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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0 스페셜

거래한다, 고로 존재한다

2021.05.13 | '당근'에 빠진 24시간

‘당신 근처의 마켓’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당근마켓’(‘당근’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은 중고 물품 직거래 및 동네 기반 서비스로 많은 사람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집 근처 주민에게 물건을 구매하게 만드는가 하면, 지난겨울엔 붕어빵 등 사용자 근처의 간식 판매 정보를 볼 수 있는 ‘겨울 간식 지도’를 서비스하기도 했다. 중고거래를 넘어 이웃과 연결될 기회를 마련하는 서비스인 셈이다. 당근마켓 앱을 이용하며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프로 당근러’ 직장인 A씨의 하루를 재구성했다. 당근은 우리의 소비생활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 활용 습관에도 자리 잡았다.

09:30, 해 뜨자마자 거래 시작


지난밤, 눈여겨보던 마사지 건을 발견했다. 판매자에게 구매 문의를 하려 했지만 ‘방해 금지 시간’이라 연락하기가 꺼려졌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채팅을 남기려다 꾹 참았다. 그리고 아침 출근길에 바로 대화를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구매 가능할까요^^?” 나에게 물건 구매 의사를 전하는 이웃들은 “살게요.” 부터 “깎아주세요.” 까지 첫인사 같지 않은 첫인사를 건네곤 했다. 타산지석의 마음으로 늘 예의 바르게 대화를 건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런 예의도 ‘쿨거래’의 범주에 포함되어 값을 깎아줄 수도 있으니까. 판매자의 답장을 기다려봐야겠다.

12:30, 점심때는 당근으로 동네 산책


얼마 전 SNS를 뜨겁게 달군 당근마켓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누군가 실수로 지붕에 ‘애착 인형’을 떨어뜨려 ‘동네생활’ 탭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는데, 이 요청을 본 이웃이 낚싯대를 가져가 인형을 구해줬다는 사연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오가는 대신 당근마켓 ‘동네생활’로 주변을 산책하곤 한다. 이런 드라마틱한 사연 외에도 흥미로운 글이 많아 짬 내서 하는 산책처럼 시간이 ‘순삭’된다. 드릴을 빌려 달라는 부탁, 길에 떨어진 안경을 벤치에 올려뒀으니 찾아가라는 알림, 코로나19 종식 이후 태국 여행에서 써먹을 수 있는 태국어를 무료로 알려주겠다는 글도 보였다. 이 글 마지막에 덧붙은 말은 이러하다. ‘또한 망고에 관심 있으신 분도 연락 주세요.’ 뭐지, 사실은 망고 판매업자인가? 아니면 점점 더워지는 한국에서 망고 재배를 하려는 농업인? 뜬금없는 망고 이야기에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 이웃이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드라마 소모임을 만든다는 글도 발견했다. 드라마를 보고 주 1회 온라인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라고 한다. 캐릭터도 분석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알찬 모임. 게다가 이웃과 함께 하니 일종의 멤버십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두근거리던 순간, ‘대학생이 만든 모임이므로 비슷한 연령대만 받겠다.’는 나를 슬프게 하는 설명을 보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디어를 얻었으니까. 어쩌면 나도 비슷한 모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저녁에 지하철역 앞에서 마사지건 판매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채팅 알람이 울렸다.



※ 이번 기사는 <거래한다, 고로 존재한다2>에서 이어집니다.


글.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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