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무언가를 비하하는 욕설로 사용되는 일본어 ‘쿠소(くそ)’가 이 상영회에서는 특정 영화를 수식하는 표현이 된다. 한마디로 별로인 영화를 모여서 다같이 보는 상영회다. ‘쿠소영화상영회’를 4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는 ‘가자미’는 매회 회원들과 함께 볼 영화를 정하고 상영하는 시간을 꾸리고 있다. 한 주가 영화를 보며 웃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된다. B급이기도, 망했기도, 못 만들었기도 한 영화들은 어떻게 상영회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회원들의 말대로, ‘이 영화는 쿠소하다’는 말엔 상대적으로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한 편의 쿠소영화에서 기쁨과 끔찍함, 웃음과 의아함을 모두 느끼는 사람들. 쿠소영화상영회를 이끄는 ‘가자미’와 함께 진흙 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아내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대홍수〉스틸 ©환상의빛(주)
영화 상영 전 쿠소스러움을 캐치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우선은 “이 영화가 요즘 쿠소하다고 악명이 높다”(〈커미션(2025),〈대홍수(2025)〉), “이 영화가 곧 OTT 종료 예정인데 포스터에서 ‘기운’이 느껴진다”(〈여대생 기숙사 살인사건(2022),〈잠든 사이: 깊고 어두운 그림자(2021)〉), “이 영화 소재가 이렇게 이상하다더라”(〈헐리웃 전기톱 매춘부(1988)〉,〈요수기담: 닌자 VS 샤크(2022)〉) 등 온갖 기준을 적용하여 앞으로 볼 영화를 최대한 수집해서 리스트를 만든다. 그리고 매주 상영회에 왔던 구성원들과 함께 다음 주에 볼 영화를 고른다. 아시아 영화와 서양 영화를 번갈아 고르는 것이 가장 큰 원칙이고, 후보작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으면 트위터(현 X) 투표 기능을 이용해 상영작을 최종 선정한다. 구성원이 아니라도 투표를 할 수 있다 보니 간혹 전체 멤버 수보다 훨씬 많은 득표를 한다.

영화〈커미션〉포스터 ©(주)팬엔터테인먼트
과거와 최신의 쿠소영화를 꿰뚫는 공통점이나 맥락이 발견되기도 하나.
우리가 보는 영화들을 크게 쿠소영화라고 뭉뚱그려 부르고 있는데, 주로 자본 규모에 타협한 B급 영화, 스토리나 만듦새 자체가 괴악한 작품, 이상하거나 너무 못 만들어서 컬트가 된 작품들이 섞여 있다 보니 전체를 아우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2010년대 중반 이후로 나오는 쿠소영화들은, 특히 대자본 영화사에서 제작이나 배급한 주제 의식이 여러모로 시대에 뒤떨어진 경우가 많다.
쿠소영화는 선뜻 권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추천을 해본다면, 어디에 초점을 둘 수 있을까.
왓챠피디아를 이용해 영화 평점과 간단한 감상을 남기고 있는데, 사실 추천보다는 기록용에 가깝다. 주변에서 이런 걸 진지하게 추천하는 사람이 있으면 좀 이상한 사람이지.(웃음) 상영회에서 재미있게 본 영화라도 ‘객관적’으로 잘 만든 작품이 아니라면 너무 높은 평점을 주지 않는 게 원칙이라 보통 쿠소영화상영회 기준 수작의 평점은 5점 만점에 1.5점, 걸작은 2점 정도를 준다. 다만 그래도 좀 더 많은 이들이 쿠소영화를 접할 필요는 있다. 우선 너무 좋은 작품들만 보다 보면 점점 까다로워져서, 뭘 보여줘도 일단 흠부터 잡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막연히 “그 작품 망했다더라” 하는 소리만 주워듣고 떼 지어 욕을 하면서도 실상이 어떤지는 확인을 잘 안 하는데, 직접 보고 확인한 후에 자기 판단을 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나를 포함한 일반 대중이 좀 더 다채로운 선택을 해야 제작 측에서도 더욱 폭넓은 도전을 하고, 그렇게 쏟아지는 신작 중에서 명작 하나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영화 배급사 및 멀티플렉스 쪽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영화 〈더 룸〉 포스터

영화〈무수단〉스틸 ©(주)골든타이드픽처스
상영회를 통해 비평적 경험을 한다는 회원분의 대답이 있었다.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나’라는 질문을 하면서, 답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 영화도 있나.
흔히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의 대표작으로 〈더 룸(2003)〉이 꼽히는데, 경험도 실력도 없는 감독의 비대한 자아만이 집약되었다는 지점에서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영화다. 제가 이 분야에서 손에 꼽는 영화는 〈무수단(2015)〉인데, 분명 스토리 상 북한에서 생체 개조한 괴수 인간의 코드네임이 영화 제목인데도 한 시간이 넘도록 도무지 괴수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더니 막판에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 하나가 나와서 침침한 실내에서 남한군과 잠깐의 격투를 하고 폭발에 휘말려 금방 퇴장한다. 왜 괴수물이 이렇게 되었는지, 당초에 다른 기획이 있었는데 모종의 사유로 장르가 변경된 건지, 그렇다고 해도 이 구성이 납득 가능한 원안이라는 게 있기는 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영화였다. “왜 괴수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영화가 끝나버리냐”는 의견도 있었다.
OTT 구독이 편해졌고, 콘텐츠 추천도 여러 채널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런 와중 쿠소영화상영회의 선택은 어렵고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에게 칭찬받는 영화 대신 나에게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고르는 경험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희가 보는 영화가 딱히 ‘나에게 재미있고 좋은 영화’는 아닌 편이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웃음) 사실 저희 모임에는 창작 활동을 하는 구성원 비중이 높은데, 그래서 이 모임이 유독 오래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것보다는 잘하겠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이런 것도 투자를 받는데”라며 꿈을 키우기도 하고,(?) 타인의 창작물에 대한 비평 윤리로서 “직접 내용물을 보고 욕하는 것”을 되새긴다. 물론 가장 큰 요인은 내향적인 친구끼리 굳이 집 밖에서 따로 만나지 않아도 각자의 집에서 편안하게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말 밤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낄낄거리는 게 또 한 주를 이겨낼 힘이 된다.
구성원들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되짚고, 장점을 발견하는 것을 쿠소영화상영회의 경험으로 꼽았다. 운영자로서도 이런 시각에 변화가 있었나.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에 내놓는 거의 모든 예술 작품에서 ‘어쨌든 좋았던 점’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개중에는 진짜 도저히 못 찾는 것도 있지만, 그걸 찾는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어렸을 적에 별생각 없이 재미있게 봤던 영화가 다시 보니 너무 별로였다”는 경험도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디 워(2007)〉의 개봉 당시에는 영화를 비판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지금 보면 졸작이 맞는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한반도(2006)〉도 그런 ‘재발견’의 대상이었는데, 그 무렵에 고 안성기 배우를 좋아해서 여러 작품을 봤었다. 물론 단순히 어릴 적 추억으로 그냥저냥 재미있게 봤다고 넘어가도 문제는 없지만, 주관을 가지고 판단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 때로는 ‘나 때’의 ‘추억보정’을 걷어내는 것도 귀중한 경험이 되리라 본다.
감독이나 배우의 필모를 ‘찍먹’ 하는 경우도 많다. 쿠소영화 찍먹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가 있을까. 영화의 한 장면을 설명하는 방식도 좋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들은 국내 판권이 애초에 없거나 있어도 만료된 경우가 많아서 아쉽다. 개별 구매로 볼 수 있는 국내 판권이 있는 작품을 추천한다. “적색수은으로 기동하는 구소련 거대병기 콜로서스를 에코파시스트 일론 머스크가 손에 넣은 뒤 점프해서, 비행기 씹어먹는 메가 샤크를 우주로 던져 자신의 음모를 저지하려는 전투위성을 격추”하는, 〈메가 샤크 터미네이터(2015)〉다. 말도 안 되는 요약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수많은 숏폼이 터무니없이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가끔은 시간을 내서 진득하게 한 편의 ‘혼돈 그 자체’를 감상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글. 황소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