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재훈
살다 보면 신기한 일이 많이 생긴다. 드디어 국내 출시된 비만 치료제인 신약 위고비가 그렇다. 체중 10% 이상 감량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겼다. 이제껏 제일 효과가 뛰어난 약이 체중의 7~8%를 감량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조차도 심각한 부작용이 많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존의 감량을 하는 약 대부분은 사람을 약간의 긴장과 흥분 상태로 몰아붙여 식욕을 억제하는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식탁 앞에 호랑이가 앉아 있는데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갈 리 없다. 이렇게 작용하는 약이다 보니 체중이 줄어들면서 동시에 불면증, 불안 증상이 심해지고 심혈관계에 부담이 갈 수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나비약’처럼 환각, 중독, 오남용 문제도 심각했다. ‘살 빼는 약’이라고 하면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위고비는 다르다. 마의 10% 벽을 넘었다. 68주 동안의 임상시험에서 참가자 체중을 평균 15% 감소시켰다. 부작용 면에서도 기존 약보다 양호하다. 위고비도 뇌에 작용하여 음식 섭취량을 줄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흥분시키는 부작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위고비의 성분명은 세마글루티드이며 원래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다. 신약이니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약은 원래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GLP-1이란 호르몬을 흉내 낸 약물이다. GLP-1 호르몬은 사람의 장에서 분비되며 췌장에서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한다. 동시에 위에서 장으로 음식물이 배출되는 속도를 늦추고 식욕을 줄이며 포만감을 증진시킨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음식물이 장에 들어와야 분비가 촉진된다. 보통 이런 포만감 호르몬이 분비되기까지 15분 정도가 걸리는 이유이다. 식사를 5~10분 만에 빠르게 마치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반감기가 고작 2~3분에 불과하다. 그러니 금세 효과가 사라진다. 위고비에 사용된 약물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여 작용 시간을 길게 만들었다. 그 결과 1주일에 한 번만 주사해도 효과가 유지된다.
적정 체중이라면 먹지 마세요
GLP-1은 원래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이므로 우리 몸 여기저기에 작용한다. 혈압을 줄이기도 하고 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하며 신장을 보호하는 효과도 낸다. 뇌에서 기억력, 인지 기능을 개선하고 염증을 줄이는 데도 관여한다. 위고비의 주성분은 이 호르몬을 본뜬 것이니 비슷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진행 중인 연구가 많다. 지난 10월 말에는 위고비가 비만 환자의 무릎 관절염 통증 완화에도 효과를 낸다는 덴마크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이어트약으로 체중 감량을 얻고 건강을 잃게 되는 일이 잦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비만 치료제의 도움을 받아 체중을 줄이면서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셈이다.
다른 모든 약이 그러하듯 새로운 비만 치료제에도 부작용은 있다. 급격한 체중 감량으로 탈모, 근육 손실을 경험할 수 있다.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거나 우울증, 자살 충동에 대한 우려도 있다. 드물지만 급성 췌장염이 나타날 수 있다. 더 흔한 부작용으로는 구역, 구토가 생길 수 있다. 가볍게 지나가고 점차 적응하게 될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약 사용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심할 수도 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위고비와 같은 비만 치료제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적정 체중인 사람이 그저 더 날씬해 보이려고 다이어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출시 직후 품절 사태가 빚어지고 비대면 및 과잉 처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전부 같은 맥락이다. 꼭 필요한 사람이 써야 맞지 누구나 약으로 날씬해진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는 지적이다.
많아지는 비만 치료제, 높아지는 건강 불평등
그런 기존의 생각이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년 국내 출시가 예상되는 또 다른 신약 젭바운드(성분명: 티제파티드)는 72주간 무려 22.5% 감량 효과를 낸다. 기존의 약과 달리 건강에 유익한 다양한 효과를 내는 이들 약의 사용 범위를 늘리기 위해 제약 회사에서는 연구에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부유층이 더 건강하며 날씬하게 장수하는 건강 불평등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이들 약의 안전성이 더 확실해지고 사용 범위가 넓어진다면 그때는 정부의 의료보험 재정 부담이 커져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래저래 문제가 심각하다. 약으로 살도 빼고 더 건강해질 수 있는 일이 현실이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어떻게 되든 지금의 나는 내 몸을 스스로 움직이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정재훈
먹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약사이자 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