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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4(커버 B)

오후의 시각 - 투표, 이렇게 하세요

2025.05.19

정치와 세금의 상관관계

전 국민이 다 아는 느낌적인 느낌에 곧 큰 선거가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 어떤 불행한 사건이 발생해 조금 늦춰질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하겠지. 오늘은 선거에서 과연 어떤 후보를 뽑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아주 소소한 팁 한 가지를 알려줄까 한다. 혹시나 오해할 분들이 있을 거 같아 덧붙이자면 이 글은 3월 중순에 쓰고 있다. 지금은 후보가 누가 될지 무엇보다 무슨 공약을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토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아무튼 그래서 어떤 후보를 뽑아야 하는가? 굉장히 많은 경우의 수와 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답은 간단하다. 보통은 결론을 제일 끝에 쓰지만 이번 글은 너무 중요해서 앞쪽에 쓸까 한다.

‘당신의 세금을 올리겠다는 후보에게 투표해라.’ 눈을 깜빡일 필요 없다. 제대로 읽은 게 맞다. 이유불문 당신에게 돈을 뺏어 가겠다는 후보를 찍어라. 세금이라고는 썼지만 전기료나 가스비,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등 모두 포함해서 하는 소리다.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겠지만 나는 지금 진지하다.

민주주의가 세상을 망치는 방법

민주주의 속 유권자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탱크를 몰고 와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람일 게다. 하지만 그것과 거의 동일하게, 가끔은 그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바로 세금을 올리는 사람이다. 반대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세금을 깎아주거나 나아가서는 무언가를 주는 선심성 정책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은 늘 급변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정책이 다르다.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세금을 올려야 할 때도 있고, 세금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모두에게 복지가 필요할 시기도 있고 선별적인 복지가 필요할 시기도 있다. 물론 여유가 된다면 시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이것저것 해주면 좋겠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국가 재정이 여유로운 일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이 원하는 선심성 정책이 필요할 때는 정치인들이 언제나 우리 생각보다 재빠르게 움직인다. 빠르게 움직여야 상대보다 더 많은 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나서서 이걸 해주겠다 저걸 해주겠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상황이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다. 시민들이 싫어할 일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뭉그적거리면서 그 일을 최대한 미룬다. 괜히 올바르게 행동했다간 다음 선거에서 그대로 목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세금을 올리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대다수 정치인들은 세금을 올려야 할 상황에 부딪히면, 다른 방법은 없는지 최대한 찾은 다음에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세금을 아주 살짝 조금 올린다. 우리의 가벼운 지갑을 생각해주는(혹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갸륵한 마음은 잘 알겠다. 그런데 그 노력 때문에 국가 시스템이 점점 망가진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빚더미에 앉은 지는 오래됐다. 한국은 자원이 적어 에너지 자급률이 3%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전이 아무리 운영을 잘하더라도 외부 요인(정세 불안에 따른 에너지값 상승)에 따라 경영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면 전기료를 올려서 수익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시민들이 사실상 세금이라 여기는 전기료를 올리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크다. 다른 방법도 있다. 정부가 한전에 보조금을 줘서 요금 인상 없이 운영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언제나 세금이 부족하다. 요금도 못 올려, 지원도 못 해, 그래서 나오는 대책이 체질 개선, 구조조정 같은 것들이다. 한전은 10여 년 전부터 소유했던 부지 중에서 알짜배기를 팔고 이상한 곳에 들어가 월세를 살고 있다. 정규직을 구조조정하고 필수 업무를 비정규직과 외주에 넘기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이후로는 안 봐도 리플레이다. 한전의 서비스가 악화되고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비난 여론이 생겨나겠지. 그러면 언론이 이를 동네방네 떠들 테고 정치권은 승냥이처럼 물어뜯을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건전한 경쟁을 운운하면서 민영화 이슈를 띄울 것이다.

필요하다면 부지를 팔 수도 있고 구조조정을 할 수 있고 민영화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원인과 결과가 다른 식의 해결을 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시세에 맞게 요금을 올렸으면 해결됐을 문제다. 그 요금이 너무 비싸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질 정도라면 정부가 이 부분을 보완해주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불만이 두려워 만만한 공기업만 두드려 팬다. 그러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방만하게 운영해서 그렇다며 오히려 그들을 타박한다.

이런 문제는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진보라고 칭하는 이들은 복지를 늘리면서 세금은 올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체력이 있기 때문에 버틸 만하다. 그걸 알기 때문에 세금 징수라는 어려움은 다음 정권으로 넘겨버린다. 어찌저찌 정권 교체가 되어 보수라고 칭하는 이들이 집권했다고 해보자.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므로 세금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역시 세금 올리기는 부담스러우므로 일단 앞 정권 욕을 직사하게 한 다음, 멀쩡한 공공 서비스를 팔아넘긴다. 결국 서민 부담은 더 가중되고 공기업도 망가진다. 이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이 수순을 밟는다. 왜냐면 그래야 욕을 덜 먹으니까. 순서는 바뀔 수도 있는데 패턴은 동일하다. 진보든 보수든 쌍으로 환장의 콜라보를 벌이니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옳은 말씀이지만 안 되겠네요

한전뿐 아니다. 국민연금은 어떤가. 수년간 국민연금을 놓고 나라가 시끄럽다. 젊은 층에서는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원래 국민연금은 설계될 때 보험료율을 3%에서 시작해 5년마다 3%씩 추가로 올려 15%까지 올라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1998년 9%까지 계획대로 올린 뒤, 20년간 올리지 못했다. 예상보다 수익이 적어지니 당연히 문제가 발생한다. 급격한 고령화와 노동인구 감소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처음 설계된 대로 보험료율을 9%에서 12%, 15%로 점차 상향했으면 지금처럼 문제가 심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2000년대와 2010년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호황기였다. 이때 세금도 아니고 돌려주는 보험료조차 올리지 못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경제는 불황에 미래는 불투명한데 이제야 보험료를 올리겠다니 시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이번 정부와 국회는 주식과 코인 수익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포기해버렸다. 세금 체계가 명확하지 않고 시장 상황이 나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반발하면 당연히 거둬야 할 세금도 안 걷겠다니 참 대단한 나라다.

그렇게 세금을 걷기 싫다면 정책도 안 하면 된다. 적어도 그러면 일관성은 있다. 그런데 보통은 세금은 안 걷고 정책은 시행한다. 선거 때 보면 세금 올리겠다고는 한 마디도 안 하면서 하겠다고 하는 일은 무지하게 많다. 논리적으로 방법은 두 가지다. 걷고 쓰거나, 안 걷고 안 쓰거나. 그런데 안 걷고 안 쓴다면 정치인이 필요 없는 것이니 걷고 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니 세금을 올려야지.

그런데 세금을 올리자고 하면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자동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부자들이 돈을 많이 버니까 더 많은 세금을 내야겠지. 하지만 복지국가의 기본은 (비율은 다를지언정) 모두에게 세금을 걷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기 좋은 나라는 모두에게서 세금을 걷어서 필요한 이들에게 사용한다. 그런데 포퓰리즘이 만연한 곳에서는 소수에게 걷어서 모두에게 나누자고 한다. 그게 가장 많은 표를 받는 방법이니까.

국가 재정은 어쨌든 합치면 0이 된다. 당신이 혜택을 받는 만큼 누군가 혹은 당신이 피해를 본다.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고 포퓰리즘도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부러 경계하지 않으면 독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인도에서 소득세를 내는 시민의 비중은 10%도 되지 않는다.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을 모든 정치인이 알고 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그러면 당장 다음 선거에서 떨어질 테니까. 그런 나라는 절대 잘 굴러갈 수 없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세금을 걷겠다는 후보를 찍자. 아무리 인물이 훌륭하고 공약이 좋아도 유권자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에게는 표를 주지 말자. 모두에게 혜택을 나눠 주겠다는 후보가 있다면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먼저 물어보자. 이 규칙만 지켜도 누구를 찍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보통 한 명, 많아야 두 명 정도만 이 기준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명도 없는 선거도 있었다.

물론 이제까지 내가 찍은 후보는 단 한 번도 당선되지 않았기에 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글. 오후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일곱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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