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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1 에세이

코리안, 우리의 언어

2021.05.30 | 사물과 사람

벌써 서너 해 전 일이다. “실례지만, 지금 쓰는 말이 어느 나라 말인가요?” 동네 펍에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 둘이 말을 걸었다. “한국어예요.” “아, 그렇군요. 소리가 독특해서 궁금했습니다.” “소리가 어떻게 들리세요?”

우리말, 소리
“아름다워요. 음악 같아요.” 우리가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라면 이게 환심을 사려는 빈말이라고 의심할 만했을 텐데, 바로 믿었다. “그런가요? 감사해요.” 비슷한 얘기를 얼마 후에 또 들었다.

‘성령강림대축일(Pentecost)’ 날이었다. 이날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님이 부활한 지 50일 후에 성령이 내려오고, 이제 사도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 성당에서는 그날, 기도문과 성경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읽는 특별한 미사를 드린다. 매년 자원자를 모집하는데, 2018년 성령강림대축일 미사 때는 나도 자원했다(나 말고도 이탈리아, 프랑스, 필리핀, 폴란드, 스페인에서 온 사람이 참여했다). 그날 나는 ‘제2독서’로 <사도행전>(2:1-11)을 읽었다.


저녁 미사라 밖은 어스름했다. 오래된 성당 안은 사람들로 꽉 찼는데도 빈 곳처럼 고요했다. 높은 돔 천정이 소리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이 지긋한 여자분이 다가왔다. “아까 그 언어는 어느 나라 말인가요?” “한국어입니다.” “그렇군요.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봤어요. 유럽 언어와 완전히 다르고, 제가 아는 어떤 소리와도 달라서 궁금했어요.” “어떻게 들리셨어요?” “고요하고 아름다워요.”


음식과 액자
내가 유독 그해에 성당 행사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마음속으로 올리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당에 열심히 나가면 ‘기도빨’이 세질 거라는 유치한 바람이 있었다. 그즈음 나는 마치 망명 정부의 인사처럼 조국의 평화를 자주 생각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에,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나도 설레고 감격하고 기대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허망하지만, 그때만 해도 당장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줄 알았다.

그날 미사 후에는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온 음식을 함께 나누는 파티가 열렸다. 이민자들은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왔다. 우리 성당에 다니는 한국 사람은 M과 나, 딸랑 둘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김밥을 싸고, 전을 부쳤다. 나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김밥 백 줄을 못 말겠느냐.”고 큰소리쳤지만 내가 말면 자꾸 옆구리가 터져서 김밥은 M이 다 쌌다. 나는 전유어, 완자, 버섯전, 호박전을 부쳤다. 김밥과 전을 엄마가 쓰시던 오래된 옻칠 목기에 얌전히 담았다. 나중에 성당 홀에 차리고 보니, 물량으로는 필리핀 커뮤니티의 음식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정성과 단아한 모양새로는 단연 우리가 으뜸이었다.

음식상 옆에 사진을 두 장 넣은 액자를 하나 세워두었다. 하나는 1989년에 임수경의 손을 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는 문규현 신부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2018년에 그 군사분계선을 손잡고 넘는 남북한 두 정상의 모습이었다. 사진 위에 큼지막하게 이렇게 적어두었다.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액자를 놓아둔 것만으로도 조국의 평화에 크게 기여하는 것 같았다.


런던한겨레학교
2018년 가을에 나는 ‘런던한겨레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이 학교는 런던의 한인타운 뉴몰든에 정착한 북한 사람들이, 자녀의 한글 교육을 위해 세운 주말학교이다. 영국에 사는 북한 사람은 1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부분 난민으로 이곳에 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영주권을 얻은 사람이 많고, 시민권자가 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이곳에 자리 잡기까지는 각자의 이유와 길고 험한 여정이 있었을 것이다. 사연이 궁금했지만 굳이 내 편에서 묻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우리는 남과 북 어디 출신인지와 상관없이, 그저 이 낯선 땅에서 같은 말을 쓰는 코리안 이주민으로 만났던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중급반 아이들에게 한글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얼마간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어린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기로 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윤동주, 나태주, 최승훈, 박길순, 박희순 시인의 시를 읽고 외웠다. 그리고 자기가 이해한 대로 영어로 옮겼다. 열 살 난 장난꾸러기들의 번역은 아이들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다 근사했다. 학기가 끝날 때쯤 아이들은 자기가 만든 우리말 번역 시집을 하나 완성했다. 나는 이걸 꼭 간직하라고 당부했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될 때, 이게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다. (이 경험을 글로 쓴 적이 있다. ‘고향은 부칸입니다’ <창작과비평> 2019년 여름호)

나는 아이들의 작품을 모아 우리 반 시집을 하나 만들어서 학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영국 사람들에게 줄 때는 부듯한 마음이 마구 솟아났다. 감격에 겨워 말도 많아졌다. “멋지지 않아요? 영어가 분석적인 언어라면, 코리안은 직관적이고 시각적인 언어인 것 같아요. 이미지와 감정을 간결하게 포착하는 데 탁월하거든요. 이것 좀 보세요.” 사람들은 아이들의 시를 웃음 지으며 읽었고, 과연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한글도, 아이들도 자랑스러웠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코리안’을 대체하는 단어가 정작 우리말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쪽에서는 ‘한국어’라 하고 북쪽에서는 ‘조선어’라고 하는데, 남북이 어울려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글자는 ‘한글’이라고 하면 되는데, 말은 부르기가 애매해서, 그냥 ‘우리말’이라고 얼버무려 말했다. 남과 북을 아우르는 이름이 없다. 서로 등 돌리고 산 시절이 너무 오래되었다. 2018년 12월에 약속한 한 학기를 마치고 나는 아이들과 헤어졌다.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할 것 같아서 들떠 보냈던 그해도, 시시하게 저물었다.


새로운 기도
얼마 전에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오래전에 맺은 인연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이어졌다. 2021년 4월, 나는 런던한겨레학교 교장이 되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문을 닫았던 학교를 다시 열고, 선생님, 학부모들과 힘을 합쳐 이 학교를 잘 꾸려가는 것이 지금 내 일이다. 바람이 생겼다. 부모가 한반도 남과 북 어느 쪽 사람인지 상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 일, 차근차근 잘해보고 싶다. 어쩌면 이게 지금 내 자리에서 소박하게 다시 시작하는, 평화를 위한 기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설레고 기대된다.


글 | 사진. 이향규
남편과 두 딸,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영국에서 산다. 한국에서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했다. 지금은 집에서 글을 쓴다. <후아유>,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같은 책을 냈다. 작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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