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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6 스페셜

노키즈존 온 더 블록

2019.12.10 | 아이를 들춰 업고 돌아나오기

아이를 갖기 전부터 백일 무렵까지 여러 사정과 핑계로 제주에서 지냈다. 집이 있던 바닷가 마을에는 초등학교 하나, 편의점 하나, 돌담 사이 핀 꽃처럼 오도카니 박혀 있는 카페도 하나 있었다. 문을 열면 말수 적은 사장님대신 솔방울만 한 작은 종이 ‘짜라랑’ 먼저 반기고 아기자기한 빈티지 소품과 수공예 제품이 센터 욕심 없이 주어진 자리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곳이었다. 굳이 단골이라고 하긴 머쓱하지만 걷기 좋은 날이면 종종 드나들었고 이따금 지금처럼 랩톱을 마주한 채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기도 했다. 혼자라 쓸쓸해도 가뿐했던 날들이었다.

얼마 뒤 아이가 생겼고 배가 불러 혼자서 하기 버거운 일들이 늘어갈 무렵, 오랜 친구가 일곱 살짜리 딸을 데리고 방문이랄지 면회랄지 와줬다. 고마운 마음에 맛집 리스트를 탈탈 털어 섬 구석구석 부지런히 먹으러 다녔고, 장거리 운전에 지쳐 걸어갈 만한 곳을 찾아보다 그 카페를 떠올렸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도떼기시장 같은 카페가 아닌 진정한 로컬 카페라며 친구 잘 둔 줄 알라고 으스대며 카페 문을 열었다. 종소리는 언제나처럼 경쾌했지만 어쩐지 텁텁한 공기가 훅 밀려왔다. 사장님의 난감한 표정을 뚫고 흘러내리는 짜증 섞인 피로감. 현관 옆 ‘NO KIDS’ 사인이 왜 그제야 눈에 보였을까.

‘얘 일곱 살이고요, 저보다 더 점잖은데…’라고 하면 아차차, ‘맘충’이 되는 건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는 “테, 테이크아웃은 괜찮죠?”였다. 친구는 이런 일쯤은 한두 번이 아니라고 웃으며 만삭의 나를 다독였다. “이모, 저 때문에 못 들어가는 거죠?” 이렇게 묻는 아이에게 나는 도저히 웃어줄 수가 없었다.


구글에서 확인되는 우리나라 노키즈존 영업장은 400여개. 검색창에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를 완성하기도 전에 연관 검색어 최상위로 ‘제주’가 노출된단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검색 결과 중에는 제주 여행 중 노키즈존 영업장에서 느낀 불쾌함을 호소하며 ‘제주 노키즈존 지도’라도 만들어 배포해달라는 제주도청 게시판의 민원까지 볼 수 있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 묻는다면, 당사자가 되어보니 과연 그럴만한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카페는커녕 믹스커피 한 잔 홀짝일 여유도 없다. 하지만 내가 못 가는 것과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아주 다른 농도의 성질이 난다. 게다가 애써 힘들게 찾아간 곳에서 동행 중 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전박대를 경험하고 나면 ‘노키즈존 다 망해라’ 소리가 온종일 입안에서 끓어오를 수밖에. 하지만 냉수 한 잔 마시고 이성을 되찾으면 영업장의 입장 또한 백 번 이해된다.

이 시대의 자영업은 단순히 생계 유지의 적극적인 수단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취향과 감각을 표출한 공간과 메뉴를 제공하고 그에 따라 자신이 감당코자 하는 만큼의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많다. 내가 보고 느낀 제주의 숱한 사업장들이 그랬다. 좋아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골치 아픈 요소들을 자신의 영역에 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찌 모를 수 있겠나. 다만, 일부 몰지각한 부모와 아이들을 피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과 일행들의 입장을 원천봉쇄해버리는 ‘NO KIDS’ 방침이 정녕 최선인지, ‘꼭 그렇게 다 돌려보내야 속이 시원했냐’ 하는 의문은 든다.


까딱하면 갑질 또는 맘충이 되는 이 골치 아픈 문제의 답을, 사실 우리는 이미 안다. 아주 어렵고 빤하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이해뿐일 것이다.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까진 아니더라도 최소 배척하지 않는 애정.

약속 장소나 목적지가 노키즈존인지 확인하는 일은 조금 성가시지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실망해야 하는 사회에 살아가는 일은, 아이를 들춰 안고서 노키즈존이 있는 블록을 지나 돌아가는 길은 종종 서글프고 고단하다.

글·사진 박코끼리

하나라도 얻어 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쓴다. 요즘은 일생일대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주로 참을 忍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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