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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9 스페셜

사라질 수 없는 1

2020.11.27 | 책방이음 조진석 대표

서울 혜화동의 책방이음에 지난 11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베스트셀러를 소개하는 대신 품이 많이 드는 방식으로 판매할 책을 골랐고, 대형 서점에 유통하기 어려운 작은 출판사의 좋은 서적을 비치했다. 공간을 책으로 꽉 채우는 대신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큰 탁자를 두었다. 수익금을 모두 책방에 투자하는 대신, 베트남전쟁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을 지원해왔다. 이 ‘서점’이 오는 12월 말 문을 닫는다. 다만 영원한 ‘폐업’이 아니라 다음을 약속하는 ‘폐점’이다. ‘폐점은 처음’이라며 웃는 조진석 대표는 서점을 나서는 손님에게 올해 중에 또 오라며 인사를 건넸다. 문을 닫는 절차를 밟는 것만으로도 분주할 텐데, 그는 11년간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을 떠올리느라 바빴다. 서점이 폐점해도 사라질 수 없는 건 이곳에 보내는 그들의 신뢰와 애정일 것이다.

지난 9월 폐점 소식을 알린 이후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공간은 올해 12월 31일까지 운영한다. 지금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폐점의 과정을 겪고 있다.(웃음) 책과 집기 정리, 외상 정리 등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는 상태다. 사실 폐점 소식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의아할 정도다. 동네 서점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지금도 소리 소문 없이 폐점을 겪고 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책방 폐점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조금 더 설명해주기 바란다.
어두운 시대에 어두운 모습을 직시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도피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현실을 바로 봐야 희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폐점은 ‘실패’일 수도 있지만 그 요인이 개인에게만 있지는 않다. 그동안 내가 많이 이야기한 ‘3재’, 즉 코로나19, 도서정가제 개악, 문화체육관광부의 해태가 서점 경영에 악영향을 줬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반이 약한 산업에 영향을 준 셈이다. 저리로 대출받은 돈도 임대료로 지출한 상황이고, 더 이상 책방을 운영하기 어려운 한계점에 도달했다.

이전 책방 주인에게 이 공간을 인수했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내가 인수하기 전에 문예창작과 출신 사장님이 서점을 운영하셨는데, 그때 이름은 ‘이음아트’였고, 예술 서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근처 직장에 취직하면서 이 공간을 발견했는데, 처음 여기 들어올 때 공간에서 빛이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둘러보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책방이음은 베트남전쟁 피해자를 돕거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공익 활동을 지속해왔다. 추가 수익을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한 이유가 뭔가.
자본 투자 등 영리적 방법으로 책방을 운영하긴 어려울 것으로 봤고, 수익금은 공적 재원으로 만들어서 시민단체 등을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지역에 책방이음 이외에 다른 서점들도 있는데 수익을 서점의 성장만을 위해 사용하면 그 서점들에 피해를 주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공익의 관점으로 책방에 접근하니 비치할 책을 고르는 것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현재까지 공익적으로 사용한 기부금은 1억 7천만 원 정도 된다.

그동안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라 책방이음만의 기준으로 다양한 책을 소개해왔다. 좋은 책을 선택하는 안목을 기르는 방법이 있을까.
자신이 품은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돈 없이 사는 법’을 말하는 책을 권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웃음) 모든 사람에게 잘 듣는 보편적인 약이 없듯, 보편적인 책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방에 베스트셀러가 없는 이유다.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다. 사람에 따라 재미있게 느끼는 책도 다 다르지 않나.

※ 이번 기사는 다음 기사 '사라질 수 없는 2'에서 이어집니다.

책방이음
서울 종로구 대학로14길 12-1
페이스북 @eumbooks
(책방이음은 12월 말, 문을 닫는다. 미리 전화를 해보고 찾아가자)


황소연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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