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줄 맞춰 꽂힌 책들이 흥미로운, 산책하듯 다가가고 싶은 그곳, 동네의 작은 서점들. ‘다시서점’과 ‘책방 시나브로’에서 문학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전해왔다. 동네 서점에 방문해 정성 들여 고른 책을 구매해 읽고 의미를 곱씹는 일, 모두 시간을 들일수록 희미해지지 않고 아름다워지는 일이다. 기꺼이 방문할 수밖에 없는 동네의 작은 서점이 당신에게 문학을 소개한다.
글. 황소연
책을 통해 커뮤니티를 연결한다
다시서점
서울 서쪽 끝 강서구 공항동에 자리한 다시서점. 2014년 5월 18일에 문을 열어 벌써 11년 차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경현 씨는 다시서점을 책을 판매하는 곳 이상의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서구는 예술인 복지 재단에 등록된 예술인은 많지만, 지자체 문화재단이 없고 활동할 장이 적다. 다시서점은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가 부족한 강서구에서 마켓, 영화제, 문화예술 교육, 지역 아카이빙 등을 진행해 예술인과 시민이 함께할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책의 셀렉도 매력적이다. 독립출판물과 시집, 다시서점을 방문하는 독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을 큐레이션 한 서가를 꾸리는 동시에 다시서점 친구들이 보내준 헌책도 판매한다. 작은 책방이자 지역 커뮤니티로서 지역 예술인과 시민, 기관과 시민단체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강서구의 복합문화 공간과도 같은 귀한 서점.
+ 다시서점 지기가 사랑하는 문학 작가
아서 찰스 클라크와 김훈. 두 작가 모두 아름다운 문장으로 상상력을 펼쳐낸다. 글을 읽다 눈을 감으면 문장 속 풍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비슷한 이유로 타네다 산토카의 하이쿠를 좋아한다.
지난 6월엔 다시서점 10주년을 기념하는 김경현 씨의 책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 나왔다. 그의 눈에 비친 독서 문화의 변화가 궁금했다. “읽는 독자에 그치는 것이 아닌 쓰는 독자로 흐름이 바뀌어가는 듯하다. PC로 즐기던 인터넷 환경이 스마트폰으로 옮겨왔고, 빠른 속도와 다양한 플랫폼으로 1인 미디어가 확장되었다. 읽기가 쉬워진 만큼 쓰기도 쉬워졌다.” 소비자와 창작자의 벽을 허물기 시작하면서 독자들이 주인공과 참여자 모두를 겸한다는 게 그의 시각. “기술의 발전과 보급으로 서점과 출판사, 작가와 독자가 새롭게 결합하는 지점도 생겼다. 곧 시간과 거리, 언어의 제한을 쉽게 넘어서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 다시서점 지기가 《빅이슈》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문학
최근에는 김민지의 시집 〈잠든 사람과의 통화〉(김민지 지음, 창비, 2024)와 〈가난의 도시 – 우리 시대 노점상을 말하다〉(최인기 지음, 나름북스, 2022), 〈행복의 기원〉(서은국 지음, 21세기북스, 2024),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신성아 지음, 마티, 2023), 〈계급 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샹탈 자케 지음, 그린비, 2024), 〈한국 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지음, 글항아리, 2023) 등을 병렬 독서로 읽고 있다. 《빅이슈》 독자분들께는 김인선 작가의 유고 산문집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메디치미디어, 2019)를 추천한다. 2019년 출판된 이후로 주변에 꾸준히 추천하는, 아름다운 문장이 담긴 책이다. 현재 절판되었는데, 이렇게 계속 추천하고 독자분들이 찾다 보면 언젠가 재출간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찾아 나선 ‘도둑맞은 집중력’은 어떻게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을까. ‘숏폼의 시대에 문학과 책의 의미’에 대한 우문현답을 들었다. “숏폼과 문학이 갖는 역할은 다른 것 같다. 빠르게 더 많이 일을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에게 숏폼은 어쩌면 효율적인 콘텐츠니까. 여기서 말하는 효율은 시간을 아껴준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 책, 문학은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한다. 독서는 효율과 비효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읽기 전과 읽은 후를 따지게 된다. 독자는 책을 통해 저자의 세계관을 만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넓힌다. 많은 이가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걱정하지만, 문학은 언제나 독자의 손길이 닿는 곳에 있을 것이다.”
다시서점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대로8길 77-24
12:00~18:00(일, 월, 화요일 휴무)
나도 모르게 쌓이는 페이지
책방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순우리말 책방 이름의 뜻이 책이 쌓이는 모양과 닮았다. 자연과 어른동화를 중심으로 책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책방 시나브로는 북한산과 불광천을 품은 은평구에 있다. 자연스럽고 느린 것을 지향하는 이곳의 책들은 자연에서 오는 여유와 위로, 그리고 실존에 대한 메시지들을 담는다. 책방지기 김성은 씨는 손님들이 시나브로의 마음으로 방문하길 고대한다. 손님들 자신이 천천히 나만의 것을 찾아가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동네 서점 문은 열린다.
+ 김성은 책방 시나브로 지기가 사랑하는 문학 작가
요즘 최진영 작가의 작품을 애독한다. 북토크에도 다녀왔다. 작가님의 소설은 단편과 장편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는데, 보다 현실적 소재가 담긴 단편은 내밀한 우리의 모습들을 비추어 숨겨져 있는 것들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 있다. 보편적인 가치를 상상력과 아름다운 서사로 담아낸 장편을 읽으면, 마치 책마다 다른 장르를 보는 듯하다.
책방 시나브로에서는 최근 ‘11월 시나브로 독서모임’을 열고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2011)과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를 재독했다. 〈희랍어 시간〉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고.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가 멀게만 느껴지는 서로에게 가닿는 아름답고 애틋한, 시를 닮은 소설이다.” 작가의 팬과 처음 작가의 세계에 들어온 이들이 문장을 낭독하면서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나눴다. “문학과 한국어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모임에선 ‘작별’하지 않을 다짐에 대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이야기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 《빅이슈》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문학
최진영 작가의 첫 산문집 〈어떤 비밀〉(난다, 2024)을 읽고 있는데, 작가의 소설 속 세상을 실존하는 이야기와 문장들로 만나고 있다. 1년 절기라는 테마로 나누어져 있어 한 해를 돌아보는 연말에 읽기 좋을 듯하다. 또 올해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문학동네, 2024)을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의 삶은 사라지는 것들의 연속이고 우리도 언젠가 소멸한다. 이 당연한 이치가 때론 절망과 회한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에 위로를 받는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책세상, 2024)은 고전산문집이다. 생명력이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로, 찬란한 세상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생의 의지를 갖게 한다.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책을 고르는 취향과 관점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김성은 씨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매일 책을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과 실패로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은 세상을 유연하게 바라보게 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고 무의미하다고 느끼며 일희일비하지 않을 힘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었고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지금을 충실히 살아가는 우리는 작지만 소중하다.” 책방 시나브로는 공간과 인생을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며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중이다.
책방 시나브로
서울시 은평구 응암로25길 11-1, 1층
12-8시, 수 정기휴무(주말 및 공휴일 12-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