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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6

성현석 COLUMN 적어도 ‘ 꽃’은 아닐 것 같다

2019.12.05 | 과잉대표된 ‘86세대’, 호명에서 삭제된 학번이 없는 사람들

A씨는 영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한다. 그는 영국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국문학 을 전공한 누군가가 그를 보며 부러워했다. 한국에서 인문학 전공을 살려서 먹고살기란 정말 힘들다. 그런데 A씨는 전공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영어가 모국어라는 점은 그 자체로 상당한 기득권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았 고, 빚이 많지 않으며, 외국 생활을 꺼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밥을 굶을 일은 없다. 삶의 최저선이 보장돼 있다는 안정감은, 엄청난 혜택이다.


영국 사람 가운데 어느 정도가 이런 혜택을 느끼고 있을까. 영국 사람이면, 다 누리는 혜택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최근 출간된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에 따르면, 영국인 60퍼센트는 여전히 자신이 열네 살에 살던 지역에서 20마일(약 32킬로미터)이 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 영국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선도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놀라운 숫자다. 인구 이동이 이토록 활발하고, 영국인 영어 강사를 세계 곳곳에서 만나지만, 영국인 다수에겐 그저 남의 일 이다. 영국 사람 가운데서 소수만이 영국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혜택을 누린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사실 당연하다. 평생 농사를 지었던 어르신들,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하며 평생 살아간 보통 사람들,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 내세울 만한 학벌이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 역시 어지간하면 자기가 살던 곳에서 계속 지내려 한다.


이런 현상은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여차하면 외국으로 나가서 살 수 있는 이들은 어느 나라나 소수다. 단지 직업이나 외국어 문제만이 아니다. 낯선 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다는 점 자체가 상당한 기득권이다. 대체로 교육 및 경제 수준이 높은 이들이 낯선 문화를 덜 두려워한다. 심리적인 이유도 있다. 학교 교육을 받으며 괜찮은 성취도를 기록했다는 자신감은 도전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게 한다. 반면, 학교에서 자존감을 다질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면, 아무래도 도전을 꺼리게 된다.


낯선 문화에 개방적인 고학력 중산층,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저자인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굿하트는 이들을 가리켜 ‘애니웨어(anywhere)’라고 부른다.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반면, 낯선 문화를 꺼리고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 이들을 ‘섬웨어(somewhere)’라고 한다. 어떤 특정한 곳에서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 인구 가운데 25퍼센트가 ‘애니웨어’다. 대체로 대학을 나온 부류다. ‘섬웨어’는 약 50퍼센트다. 교육 및 문화 수준이 높지 않은 부류다. 나머지 25퍼센트는 애매한 중간 계층이다.


‘애니웨어’와 ‘섬웨어’는 각각 완전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 ‘애니웨어’ 입장에서, 늘어나는 이주민은 영국 사회의 다양성이 높아진다는 신호다. 이주민을 배척하는 태도는, 몹시 퇴행적이다. ‘섬웨어’가 보기에, ‘애니웨어’의 이런 태도는 몹시 이기적이다. ‘애니웨어’는 자신들 역시 낯선 나라의 이 방인이 될 수 있으므로, 영국 사회에서 이주민를 환영한다는 것이다. 이주민이 될 마음이 없는 ‘섬웨어’ 입장에서, 이주민이란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할 대상이다.


‘애니웨어’들은 주로 런던에 산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혜택을 주로 누린 곳이다. 그 부작용을 누린 곳, 런던이 아닌 지역에 ‘섬웨어’들이 주로 산다. 런던 금융가로 부가 쏠리는 동안, 지방의 공장들은 문을 닫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는 꾸준히 줄었다. 이미 전보다 가난해진 ‘섬웨어’들은 미래를 더 불안하게 여기게 됐다. 온갖 혁신과 도전을 찬양하는 ‘애니웨어’들의 태도가 ‘섬웨어’들은 그저 고깝다. 미래에 대한 불안마저 양극화돼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외면하고만 싶은 불안한 미래가, 대학을 나온 누군가에겐 멋진 도전 대상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학을 나온 ‘애니웨어’ 가운데 꽤 많은 수가 진보-좌파였다. 이들 노동계급과 연대하며 긍지를 찾았다. 진보 성향 ‘애니웨어’와 노동하는 ‘섬웨어’가 손잡고, 노동당 정부를 만들었고, NHS(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의 공공 의료 서비스)로 대표되는 복지 제도를 뒷받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보 성향 ‘애니웨어’가 쏟아내는 말에서 ‘공장 노동’이 빠졌다. 대신, 문화와 취향을 가리킨 언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과거 ‘좌파’로 묶여 있던 세력은 ‘대졸 중산층 좌파 애니웨어’와 ‘노동 계층 좌파 섬웨어’로 갈라졌다.


결정타는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였다. 나이가 많고, 변화에 보수적이며, 문화 및 교양 수준이 낮은 편인 ‘섬웨어’들은 온라인에서 걸핏 하면 조롱당했다. 상처받은 자존감은 분노가 됐고, 곧 폭발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극우 포퓰리즘, 끝이 보이지 않는 정치적 혼란은 그 때문이다. 진보 정치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부류는 주로 ‘대졸 중산층’이다. ‘노동 계층 좌파’가 목소리를 낼 창구가 사라지면서, 전통적인 진보 정치 세력이 타격을 입었다는 게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이 내린 진단이다. 대신 극우 포퓰리즘이 빈자리를 파고들었다. 극우 포퓰리스트 입장에선 아주 쉬운 게임이 다. 반(反)지성주의, 반(反)엘리트주의를 선동하면, 된다. 기름때 묻히며 일하는 이들이 그저 주눅만 들었던, 고상한 교양 언어가 실은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아니, 지독한 위선과 가식의 언어였다. 그리고 벽돌 한 장 새로 찍어내는 일 없이도 풍요롭게 살며, ‘섬웨어’들의 투박한 문화 취향을 비웃던 엘리트들 역시 실체는 초라하기만 했다. 그들이 뽐내며 하는 일이란,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면 된다.


여기까지는 딱 영국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이라고 해서 얼마나 다를까. ‘86세대’ 운동권들은 한때 걸핏 하면 ‘민중’을 이야기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을 때조차, ‘민중’을 붙인 표현을 만들어 썼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사회운동을 한다. 나머지 가운데 다수는, 대학을 나와 정규직이 됐고, 50대 나이의 아파트 소유주가 됐다. 또 일부는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도통 ‘민중’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민중’을 넣어도 될 법한 자리에서조차, 표현을 에두른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세계는 종종 과잉대표 된다. ‘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난 80년대 학번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런데 통계를 보면, 1960년대에 태어난 이들 가운데 ‘학번’을 지닌 이들은 소수다. 많아야 30퍼센트 수준이다. 나머지 70퍼센트는 학번이 없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196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죄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듯싶다. 학번이 없는 70퍼센트가 ‘없는 존재’ 취급당한 탓이다. 조금만 돌아보면, 이런 이들이 아주 많다. 통계 속 숫자로만 존재하는, 딱히 부를 명칭이 없는 이들. 대체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는 ‘민중’이라는 표현을 꺼내기는 민망하다. ‘서민’도 좀 애매한 느낌이다.


예컨대 ‘섬웨어’처럼, 누군가 그들을 부르는 명칭을 만들어낸다면, 한국에서도 거대한 폭풍이 불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라고 노래했다. 숫자로만 존재하는 이들의 이름을 누군가 불러준다면, 그들은 다가와 무엇이 될까. 적어도 ‘꽃’은 아닐 것 같다.

성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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