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변화를 위해 공익 활동을 펼치는 활동가의 삶은 고달프다.
2019년에 열린 ‘활동가 건강권 포럼’(고 박종필 감독 추모사업회 주최)에서 논의된 바에 따르면, 활동가 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요인은 다양하다. 적은 보수로 인한 빈곤, 일과 쉼이 구분되지 않는 불규칙한 업무 환경, 활동 내외에서의 스트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돈도 없고 쉴 시간도 없는데 일도 많고 마음 쓸 데도 많아서 건강이 무너지기 쉽다는 것.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면서 활동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까. 그래서 오현정 상담사는 작년 7월, ’뜻밖의 상담소’를 만들어 활동가 마음 건강검진, 자조 모임, 이야기 모임 등을 통해 활동가의 심리를 지원해왔다. 여러 파업 투쟁 현장에서부터 노동자, 활동가와 연대해왔던 오 상담사는 인간다운 삶의 최전선을 지키는 활동가의 곁이 되어주려 한다.
김지연 공동 대표와 뜻밖의 상담소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활동가들의 실태를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마음 건강에 필요한 욕구나 어려움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 의기투합하게 됐다. 활동가들의 신체 건강과 관련해서는 이미 지원제도가 있는데, 정신 건강에 대해서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과 공감대가 무르익으며 여러 단체에서 사업으로 시작됐고, 마침 상담소를 준비하던 시기와 맞물렸다. 특히, ‘활동가 건강권 포럼’이 상당한 마중물 역할을 해줬다. 거기서 활동가 당사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후 공익 활동가 사회적 협동조합 ‘동행’에서 활동가 실태 조사(2019)를 했는데, 젊은 여성 활동가분들의 우울 수치가 연령대 평균과 비교해 상당히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서 ‘인권재단 사람’에서도 작년 처음으로 활동가 마음건강검진 사업을 진행했고, 우리(뜻밖의 상담소)도 작년 다음세대재단이 공모한 인권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돼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찾아올 때 약수역 인근 뜻밖의 위치에 자리해 밖에서 상담소가 맞나 여러 번 확인했다. 뜻밖의 상담소라는 이름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상담소에 오는 일이 일상적이지는 않은 거 같다. 아직 까지는 살면서 뜻밖에 힘들거나 마음이 어려울 때 찾게 되는 곳인 거 같다. 그런데 그런 고통이 우리 삶에 있어서는 치유와 성장이라고 하는 뜻밖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는 의미에서 ‘뜻밖에’라는 이름을 지었다. 또 하나는 여기에 와보면 ‘이런 곳에 상담소가?’ 하고 놀라신다. 약국이나 카페라고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다.(웃음)
현대사회의 어느 누구도 정신 건강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활동가들의 위험도는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대부분의 인권 단체가 규모가 작고 형편이 열악하다. 개인 활동을 하는 분들도 있고. 활동과 개인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감이 있어야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데 처우가 보장되지 않는 게 위험 요인이다. 또 활동과 쉼, 일상의 경계를 세우기가 어렵다. 예컨대, 피해 당사자를 지원하거나 연대하는 일을 하는 분은 퇴근했다고 도움 요청이나 하소연하는 연락을 안 받을 수 없을 거다. 또 여러 활동가들이 활동가 자격에 대해 엄정하다. 사실 그게 있어야지 이 어려운 일들을 지속할 수 있을거다. 하지만 한편으론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수용하기보다는 더 잘했어야 한다고 자책하거나 비판하게 하는 면도 있다.
이제껏 상담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모든 한 분 한 분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다. 그래도 회복의 과정을 같이할 수 있을 때 보람차다. 예를 들어서 더 이상 활동을 못하겠다고 소진된 상태에서 오신 분이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그만두고 다른 단체로 가셨다.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자체를 어려워 하셨는데 상담을 하면서 힘이 생겨서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거다. 그러고 조금 쉬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 자신이 조금 더 하고 싶거나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리로 가셨다. 내가 여기를 그만두면 세상이 끝날 거 같고 여기에 쏟아부었던 에너지와 시간과 네트워킹되어 있는 모든 관계가 다 조직 안에 있는데 그럴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데 그만둬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쉬면서 조금 더 넓게 세상을 조망하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과정을 상담사와 함께 하는 게 의미 있다고 느낀다.
※ 이번 기사는 연대의 구심점을 만드는 상담사(2)로 이어집니다.
글. 양수복 | 사진. 김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