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코쇼텐의 손님들은 2020년 서울, 한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적산 가옥에서, 1950년대에 생산된 잔에 커피를 마신다. 가게 안은 이미 오래전 지나온 시간을 재발견하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화양연화>의 주인공들 앞에 놓인 옥색 잔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면,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아내와 함께 빈티지 숍 겸 카페를 운영하는 케이코쇼텐의 민재기 사장은 다양한 시대의 요소가 혼합된 이 공간의 정체성을 한정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적산 가옥 안을 카페처럼 꾸며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가게가 홍대 근처에 있었어요. 맘에 드는 가게 터를 찾기 위해 2년간 발품을 팔았죠. 적산 가옥을 발견하기 위해서 구글 위성 지도로 원하는 지붕 모양을 검색해서 찾아다녔어요. 일단 빈티지 자체가 예전에 지은 건물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천장이 다 막혀 있었는데, 한쪽 천장을 뚫어보니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그걸 살렸어요.
가게를 대표하는 메뉴인 스마일 표정의 카레라이스 등 메뉴 선정에도 빈티지에 가지는 애착이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1970년대에 생산한 스마일리 페이스 머그컵을 모았어요. 이 컵 특유의 웃는 표정을 요리에 반영하고 싶었는데, 디저트로 만들기엔 임팩트가 약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카레를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가게 오픈 초반엔 메뉴가 더 많았는데, 육아와 병행하다 보니 많이 줄어들었어요.
가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빈티지한 스타일을 즐기는 편인가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홍대에서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요. 음악을 직접 찾아 듣는 ‘디깅’에 매료돼 쉬는 날이면 회현역 LP 가게에 가서 음반을 많이 찾았어요. 옷은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아내, 아이와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요즘 제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다니니까 아이가 그 모습을 좀 따라 하는 것 같아요.
이 공간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사실 케이코쇼텐이 스마일 표정의 카레로 유명해졌다 보니, 그걸 보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여기 카레 집 맞죠?” 하는 분들도 계시고요.(웃음) 식사를 하시려고 꾸준히 오는 분들이 많아요. 정말 감사하죠. 대놓고 광고를 한 적도 없거든요. 명동에 위치해 있다 보니,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엔 한국에 관광차 오셨다가 방문하시는 외국인 손님들도 많이 계셨어요.
케이코쇼텐이라는 가게 안에 과거 미국에서 생산된 물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 문화와 미국 문화가 자연스레 혼합된 걸로 보여요.
일본은 마니아 문화가 상당히 발전해 있잖아요. 저 역시 뭔가 하나에 꽂히면 그 물건을 계속 모으게 되더라고요. 그 결과가 가게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도 직접 고르시는 거죠?
네. 오랜 시간 가게에 있다 보니, 로큰롤 같은 음악은 듣기 좀 피곤하더라고요.(웃음) 좀 신경 써서 음악을 틀고 있어요. 요즘엔 인스트루멘털 트랙이 좋아요. 사실 외국엔 음악이 안 나오는 카페도 많거든요. 케이쿄쇼텐에서도 좀 잔잔한, 너무 튀지 않는 음악을 들려드리고자 해요. 지금 나오는 음악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데벤드라 반하트(Devendra Banhart)’의 음악이에요. 2년 전 쯤 내한공연을 오기도 했어요.
물건들을 모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나요?
모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건 아니고, 여행 갈 때마다 자연스레 모으게 됐어요. 원래는 집에서 보관했는데 혼자 보기 아까워서 처음엔 웹사이트에서 판매했었죠. 그러다 이 잔에 커피를 담아 손님들에게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케이코쇼텐만의 분위기를 만드는 핵심 포인트는 뭘까요?
장소인 것 같아요. 서울 도심 한복판 명동에 있는데 우리 가게에 들어오면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길 바랐어요. 최대한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죠. 근처에 회사원들이 많은데, 이분들한테 일상에서 잠깐잠깐이라도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파이어킹’이라는 그릇이 주는 매력도 큰 것 같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일본에서 생산하는 파이어킹도 있지만, 빈티지 파이어킹을 선호하는 이유는 색감 때문인 것 같아요. 물건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매년 가격이 오르고요. 몇 달 전 관광객들이 대량으로 사 가기도 했어요.(웃음) 특유의 옥빛이 맘에 들고, 제 빈티지 라이프에 반영하고 싶어서 하나둘 모으게 됐어요. 이 접시를 활용할 요리를 개발할까 생각 중이에요.
앞으로 케이코쇼텐에서 시도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데, 여기서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50점 정도 전시하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준비하고 있어요. 또 단지 음식점, 카페를 넘어서 창작 활동하는 친구들과 교류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을지로 같은 곳에 오디오 장인, 시계 장인 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이런 분들을 모셔서 젊은 세대와 교류하는 장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글 황소연
사진 김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