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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0 에세이

기쁨의 기다림 달력

2020.12.15 | 사물과 사람

애드벤트 캘린더(Advent Calender),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면 대림(待臨) 달력이다(대림절은 기독교 전례에서 예수 탄생 축일을 기다리는 성탄 전 4주를 말한다). 말하자면 기다림 달력이다. 11월이 되면 슈퍼마켓에서 이 달력을 파는데,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 많이 산다. 그건 기독교도가 아니어도 성탄절을 즐기는 것과 비슷하다. 대형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생긴 얇은 상자에 1부터 25까지 숫자가 쓰여 있는데, 숫자를 둘러싼 점선을 따라 구멍 뚫려 있어서 손톱으로 누르면 숫자 칸을 열 수 있다. 그 안에는 초콜릿이 들어 있다. 12월 1일부터 하루에 한 알씩 먹다 보면 어느덧 숫자가 다 열리고 성탄절이 된다.

영국에 온 첫해 겨울에 대림 달력을 처음 봤다. 새로 사귄 이웃이 아들 것을 사는 김에 우리 딸들 것도 샀다며 두 개를 가져왔다. 도토리만 한 초콜릿 스물다섯 개야 맘먹으면 한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하루에 하나씩만 먹었고, 그날 날짜보다 더 큰 숫자가 적힌 문은 건드리지 않았다. 사실 기다림의 봉인을 떼고 여러 개를 먹고 싶을 만큼 그 맛이 특별한 것도, 어릴 적 뽑기 놀이를 할 때처럼 문을 열면 뭐가 나올지 설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시시한 놀이였다. 그래도 매일 한 알씩 먹는 평범한 초콜릿이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게 했고, 25일을 향해 가는 매일의 습관이 크리스마스를 더 기다리게 만들었다.

구운 오리와 크리스마스 푸딩
성탄절 아침은 늘 선물을 끄르는 일로 시작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는 시댁 식구 네 명과 우리 식구 네 명이 놓아둔 선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선물을 풀어보며 카드를 읽고, 옷이라도 받으면 입어보며 예쁘다 감탄해주고, 그러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정성과 수고 덕분에 우리는 늘 잔치 음식을 먹었다. 그분은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푸딩을 만들고, 식구 수만큼 오리를 준비하고, 생선 가게에 왕새우도 주문해두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새벽부터 일어나 로스트 덕(오븐에 구운 오리 요리)을 만들었다. 칠면조를 먹는 집이 많은데 우리 식구는 살이 퍽퍽하지 않은 오리를 더 좋아했다. 오리 몸통 안에는 양파, 셀러리, 마늘, 허브, 빵가루를 섞은 소를 채워 넣었다.

따듯한 채소를 곁들여 오리를 반 마리쯤 먹고, 반주 삼아 베일리스나 셰리까지 마시고 나면 졸음이 쏟아졌다. 그러면 다들 한숨 잤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오후에는 집 안이 적막했다. 어둑해지면 다시 모여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는 올리브 오일과 버터, 마늘과 허브를 넣어 익힌 왕새우 요리와 커스터드 크림을 얹은 크리스마스 푸딩을 먹었다. 먹고, 자고, 다시 먹고 나면 크리스마스 하루가 저물었다. 수고는 다 시어머니 몫이었는데, 그분은 그걸 매해 기꺼이 했다.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과 함께 좋은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일랜드 이민자로 가난한 살림을 꾸리며 가족을 돌보던 그분에게는 1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기쁨이었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암 투병이 시작되자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조심스러워졌다. 시누이가 음식을 하고 놀이도 준비했지만, 우리는 자꾸 그분이 피곤하지 않은지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이 돌아가시자 ‘그 크리스마스’는 사라졌다. 언제나 있었던 것, 그래서 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들은 사라진 후에야 흔적을 남긴다.

크리스마스 불빛
12월이 되면 거리는 불빛으로 가득하다. 성탄절 즈음에 동생네 가족이 찾아온 적이 있다. 함께 런던 나들이를 했다. 런던에는 ‘햄리스(Hamleys)’라는 장난감 가게가 있다. 햄리라는 사람이 1760년에 문을 연 가게란다(오래되긴 했다. 우리로 치면 조선 중기다). 7층짜리 건물이 장난감으로 꽉 차 있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아직 장난감을 좋아할 때여서 조카들까지 네 아이에게 돈을 똑같이 주고 맘에 드는 것을 사라고 했다. 같은 시간을 같은 가게에서 보냈는데 들고 나오는 것이 다 다르다. 자잘한 물건을 잔뜩 산 놈, 큼직한 것을 하나 안고 나오는 놈, 돈을 반만 쓴 놈, 아무것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나온 놈, 다들 자기 색깔대로 산다. 그 집 아들들은 내가 집에 데리고 갈 테니 오랜만에 둘이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동생 내외와 헤어졌다. 밤늦게 돌아와서 말해주길 많이 걸었다고 했다. 사진을 보여주는데 런던 곳곳의 불빛과 사람들이 담겨 있다. 옥스퍼드 서커스 거리의 하늘을 나는 천사, 코번트가든의 거리 공연, 시장과 거리, 식당의 불빛과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표정이 다르다. 이 부부도 그랬기를.

올해는 ‘그 크리스마스’도 사라질 것 같다. 불빛이야 밝히겠지만,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인들 마스크를 쓰고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거리 모습이 훈훈할까 싶다. 해피 크리스마스는 누가 훔쳐갔을까? 동화 속 얘기라면, 그린치가 성탄절 아침에 사람들이 손잡고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훔쳐간 것들을 다 돌려줄 텐데(닥터 수스의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사람들이 되찾아오는 수밖에 없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 찾을 수 있을까? 손을 못 잡는데 어떻게 불러야 할까?


소포 꾸러미
11월 4일에 한국으로 보내는 소포 꾸러미들을 들고 우체국에 갔다. 제2차 록다운(도시 봉쇄)이 시작되기 전날이다. 우체국은 열겠지만, 어쩐지 다음 날부터는 밖에 나가는 것이 더 위축될 것 같았다. 오랜 친구와 새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성탄 카드와 기다림 달력을 묶어 보냈다. 우체국 직원이 소포 다발을 들고 가는데 마음이 한결 든든해졌다. 나는 저것으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결될 터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립을 견딜 수 있는 알약을 한 알 먹은 기분이었다. 설레며 기다릴 일도 생겼다. 11월이 가기 전에 친구들은 소포를 받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해본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기뻐하겠지. 놀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낼 거야. 그럼 다시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눠야지. 12월 한 달 동안 우리는 같은 놀이를 하고 같은 기억을 만들 거야.’ 이게 내가 부르는 노래다. 나는 아무래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 그립고, 지금 이 시간이 외로운 모양이다.

엄마는 “잡아놓은 날은 반드시 온다.”고 말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기다리는 일이 아득히 멀어서 조바심이 날 때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정말로 시간은 뚜벅뚜벅 걸어서 어느덧 그날에 도달해 있었다. 엄마에게 묻고 싶다. “그런데 지금 제가 기다리는 것은 잡아놓을 수 없는 날인데, 그날도 반드시 올까요?”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완전히 사라져서 기억에만 남는 것도 있고, 다행히 되찾아서 큰일 날 뻔했다며 안도하는 것도 있다. 2020년에는 많은 것이 사라지고 유보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알던 세상의 좋은 것들을 완전히 잃지 않았기를 바라고,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되찾고 감사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백신 이야기가 들리니 그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기도 하다. 뉴스에서는 내년 부활절 즈음에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거라는 예측도 한다. 나는 일단 그렇게 잡아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잡아놓은 날은 반드시 온다고 했으니. 기다림 달력 다섯 개만 열면 된다.


글・사진 이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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