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혜화동의 책방이음에 지난 11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베스트셀러를 소개하는 대신 품이 많이 드는 방식으로 판매할 책을 골랐고, 대형 서점에 유통하기 어려운 작은 출판사의 좋은 서적을 비치했다. 공간을 책으로 꽉 채우는 대신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큰 탁자를 두었다. 수익금을 모두 책방에 투자하는 대신, 베트남전쟁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을 지원해왔다. 이 ‘서점’이 오는 12월 말 문을 닫는다. 다만 영원한 ‘폐업’이 아니라 다음을 약속하는 ‘폐점’이다. ‘폐점은 처음’이라며 웃는 조진석 대표는 서점을 나서는 손님에게 올해 중에 또 오라며 인사를 건넸다. 문을 닫는 절차를 밟는 것만으로도 분주할 텐데, 그는 11년간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을 떠올리느라 바빴다. 서점이 폐점해도 사라질 수 없는 건 이곳에 보내는 그들의 신뢰와 애정일 것이다.
지난 9월 폐점 소식을 알린 이후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공간은 올해 12월 31일까지 운영한다. 지금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폐점의 과정을 겪고 있다.(웃음) 책과 집기 정리, 외상 정리 등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는 상태다. 사실 폐점 소식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의아할 정도다. 동네 서점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지금도 소리 소문 없이 폐점을 겪고 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책방 폐점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조금 더 설명해주기 바란다.
어두운 시대에 어두운 모습을 직시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도피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현실을 바로 봐야 희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폐점은 ‘실패’일 수도 있지만 그 요인이 개인에게만 있지는 않다. 그동안 내가 많이 이야기한 ‘3재’, 즉 코로나19, 도서정가제 개악, 문화체육관광부의 해태가 서점 경영에 악영향을 줬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반이 약한 산업에 영향을 준 셈이다. 저리로 대출받은 돈도 임대료로 지출한 상황이고, 더 이상 책방을 운영하기 어려운 한계점에 도달했다.
이전 책방 주인에게 이 공간을 인수했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내가 인수하기 전에 문예창작과 출신 사장님이 서점을 운영하셨는데, 그때 이름은 ‘이음아트’였고, 예술 서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근처 직장에 취직하면서 이 공간을 발견했는데, 처음 여기 들어올 때 공간에서 빛이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둘러보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책방이음은 베트남전쟁 피해자를 돕거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공익 활동을 지속해왔다. 추가 수익을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한 이유가 뭔가.
자본 투자 등 영리적 방법으로 책방을 운영하긴 어려울 것으로 봤고, 수익금은 공적 재원으로 만들어서 시민단체 등을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지역에 책방이음 이외에 다른 서점들도 있는데 수익을 서점의 성장만을 위해 사용하면 그 서점들에 피해를 주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공익의 관점으로 책방에 접근하니 비치할 책을 고르는 것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현재까지 공익적으로 사용한 기부금은 1억 7천만 원 정도 된다.
그동안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라 책방이음만의 기준으로 다양한 책을 소개해왔다. 좋은 책을 선택하는 안목을 기르는 방법이 있을까.
자신이 품은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돈 없이 사는 법’을 말하는 책을 권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웃음) 모든 사람에게 잘 듣는 보편적인 약이 없듯, 보편적인 책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방에 베스트셀러가 없는 이유다.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다. 사람에 따라 재미있게 느끼는 책도 다 다르지 않나.
※ 이번 기사는 다음 기사 '사라질 수 없는 2'에서 이어집니다.
책방이음
서울 종로구 대학로14길 12-1
페이스북 @eumbooks
(책방이음은 12월 말, 문을 닫는다. 미리 전화를 해보고 찾아가자)
글 황소연
사진 김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