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주인이니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손님에게 포기하시라고 말하곤 했다.(웃음) 내가 그분의 생각을 잘 모르는데 무턱대고 책을 추천할 순 없으니까. 손님들은 많은 고민을 안고 이곳을 찾아온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학교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저마다 목적이 다르다. 그럴 때면 함께 앉아서 고민해본 뒤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자료를 찾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결국 한참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책방에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많은 분이 고민을 같이 나눌 사람이 있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아온 것 같다. 다만, 임대 계약이 보통 2년 단위 아닌가. 이 동네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는 터라 시간이 지나면 방문이 뜸해지는 분도 많았다. 우리는 계속 떠다닐 수밖에 없는, 문제를 오랜 고민 없이 즉각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처한 것 같다. 책이 그러하듯, 사회도 ‘경박단소(輕薄短小)’, 즉 가볍고 얇아진 것이 아닐까.
지역사회에서 책방의 역할을 체감한 소감이 궁금하다.
책방이음엔 어린이나 청소년도 많이 왔다. 엄마가 잠시 쉬는 동안 아이가 놀이방 삼아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엄마들이 뒤편에 마련된 공간에서 수유를 하거나 쉬어 가기도 했다. 아이는 가족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어울릴 수 있었다. 육아가 엄마나 가족에게만 전가되는 환경은 당사자에게 큰 부담인데, 이곳에선 누군가 아이와 간식을 나눠 먹고 책을 읽어주면서 일종의 공동체 육아를 시도할 수 있었다. 탈학교 청소년들도 자주 왔다. 직접 청소년들의 얘기로 책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처음엔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는데, 책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말하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책방이 다시 열린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
관계성을 두텁게 다질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귀를 열고, 더 시간을 들여서 세심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책 추천을 삼간다고 했지만, 혹시 본인이 읽은 책 중 《빅이슈》 독자와 판매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나.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내가 라면을 먹을 때>라는 그림책이 있다. 아이들이 라면을 먹으면서 ‘옆집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호기심을 갖는 내용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다른 나라의 누군가는 야구를 하고, 또 누군가는 심부름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어딘가에선 물을 뜨러 가고, 음식을 구하러 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내용이다. 내가 좋아하는 라면을 먹는 데에서 시작해 다른 세계로 관심을 확장하는 것이 주제다. 또 하나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인데, 아무것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책은 아니다. 우리가 삶에서 최소한으로, 감당할 수 있는 소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리영희 선생의 <스핑크스의 코>도 권하고 싶다. 뭉개져버린 스핑크스의 코를 통해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책방에서 손님에게 책을 건네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왔다. 코로나19로 많은 소통 창구가 비대면으로 대체되는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사람은 뼈뿐 아니라 살도 있지 않나. 그런데 사람에 비유하자면 뼈만 남은 사회로 나아가는 것 같다. 스킨십이 필요치 않은 건조한 관계가 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대면 방식으로 부가적 성장을 하고 삶의 질이 나아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장 홈리스나 장애인,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인데, 지금 아무렇지 않다면 살아남은 자다. 살아남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가 책과 독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예를 하나 들어보자. ‘홈리스와 책’은 우리나라에선 거의 연결되지 않는 개념일 것이다. 집, 즉 공간과 책은 잘 연결되지만 집이 없는 홈리스는 책과 무관한, 책에서 배제된 이들로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설계는 되어 있지만, 홈리스를 포함해 도서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책과 독서를 접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가 편안한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굉장히 불편한 사회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구에게 맞춰진 책인가, 누구에게 더 편한 도서관인가를 질문하다 보면 더 많은 이들이 책과 독서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방이음
서울 종로구 대학로14길 12-1
페이스북 @eumbooks
(책방이음은 12월 말, 문을 닫는다. 미리 전화를 해보고 찾아가자)
글 황소연
사진 김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