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면 단 하나의 기념품만 챙긴다. 둘도 아닌 단 하나. 첫 여행지에선 가져갔던 짐을 모두 버리고 캐리어에 기념품을 잔뜩 담아 왔던 어린 날과는 다르다. 모두 7년 전, 인도 여행에서 가져온 단 하나의 기념품 때문이다.
열 일곱 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은 인도 첸나이 공항. 그 곳에서 두 시간을 더 달려 세계 최고의 석공들의 있다는 마말라푸람(Mahabalipuram)에 도착했다. 마말라푸람은 첸나이로 여행 온 이들이 소란스러움과 복잡함, 어지러움과 혼돈을 피해 평안을 찾으러 가는 곳이다. 하루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은 크기의 관광지인 만큼 작고 소박한 마을이다.
세계 최고의 석공들이 모여 있어서일까. 바위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사원은 마치 흙으로 빚은 것마냥 화려하고 섬세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깎은 것이 아니라 빚은 것이 분명했다. 우아한 곡선이며, 거대한 규모에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깎아본 경험이라곤 연필과 가격밖에 없는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돌을 깎는 것보단 차라리 가마를 만들어 흙으로 빚어 구웠다고 하면 더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석공들이 돌을 깨는 소리로 아침이 열린다. 7세기에 모여든 석공들의 피가 세대를 이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해가 오롯이 떠오를 때까지 돌을 깨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돌을 깨는 소리가 멈추는 순간은 해가 완전히 떴을 때부터이다. 이때부터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늘이나 선풍기 앞에서 휴식을 취한다. 모두가 쉬는 시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나 같은 관광객들뿐.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오전에 눈을 뜨고,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시간만 보고 밖을 나갔다간 큰 코다친다. 높은 온도에 겁 없이 쪼리를 신고 나가 쪼리 자국이 선명한 화상은 덤이다. 팔이며 발이며 빨갛게 달아오르고, 앞머리는 땀에 절어 순서 없이 이마에 덕지덕지 붙어 버린다. 온몸에 곧 짠 기운이 돌며 불쾌함이 치솟을 때쯤엔 숨 쉬는 것마저 버거워진다. 그러니까 들숨에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슴을 채우고 날숨에 속에서 달궈진 공기가 입가를 맴돈달까.
더위에 정신을 놓아서일까. 마말라푸람에 도착하고 나서야 가장 중요한 것을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여권이며 옷가지며 한국에서 모두 잘 챙겨 왔다고 생각했는데, 조심성을 잊었다. 애초에 챙겨 올 정도의 조심성도 없었지만 이곳에선 지나쳤다. 뭐든 떨어트리고 부숴버리고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렸다. 마말라푸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등대에 올라가서는 휴대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나갔고, 세계 최고의 석공들이 만들었다는 돌 공예도 짐을 싸다 떨어트려 그냥 돌이 되어버렸다. 당시의 나는 하고많은 바지 중에 왜 멜빵 바지를 입었을까. 가슴 쪽에 달린 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는 것을 잊은 채 멜빵을 벗다 휴대폰이 변기에 빠지는 대참사도 일어났다. 차라리 돌 사원에서 떨어졌을 때 휴대폰이 다시 켜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절망적인 일을 없었을 텐데. 이틀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탓인지 이후 이어진 인도 여행에선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모두 사라졌다. 그러니까 단 하나의 기념품도 사지 않았다.
네? 기계로 깎은 공예품이라고요?
인도 여행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단 하나의 기념품은 모든 돌 공예가 깨져버렸을 때 살아남은 하나의 돌 공예 캔들이었다. 솔직히 한국으로 돌아와선 돌 공예 캔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인도가 가지고 있는 어떤 낭만과 환상은 곧잘 스트레스와 짜증, 절망으로 바뀌어 한국의 삶을 더 그립게 만들었으니까.
그리웠던 한국의 삶을 다시 적응한 나는 짜증났던 인도의 낭만과 환상을 다시 찾게 될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업과 취업 준비에 허덕이며 허겁지겁 돌 공예 캔들을 찾았다. 기억을 짚어 비슷한 돌 공예가 더 있는지도 찾아보고 인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의 블로그를 찾으며 추억을 새겼을 때 인도에서의 충격만큼이나 큰 충격에 휩싸이는 사실을 알았다. 그건 바로… 수작업이라 굳게 믿었던 돌 공예가 기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석공들의 마을에서 기계로 깎아 만든 돌공예라니.
기계 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웃어버렸다. 인도에서 떠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도 인도의 추억은 이어지다니.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기념품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군! 하며 혼자 진리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게 뭐람. 이 돌 공예만 보면 돌을 깎아 아침을 깨우는 석공들이 떠오르고, 빨갛게 부풀어 올랐던 팔이며 발, 이마에 덕지덕지 붙었던 앞머리가 꿈처럼 떠오르는데. 돌 깨는 소리로 아침을 밝히고 석양으로 붉게 물든 고대 사원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 곳인 아름다웠던 마말라푸람을 말이다. 곧 다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었지만 캔들을 피울수록 선명해지는 지난 인도 여행을 통째로 유영한다. 석공이 작업했을 캔들이 아닌 기계가 만들었을 단 하나의 기념품을 보면서.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73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 사진.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