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topNewsLetterCloseButton
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50 에세이

나는 해맑고 무지하고 싶으나 좀 지쳤다

2021.05.31 | 모니카 인 파리

지난 일주일은 바캉스 기간이었다. 우리 학교의 문제인지 내가 속한 과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의 방학은 생각만큼 자유롭지 않다. 방학을 앞두고 교수님이 과제 피드백을 주시는데, “방학 중에도 학교는 열려 있지?”라는 말에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혹여 방학 중에 학교에 나오지 못할 경우에도 열심히 작업하라고 학교 장비까지 손수 빌려주셔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물론 방학 동안 나는 작업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제껏 생필품 장만하랴 행정 사무 처리하랴 학교에 적응하랴 워낙 바빠 제대로 만나지 못한, 나처럼 이 시국에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온 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비유럽권 국가 출신보다 유럽 출신 친구들이 많다. 원래 교환학생 인원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야 하는데, 각국의 입출국 및 비자 규정으로 때문에 다수가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친구들도 생겼다. 한국인끼리 모이니 자연스레 인종차별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게다가 여학생끼리만 있어서 동양인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를 중심으로 얘기했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서 그대로 옮겨 적진 않겠지만, 크고 작은 위협 중에서 노골적으로 성희롱에 가까운 일이 많아서 경악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논할 때 가장 슬픈 것은 위협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 즉 자포자기하는 태도다. 내게 세상을 바꿀 힘은커녕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소한 차별에도 대항할 힘이 없다는 것. 이는 반복에 의해 각인되는 믿음이다.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근처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가봤다. 박물관은 문을 닫았을 텐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 했더니, 빈 광장이 스케이트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스케이트장으로 쓰였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짓누르게 하는 인종차별
파리에 와서 아직까지 공격적인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없다. 4년 전 관광차 방문했을 때도 없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프라하, 런던 등에 비해서 강도가 약해서 기억이 미화된 것일 수도 있고, 당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파리는 많은 사람이 말하듯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는 도시이기 때문에, 내가 당하는 차별이 인종 때문인지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 가늠하기 까다로운 면이 있다. 여하튼 이와 무관하게 파리에 인종차별은 존재한다. 나도 공격적인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았다 뿐이지 기저에 깔린 인종차별을 매일 느낀다. 예를 들어 학생식당 직원이 동행한 백인 남성 친구에게는 인사하면서 내게는 인사하지 않는다든지, 버스 기사에게 프랑스어로 말해도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든지, 기타 등등.

유럽 출신 백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인종차별은 존재하되 내가 사는 국가 혹은 대도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대다수가 유럽이 미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감상을 말하자면, 백인들은 코로나19가 터지고 동양인 혐오에서 나오는 범죄가 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한 후에야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이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4년 전에도 암스테르담에서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길 건너편에서 나를 향해 “니하오.” 하고 소리치는 사람을 만났는데 말이다. 파리에서는 아직 당하지 않았지만 이 도시에서 지금 당장 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유색인종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인종차별은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나 자신을 싫어하게 만든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한국인들이 파리 북쪽을 피하는 등 ‘안전’을 위해서 생활 반경을 특정 지역으로 좁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차지할 수 있는 넓이를 스스로 제한하게 만든다. 쉽게 말해 나대지 않고 조용히, 얌전히 살게 한다.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개인의 가능성을 스스로 의심하고 짓누르게 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4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첫날밤, 호스텔 침대에 누워서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방법’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한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검색 결과 중 하나는 대항하면 크게 다칠 수 있으므로 그 상황을 재빨리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그 후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나머지 3일 동안 어떻게 하면 한국인처럼, 동양인처럼 보이지 않을지 고민했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 비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서양 국가에 가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안전’을 위해서. 나는 이곳에 와서 내가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전혀 기쁘지 않다. 그저 내 친구들에게는 왜 일어나고, 내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물론 유럽에서 나고 자란 동양인 친구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듯하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한 친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차별을 당할수록 더 적극적이고 씩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성격 차이일 수도 있고, 그 친구는 행동하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더 자주 목격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적극적이고 싶지도 씩씩하고 싶지도 않다. 인종차별을 당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지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지친다. 무지가 곧 권력이다. 나는 해맑고 무지하고 싶다. 하지만 내게 그건 사치이므로, 그저 지쳐 있을 뿐이다.

몽수리 공원 풍경

당해봐야 상처받지 않는다?
지난주에 제3차 봉쇄령이 내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말이 봉쇄지 파리 풍경은 이전과 똑같다. 레스토랑, 바, 카페는 여전히 닫혀 있고 당분간 쇼핑을 못 할 뿐이다. 물론 나는 이전에도 학교에 다니느라 쇼핑할 시간도 기운도 없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계절이 바뀌는데 옷 구경을 하지 못한다는 것, 학교 준비물 사는 과정이 조금 까다로워졌다는 것 빼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 공원에 가면 여전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특히 오늘은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학교 근처에 있는 뤽상부르 공원 잔디밭에 빈자리가 없어 보였다. 지레 설레발 치고 싶진 않지만, 공원까지 봉쇄된다면 그야말로 악몽의 시작일 듯하다. 지난해 서울에서 통금이 생기자 한강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한강공원을 닫았던 것처럼, 이렇게 사람들이 공원으로 많이 모이면 공원을 폐쇄하는 것이 당연한 조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이 시기에 파리에 왔다는 사실에 한없이 슬퍼질 테니 공원만큼은 닫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여하튼 나도 날씨 핑계로 오후 수업을 빼먹고 학교를 슬쩍 나와 교환학생 친구들과 에펠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근데 에펠탑 근처 마르스 광장에서 커피를 사려다가 기어코 “니하오.” 소리를 듣고 말았다. 매점 사장이 나를 보고 “봉주르, 니하오.”라고 했는데, 내가 “저 한국인인데요.” 하고 프랑스어로 대답하자 “그러면 곤니치와.”라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커피는 사지 않았다. 이번 주는 학교의 워크숍 주간이라서 전공 수업이 아니라 본인이 관심 있는 특수 분야 주제를 다루는 수업을 선택해서 듣는다.

2024년에 열릴 예정인 파리 올림픽을 대비하는 것인지 관광객이 없는 틈을 타 금색으로 새롭게 단장 중이다.

나는 대항 서사(contre-récits)를 선택해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식민지의 탈식민 서사에 집중한다. 말이 거창한데, 수업에서는 대체로 본인이 겪은 인종차별이나 식민지와 비유럽권 예술을 대하는 선입견 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시간을 갖는다. 프랑스는 아직도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말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위기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수업이 매우 귀하고, 또 우리 학교에 백인이 아닌 교수가 거의 없고, 학생도 대부분 백인이어서 더욱 귀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젊은 강사와 에펠탑 공원에서 당한 인종차별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경험이 당신의 하루를 망치지 않게 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은 당연하게도, 그리고 조금 슬프게도 ‘짬에서 나온다’였다. 많이 당해봐야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은 고통에 익숙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막을 치고, 적당히 대항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숙제라는 사실이 떨떠름하지만, 사실 나는 빠른 시일 내에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일상생활이 ‘#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로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듯이, 내 일상생활도 현재 아시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운동 이후로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글|사진. 문재연

디지털 문학 플랫폼 ‘던전’에서 영화 에세이 시리즈 ‘싸우자, 취향아’를 연재하고 있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
브런치 @puppysizedelephant


1 2 3 4 5 6 

다른 매거진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