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었던 작가의 이름을 보고 고민 없이 책을 집어 든 경험이 있다면, 그간 쌓아온 작가와의 우정 때문일 것이다. 도서관과 서점에서, 친구의 서재에서, 타인의 손에서 문득 스쳐 간 작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에디터가 새롭게 열어젖힌 작가들의 세계를 소개한다.
글. 황소연
불우한 과거를 따뜻하게 데워준 예술
장 주네
작가들이 겸업을 많이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먼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고, 어쨌든 명석한 시대의 지성들은 책도 여러 분야에 걸쳐서 쓰고 재능도 방대했으니까. 그런데 도둑 출신은 좀 많이 신박하지 않나. 장 주네는 1910년에 태어나 열 살 때 절도죄를 저지른다. 이후 1949년에는 다시 절도죄로 종신형에 처할 뻔하는데, 당대 프랑스의 작가와 화가들의 탄원으로 특별사면된다.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런 그의 자전적 소설 〈도둑일기〉(민음사, 2008)를 책꽂이에 추가할 만하다. 책은 유럽 일대 뒷골목에 대한 비정한 묘사를 담는다. 장 주네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유기되고, 특출난 언어적 감수성을 지녔지만 기숙학교를 탈출해 소위 ‘밑바닥’ 생활을 한다. 그런 경험을 담은 〈도둑일기〉는 “배반과 절도의 동성애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덕목으로 여기는 독자적인 가치관을 개척(민음사 작품 소개)”한다고 평가받는다.
장 주네에 대한 나름의 덕질스러운 검색을 하다 〈작가, 작품이 되다〉 연극의 첫 시리즈인 공연 ‘장 주네’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다섯 명의 캐스트는 모두 여성인데, 프랑스의 남성 작가 장 주네와 여성들의 조합이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연극은 장 주네가 명성을 얻은 전성기가 아닌 이후에 집중한다.
더불어 그의 ‘직업’은 ‘도둑’만이 아니었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열화당, 2007)로 예술론을 섬세하게 펼친 극작가이자 시인이었고, 베트남전쟁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면서 68혁명에도 참여한 사회운동가이자 영화 각본가, 감독이었다. 그의 작품이 죽음 및 소수자성과 뗄 수 없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상처의 윤리학: 장 주네의 예술비평〉(윤정임, 한국불어불문학회 발행, 2019년)은 장 주네의 작품이 모든 예술의 기원을 개인의 상처와 절대적 고독에서 찾아낸다고 해석한다. 그의 또 다른 소설 〈꽃피는 노트르담〉(문학동네, 2024)은 퀴어문학의 고전으로도 불린다.
사실적 묘사로 3부작 강펀치
쿤룬
대만에서도 웹소설이 큰 인기라고 한다. 추리소설 작가인 쿤룬은 심리학을 전공했고, 입대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대 후에는 영화관에서 영사기사로, 집 청소 도우미로 일한 적도 있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의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와 서스펜스로 독자를 휘어잡았다. 대만 웹소설 플랫폼인 ‘미러픽션’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은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한스미디어, 2021) 이후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한스미디어, 2023), 〈업자에게 잊혀진 시체 보관 기록〉(한스미디어, 2023)이 한국에서 출판됐다. 세 작품 모두 영화 제작이 확정된 상황에 한국 웹툰화가 진행 중이라고. 쿤룬은 매체 등에 절대로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인터뷰도 가면을 쓰고 진행한다. 추리소설을 두루 좋아하지만, 다작하면서 작품마다 직접 코멘트를 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대비되는 이미지라 신기했다. 호기심에 찾은 쿤룬 인스타그램의 프로필 사진 역시 가면을 쓴 일러스트로 설정되어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대만에서는 ‘경문학’으로 칭하는데, 이러한 작품으로 영상 계획을 발표하는 행사장에 참석하거나 독자들의 댓글 반응에 대한 감상을 표하는 등, 얼굴을 가린 상황에서도 소통을 원활히 하는 작가인 듯 보인다.
글을 쓸 책상이 놓인 당신의 집
루시아 벌린
20대 중반 첫 단편소설을 발표한 루시아 벌린의 무대는 한두 곳에 그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엔 여러 차례의 이사를 경험했고, 이후 남미와 미 서부 탄광촌을 오가며 싱글맘으로서 네 아이를 부양한다. 양육과 노동을 반복하면서 겪은 경험이 그의 에세이와 단편소설집 〈청소부 매뉴얼〉(웅진지식하우스, 2019), 〈웰컴 홈〉(웅진지식하우스, 2020), 〈내 인생은 열린 책〉(웅진지식하우스, 2020) 등의 영감이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장소와 환경은 인생을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게 만드는 여유, 그 가운데서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냉철함을 더한다.
루시아는 생전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글을 쓰는 일이 신변, 몸과 몸의 주위를 보는 일에 주목하는 일이라면 그는 수많은 몸을 보고 그 주위를 관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웃,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 가족과 연결되는 루시아의 관계성은 루시아의 책 속에 잔잔히 녹아들기도 하지만 스릴러 못지않은 서늘함도 선사한다. 루시아는 유치장과 중독 치료 시설을 경험하며 알코올의존증을 이겨내고자 했고, 지병인 척추옆굽음증과도 싸웠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옮겨 다닌, 항상 집을 찾고 있던” 그 작가가, 너그러운 표정을 한 이웃의 모습으로 오늘날 여성들의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