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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5(커버 B) 인터뷰

우정의 대결 | [증명과 변명] 안희제 작가 인터뷰

2025.05.27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서 피어나는 우정은 사랑만큼이나 신비하다. 스스로 삶을 끝내겠다는 10년지기 친구 ‘우진’의 말을 듣자 안희제 작가의 마음은 급해졌다. <증명과 변명>(다다서재 펴냄, 2024)에서 안 작가는 우진뿐 아니라 머뭇거림과 주춤거리는 태도와도 우정을 쌓으며 대화하고, 그 대화를 통해 자신을 고민한다.

“망설이는 건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고 타인 또한 나처럼 고민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까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확신하는 세상에서 주저하며 던지는 질문. 망설여보자는 손짓을 따라가면 내 옆의 친구이기도, 자식이기도, 형제자매이기도 한 우진의 모습이 보인다. 독자는 어느새 책 속의 그들과 같이 고민하게 된다.

질병에 대한 경험과 고민에 기반해 쓴 <난치의 상상력>(동녘 펴냄, 2020), 케이팝을 덕질하는 아이돌 팬들을 인터뷰 한 <망설이는 사랑>(오월의봄 펴냄, 2023)으로 주춤거리며 나아가는 아름다움을 보여준 안희제 작가와 열띠게 읽으면서 망설이는 방법, 적절한 온기의 우정으로 깊게 상대를 읽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증명과 변명>을 통해 만난 독자들과 저자, 우진 사이엔 분명 우정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글. 황소연 | 사진. 주희

책이 나온 후 북토크 등 여러 채널에서 독자를 만나왔다. <증명과 변명>을 통해 독자들과 대화한 과정에서 새로 생긴 질문이 있다면?

질문이 정말 많이 생겼다. 북토크에서 만난 분들도 그렇고 온라인상 서평을 통해서도 어떤 책보다도 가장 많이 배웠고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 책이다. 우진에게서 내가 외면하고 있던 나의 모습이 자꾸 보였다. 북토크에 매번 남성이 절반 이상 참여하고. 내가 벗어날 수 없고, 나에게 여전히 중요한 주제가 ‘남자’임을 많이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다.

북토크에서 직접 독자들과 이야기하는 경험은 어땠나.

동년배 남성, 여성과의 교류가 다르고 나이대가 높은 분들과의 교류가 또 다르더라. 내 안에도 우진이가 있었다는 남성, 남자 얘기로 안 느껴지고 거울상처럼 느껴졌다는 여성, 가장 기억나는 건 어머니, 아버지 들로만 구성된 북토크였다. 내내 우는 얼굴이셨던 어머니께선 끝날 때 아들 이름으로 사인을 받아 가셨다. 한 중년 남성께선 이해가 안 된다고 말씀도 하시고. 저는 또 “너무 꼰대처럼 말씀하신다”고 했다가 바로 사과하고.(웃음) 그러면서도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하는 표정들 있지 않나. 그걸 아이와 함께 사는 어른들이 보여주니 그만큼 짜릿한 게 없더라.

‘망설이며’, ‘앞서’와 ‘부쳐’ 등의 책 구조를 보면서 <망설이는 사랑>이 떠올랐다. 뭔가를 말할 때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는 것엔 어떤 이점이 있나?

얼마 전 <콘클라베>를 봤다. 영화 속의 회의와 의심을 보면서 최근의 고민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망설이기를 망설이지 말자.’는 문장으로 <망설이는 사랑>을 마무리했었고 그 문장을 <증명과 변명>구조로 만든 것인데, 그 형식이 있어야 스스로 망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다 매끄러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고 나는 그게 강한 편이다. 스스로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구조였다. 주춤거리고 머뭇거린다는 건 내가 온전히 무언가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존재의 목소리가 적어도 내 안에 들어와서 대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걸 받아들이고 그걸 이해하고 맞서는 과정이 망설이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우진의 어린 시절 등 신상에 관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대목들이 있다. 책으로 연구를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 정보를 자세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에 대해 걱정이나 부담은 없었나.

내 정체성은 그런 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북토크에서도, 서평에서도 그 부분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았다. 어린 시절 이야기, 또 우진에게 교회가 중요해 보이는데 그 얘기가 너무 없다는 거였다. 예상했고 동의한다. 받을 수밖에 없는 비판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다. 그래야 우진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었고, 마음 편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어줄 수 있었다. 사실은 책이라는 공적인 매체와 우진의 정신 건강, 그리고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은 나까지 셋 모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타협이자 전략이었다. 더불어 우진의 감정과 결정, 둘의 관계가 단지 우진의 유년기나 교회 생활로 환원되지 않기를 바랐고, 오히려 우리가 나누는 태도와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책에서 윤리적 태도로서 ‘넘겨짚기’를 말하는데, 모두가 넘겨짚기 하며 산다면 그 과정을 좀 노골적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책을 읽으며 승자와 패자가 굳건한 세계관을 생각했다. 이 세계관의 붕괴에 대해 생각한 적 있나?

붕괴를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웃음) 이번 책 쓰면서는 더욱 그렇다. 수능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2장을 위한 인터뷰는 지금까지 한 것 중 가장 고통스러웠다. 우진 스스로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된 중심에 내가 있었다는 것. 우진 표현대로라면 ‘불치병씩이나 걸려 가지고’ 입시에 성공을 했던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너는 해냈잖아” 얘기를 하는데, 원래 인터뷰할 때 지금처럼 눈을 마주치고 하는데 그때는 우진 눈을 못 보겠더라. 미안한 건지 억울한 건지 설명도 못 하겠고. 그 안에서는 이 친구가 패자고 내가 그냥 승자가 돼 있으니까. 금붕어는 자기가 물에 사는 줄 모른다고 하지 않나. 승패와 피아 구분이 얼마나 잔인한지 평생 중 가장 생생하게 느꼈다. 요즘은 편이 아니라 곁에 대해 고민을 한다. 엄기호 선생님의 <단속사회>(창비 펴냄, 2014)에서 ‘곁이 다 파괴되고 편밖에 남지 않은 세계’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보인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책을 쓰면서 살펴본 지표나 통계가 있나.

통계로 백업을 할 수 있지만 일부러 안 했다. 경제학과 출신이라 통계 사용에도 익숙하다. 통계는 기본적으로 인구를 다루는데, 인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대화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자신이 겪은 실패를 떠올릴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금기시되지만 인생에선 필연적이다. 실패, 좌절은 내면에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나?

어려운 질문이다. 실패는 모두가 무수히 겪는다. 나는 수능 등에 있어선 실패와 좌절을 명확히 덜 겪은 사람인데 그 과정 안에서 크론병을 갖게 되었다든가, 소위 일반적이지 않은 좌절들이 있다. 나에게 실패나 좌절이라는 거는 어쩔 수 없이 겪는 것이었던 것 같다. 크론병 때문에 진로를 바꿨고.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그래프와 데이터를 보는데 허무하더라. 데이터를 돌리는데 그게 나의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소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된 것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크론병이 아니었다면 2016년부터 장애인권 활동도 안 했을 거고. 문화인류학 대학원을 선택한 것도 그것이 우리의 삶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한편으로는 ‘비교와 증명’ 같다고 생각했다.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는 우진의 말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단호하게 들렸다. 우진의 친구로서 이런 조언은 어떻게 느끼고 이해했나.

책에 넣고 싶은 짧은 글을 써달라고 해서 받았는데 보자마자 “어휴, 내가 말을 해도 아무 쓸모가 없어.”(웃음) 그랬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엘리트 포획〉(두번째테제 펴냄, 2024)이 있었다. 거기에 엘리트의 특징 중에 하나로 ‘자기가 속한 방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비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냥 내가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서 그런 것 아닐까 싶었다. 비교하지 말라는 말이야말로 자기 방 안에만 안주할 수 있는 엘리트 샌님의 입바른 소리처럼 들렸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스스로를 비교의 대상으로 놓거나 타인에게 비교하면 끝이 없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정지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은 우리가 무한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잠재성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한선을 인식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없는 것처럼 굴러가고 모두 그렇게 말한다. ‘우상향’한다면서.

혹시 주변에서 조언을 구하기도 하나. 삶의 방향성 등에 대해.

친구가 별로 없는데,(웃음)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실패나 좌절이 먼저 드러나야 하는데 그건 되게 어려운 일이라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의 제일 기적 같은 일은 우진이 그걸 했다는 거다.

그것도 우진 님이 이 프로젝트가 재미있다고 생각하셨다는 게.

이상한 애다.(웃음)

책 발행 이후 SNS를 통해 우진이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소식을 들은 당시를 회상한다면.

당연히 기뻤다. 그런데 온전히 기쁘기만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고마우면서도 형언하기 힘든 복잡한, 폭탄선언을 처음에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게 책이 인쇄되기 직전이었다. 화가 나긴 했는데 왜인진 모르겠다. 책을 만드는 동안 압박감이 컸다고 느꼈다.

우진 님은 ‘남과 비교를 많이 하고 질투와 좌절로 끝내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그 대목에서 우진 님이 다른 사람의 삶을 애정으로 바라본다고 느꼈다. 친구의 삶에 대한 의욕을 느낀 순간은.

자기 변호할 때. 한편으로는 여전히 자신이 말하지 않는 무언가, 감추고 싶은 게 있다는 게 보일 때 그런 걸 느꼈다.

‘이대남’과 ‘청년남성’이라는 표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함을 밝혔다. 〈증명과 변명〉을 보고 앞선 키워드를 먼저 떠올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읽기의 방향성은?

길게 말씀드리는 건 독자분들의 읽기에 대한 침해 같아서, ‘이대남’과 ‘청년남성’, ‘2030 남성’ 무엇이든 당연히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결과임을 꼭 꾸준히 상기하면서 읽으셨으면 한다. 이건 그 과정에 대한 책이다.

〈망설이는 사랑〉에 이어 대화를 통해 책 두 권을 써내며 가장 크게 변화한 건?

‘네가 얘기하는 건 그냥 특수한 사례일 뿐’이라는 말의 타격을 안다. 보편이나 일반을 말할 때 이미 자기가 기대하는 바가 머릿속에 있는 거고, 그 사람은 애초에 생각을 바꿀 의지도 없을 뿐 아니라 이 문제 자체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럴 때 “그럴 거면 책을 왜 읽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더불어 타인의 이야기와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운다는 건 무엇일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책을 덮고 나서 독자가 우진을 설명할 수 없으면 좋겠다고 썼다. 독자들은 책에 대한 결론을 내는 동시에 우진 님에 대해서도 특정한 인상이나 판단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런 지점은 어떻게 보나.

〈증명과 변명〉은 우진에 대한 책이 아니라 우진과 나에 대한 책이라고 항상 이야기한다. 내가 독자였어도 특정한 인상을 가질 듯한데, 그 생각에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고 싶었다. 나부터도 인터뷰를 하고 쓰면서 이 친구를 판단하고, 최근에도 얘기하다가 ‘그렇게 좀 살지 마라’ 같은 말도 하는데 어떻게 생판 모르는 독자들이 우진에 대해서 그렇게 판단을 안 할 수 있겠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판단은 죄가 아니고, 나는 요구라도 해본 거다. 함께 노력하고 싶다.

한국에서 친구, 사람 간 우정을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행동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제가 그걸 잘하면 이렇게 친구가 없진 않을 것 같다. 오드리 로드라는 흑인 페미니스트 작가가 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후마니타스 펴냄, 2018)라는 책을 썼는데, 여러 운동에서 아웃사이더였음을 말하는 책이다. 작가는 책에서 백인 여성 연인과의 관계를 “우리의 관계는 편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대결을 통해서 다져진 것”이라고 말한다. 우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북토크에서 우정이 대결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더라.

이 책에서 가져온 얘기다. 제가 기대는 몇 명의 작가가 있다. 대결이라는 게 치고받고 싸우는 것뿐만이 아니고, 이때 얘기하는 대결은 사실 서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 직시에서 비롯되는 거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최근 극우, 파시즘이 대두되는 것도 ‘내가 누구와 살아갈 수 있을지 선택할 수 있다.’는 말 같지도 않은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영영 섞이면서 살아간다. 그걸 견디면서도 동시에 상대가 그걸 견딜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경우에 사회적 소수자들이 그걸 일방적으로 견뎌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휘말리고 부딪히는 게 대결이고, 그걸 통해 함께 우정을 쌓고 살 수 있는 존재로 변해나가야 한다.

독자와 우진 님이 서로 우정을 키울 수 있을까? 우진 님은 독자가 우진 님에 대해 품은 우정을 어떻게 생각할까?

걔는 본인이 주식으로 충분히 성공했다고 인정만 받으면 누구랑도 친할 수 있는 애라서,(웃음) 최근에 출연한 시리얼 콘텐츠를 나는 아직 못 봤는데 그 친구는 “나는 익명이라 상관없다”면서 보더라. 그걸 보다가 유일하게 본인이 긁혔다고 한 지점이 주식 그래프가 내려가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건 아니라고. 독자분들이 북토크에서 나눠주시는 마음을 제가 다녀와서 알려주기도 하고, 그럼 감사해하고 신기해한다.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당연히 우정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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