편 교양〉에서는 진보적인 인문사회과학 담론을 소설 조합의 재료로 사용한 바 있다.

‘짤’/‘밈’은 유통되는 수명이 짧고 확장성에도 제약이 따른다. 한때 인스타 피드를 뒤덮었던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던 고양이는 어디로 갔는가? 선배한테 마라탕 얻어먹은 것도 모자라 탕후루까지 사달라고 조르던 후배들과 티라미수 케익 어쩌고저쩌고 하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던 사람들은? 하지만 ‘짤’/‘밈’의 짧은 수명과 제한적인 확산 반경은 역설적으로 동시대인 사이에 공통 감각과 문화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강력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어떤 ‘짤’과 ‘밈’을 알아보는 순간, 그들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6.

2003년 메이데이 집회는 내가 참여했던 최초의 대중 집회였다. 우리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며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지지하는 유인물과 국제 공산주의 그룹의 소식지가 길가에 나부꼈다.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인 광경은 태어나 처음 보았다. 거대한 군중의 물결이 벅찬 고양감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함께 집회에 참여한 한 선배가 내게 말했다. “이 세상에 우리 편이 이렇게 많다. 이렇게 우리 편이 많은데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 우리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행진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세상은 바뀌었으나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바뀌지는 않았다.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바뀌지 않았기에, 권진주와 김니콜라이의 미래를 우리는 함부로 낙관할 수 없다. 둘의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으며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치고 힘든 일상이 계속된다. 두 사람이 경기도 변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맥도날드나 버거킹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롯데리아”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내가 사는 한림읍에도 롯데리아만 있을 뿐 맥도날드와 버거킹은 없다. 하지만 김니콜라이의 작은 바람에 KFC가 빠져 있는 건 아쉽다. KFC에서는 맥주도 파는데.) 그러나 작가는 두 사람의 미래에 깃든 고단함과 절망을 외면하지 않는 동시에 과장하지도 않는다.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힘든 하루의 끝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내일을 살아낼 따뜻한 위로를 얻어내는 장면은 묘한 활기를 동반하고 있다.

해외는커녕 경기도 변두리에 붙박여 있는 두 연인의 가냘픈 공동체는 일견 전혀 ‘인터내셔널’ 하지 않아 보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낸 따뜻하고 선량한 우애의 마음은 추상적인 ‘인터내셔널’이 구체적인 관계의 근원이다. 김기태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인터내셔널가’를 목놓아 불렀던 광장과 시큼한 맥주 냄새가 풍기던 지하의 술집들을 자주 떠올렸다. 내 비평의 근원적 터전도 바로 그곳에 있을 터였다.

[소개]

한영인

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정일과 함께 쓴 비평 서간집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 문학비평집 〈갈라지는 욕망들〉 등이 있다.

글. 한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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