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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5

껍데기를 보내니, 알맹이가 왔다

2020.09.25 |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

온라인 쇼핑은 즐거웠으나, 비닐 테이프와 스티커를 일일이 제거해 택배 상자를 분리 배출하는 건 괴로웠다.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해 바다거북이 기꺼이 삼켜버린다는 뉴스에는 문제의식을 느꼈지만, 그 비닐이 우리 집 냉장고 안 브로콜리를 싸고 있는 그것과 같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이 삶의 모순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2018년 봄. 아파트 단지 내에 수북이 쌓인, 아무도 수거해 가지 않는 쓰레기산을 목격하고부터다.

쓰레기를 대하는 태도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파트의 경우 집마다 더스트 슈트(쓰레기를 1층으로 떨어뜨리는 내부 수직 통로)가 있었다. 주로 다용도실에 그 입구가 있었는데 쓰레기를 투하하면 1층에 있는 쓰레기 집하장으로 모이는 구조였다. 재활용 분리수거의 개념도 생기기 전이라, 음식물 쓰레기 등 모든 쓰레기를 모아 투입구에 넣으면 그걸로 끝. 쓰레기는 아무 때나, 어떤 종류든 집 안에서 손쉽게 버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쓰레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1995년, 쓰레기종량제가 실시되면서부터다. 쓰레기를 버리는 데에도 돈이 들기 시작했고, 제도적으로 학습된 재활용 분리수거가 일상에 얹혀졌다. 그렇게 지역별로 돈을 들여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누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수거해 다시 돈을 만들었다. 폐지 줍는 할머니(비공식 재활용 수거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위태로웠고, 종량제 봉투 안에는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지만 쓰레기는 별탈 없이 낮은 어딘가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다가 2018년 봄, 흔히 ‘쓰레기 대란’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폐기물 수거 업체에서 폐비닐과 혼합플라스틱 재활용품 수거를 중단한 것.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들은 집 앞에, 아파트 단지 내에 그대로 쌓였다. 매일 버려지는 거대한 쓰레기의 양을 적나라하게 확인하는 순간, 그제야 실감이 났다. 거북이 코에 박힌 빨대, 새의 사체 안에서 발견된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이 어제 내가 버린 것일 수도 있겠구나, 그 많은 쓰레기가 바닷속으로, 흙 속으로, 공기 중으로 흩어져 다시 우리의 몸속에 쌓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말이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원하는 자들
쓰레기 대란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2018년 7월, 서울 상암동의 한 대형 마트에 25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일상적으로 장을 본 이들은 알맹이만 빼고 불필요한 포장재를 별도의 카트에 모아 마트에 돌려주는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과도한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를 유통업체 매장에 버리고 오는 이 운동은 2018년 3월 영국 남부 소도시 케인샴에서 처음 시작된 소비자 캠페인. 유럽, 미국 곳곳에서 일던 이 움직임이 한국에서도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 한가운데 금자 씨가 있었다. 13년간 환경단체에서 유해화학물질 반대운동 전담 활동가로 일한 그는 상근직을 그만둔 후 동네 사람들과 자발적으로 같이 할 수 있는 플라스틱 프리 운동을 시작했다. ‘알짜(알맹이만 원하는 자)’들을 모집해, 장바구니 대여 등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는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그중 하나. 그 일상의 운동은 ‘알맹상점’이라는 또 다른 사업으로 이어졌다. 2020년 6월 15일, 합정동에 문을 연 알맹상점은 알짜 멤버였던 금자, 레교, 은, 세 명이 함께 공동 운영하는 제로 웨이스트 상점, 패키지 없이 원하는 내용물을 살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이다.

쓰레기 없는 삶, 제로 웨이스트의 시작점
사실 플라스틱 등 버려지는 것들에 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도 그것을 내 삶 안에서 개선해나가기란 쉽지 않다. 진열대 위 이중 포장된 물건들, 혼합재질이라 재활용이 되지 않는 영수증, 의사도 묻지 않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빨대까지 야무지게 꽂아주는 커피숍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쓰레기 없는 삶에 관한 일상의 방법론을 제안하는 알맹상점의 존재는 반갑고 또 귀하다.

코로나 이슈로 많이 찾는 삼베 마스크, 유리와 대나무, 스테인리스 소재로 만들어진 다회용 빨대, 텀블러, 샴푸 바, 면 생리대까지 500개가 넘는 제품이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다. 일반 대형 마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라인업이다. 선크림이나 향신료, 대용량 세제나 찻잎, 커피 등을 원하는 만큼 계량해 사 갈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도 알맹상점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 용기를 직접 가져오거나 매장 내에 소독 후 모아둔 용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패키지 없는 소비를 삶 안에 들일 수 있다.

이러한 일상의 실천과 병행되어야 하는 게 바로 시스템의 변화다. 기업에서 대량생산하는 제품 중 한 개만 친환경적으로 바뀌어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할 터. 해양오염의 주범인 담배꽁초를 모아 담배 회사에 보내고, 스팸의 노란 뚜껑을 거절하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소비자로서 기업에 적극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전하는 활동이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들어지는 데 5초밖에 안 걸리지만 분해되는 데는 500년도 넘게 걸리는 플라스틱. 최초의 합성수지 플라스틱이 만들어진 게 1909년이니 그것 역시 분해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무섭다. 실제로 1977년에 생산된 뽀빠이 과자 비닐봉지가 선명한 컬러와 재질 그대로 인천 앞바다 고기 그물에 걸려 올라온 뉴스도 있었다. 인간이 먹는 해산물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 2050년에는 바닷속 물고기 수보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수가 더 많아질 거란 경고까지, 플라스틱의 역습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껍데기는 가고, 부디 알맹이만 오라.


김선미
서울 연남동에서 기획 및 디자인 창작집단 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단행본 <친절한 뉴욕>, <친절한 북유럽>, <취향-디자이너의 물건들>, <베이징 도큐멘트>를 썼으며
<한겨레신문>, 월간 <샘터> 등에서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1930년대 한국 근대 잡지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
사진 양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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