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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8 인터뷰

건물주 위에 콘텐츠

2021.09.12

홍대보다 저렴해서 그 당시 부동산에서 추천하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연남동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 지역의 생명력이 엄청난 거예요.
지역을 지켜내는 힘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연남동과 연희동 일대는 창작자들의 에너지와 다양성이 동시에 존재했어요.
물론 산책하기 좋은 것도 장점이고요.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2013년 무렵 연남동에서 ‘어반플레이’라는 회사를 시작한 홍주석 대표. 그는 연남동 일대의 매력을 이렇게 말한다. 그의 동네 사랑은 '아는동네 아는연남'이라는 잡지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다.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끌고 간 동력이 부러워, 또 연남이라는 동네를 다룬 것이 반가워, 잡지를 발견하자마자 샀던 기억이 난다.

사진출처 = yes24

소박한 디자인의 잡지였지만 그 안에 담긴 콘텐츠는 힘이 있었다. 동네에 관한 애정 어린 시선이 곳곳에 묻어 있었는데, 그 시선은 동네에서 파생한 다양한 이야기를 책 안으로 끌어들이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어반플레이는 이후 을지로, 이태원, 강남, 강원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총 일곱 지역의 잡지를 완성했다. 발로 뛴 로컬 데이터의 축적. 콘텐츠가 모이고, 서로 부딪혀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어반플레이는 지역 기반 콘텐츠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연남방앗간

콘텐츠로 생명을 얻는 공간
어반플레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넘어 연남동과 연희동 곳곳에 자체 브랜딩한 공간들을 운영하며 외연을 넓혔다. 단순히 잡지를 만드는 회사인 줄 알았는 데 공간적 확장을 이렇게 자유롭게 하다니. 부러운 마음 반, 신기한 마음 반으로 그에게 공간 기획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반 플레이의 공간 콘텐츠는 셰어빌리지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요. 연남동, 연희동 일대에 어반플레이가 직접 운영하는 여러 공간을 만들고 이를 통해 창작자의 콘텐츠와 지역의 유휴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거죠. 현명한 건물주들은 이제 알아요. 콘텐츠가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요.”

이런 개념하에 어반플레이가 처음 만든 공간은 1970년대 단독주택을 개조한 ‘연남 방앗간’이었다. 참기름 짜는 시간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옛 방앗간의 풍경처럼, 소통을 전제로 식음료 관련 로컬 브랜드를 소개하는 카페 겸 편집숍이다. 사실, 진짜 방앗간의 기능도 한다. 전국 각지의 기름 장인들이 착유한 참기름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 이외에도 로컬을 대표하는 다양한 식음료가 연남방앗간에서 소개된다.

2018년 10월에는 연남동과 연희동의 경계, 굴레방다리 옆 오래된 유리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 ‘연남장(延南場)’을 만들었다. ‘장소, 곳’을 의미하는 ‘장場’이 이름 전면에 나온 것도 다양한 창작자들이 콘텐츠를 맘껏 실험하고 상호 연결하는 거점이 되길바랐기 때문. 창작 스튜디오, 코워킹 스페이스, 전시 공간, 레스토랑 & 카페, 팝업 스토어 등 ‘로컬과 예술’을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로컬 라운지 겸 살롱 역할을 하고 있다.

연남장무취의 공간에 가치를 입힌 어반플레이의 동선. 혹자는 이것 또한 ‘부동산 개발’의 과정과 유사하지 않냐고 되묻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부동산 가치 상승을 목적으로 지역을 ‘점령’하는 대신, 콘텐츠를 매개로 동네에 유기적으로 스며든다는 점이다. 나만 해도 작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연남장의 2층 구석진 자리에 숨어들어 꾸역꾸역 문장을 만들어나갔다. 개별적으로 부유하던 동네 창작자들은 연남장의 로컬 게더링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때로는 연대했다. 2~30대 손님들 사이로 참기름을 사러 오는 장년층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곳. 어반플레이는 그렇게 동네의 풍경을 만들어갔다.

도시에 필요한 OS를 만들다
우리는 흔히 공간을 하드웨어에, 그 안에 담긴 공간의 쓰임새, 운영 방식 등을 소프트웨어에 대입해 말하곤 한다. 어떤 공간이든 사람이 드나들면 그 안에 크고 작은 이야기가 쌓인다. 그곳은 치열한 생업의 현장일 수도, 포근한 안식과 충전의 영역일 수도 있다. 공간 안에서 대중을 매료시킬 창작물이 잉태되기도 하고, 때로는 쓸쓸한 누군가의 하루가 차갑게 담기기도 한다.

스몰글라스텍스처‘도시에도 OS가 필요하다.’는 어반플레이의 슬로건은 지역 곳곳에 하드웨어의 거점을 만들고 그 안에 담길 창의적인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아는 동네> 잡지, 2015년 시작한 ‘연희 걷다’ 프로젝트 등 꾸준히 동네를 탐험하며 콘텐츠를 만들어온 이력은 정해진 공간 안에서 다양한 실험을 엮어내는 토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연남동과 연희동을 거쳐 제주로, 부산으로 그 영역을 확장 중이다.

캐비넷클럽 쩐시공간(space)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물질 또는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해프닝은 공간의 색깔을 만들고 그 빛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은다. 확장된 공간인 동네도 마찬가지.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머물고,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동네는 고유의 색을 갖게 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동네의 풍경은 어떨까. 나는 어떤 풍경 안에서 일상을 보내고 싶은가.

일단 동네를 좀 걸어야겠다.


글. 김선미
서울 연남동에서 기획 및 디자인 창작집단 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단행본 <친절한 뉴욕> <친절한 북유럽> <취향-디자이너의 물건들> <베이징 도큐멘트>를 썼으며 <한겨레신문>, <월간 샘터> 등에서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1930년대 한국 근대 잡지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


사진. 양경필·어반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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