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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3

늦더라도 제대로 된 용산공원을 바란다

2022.04.22

[© 사진제공. 녹색연합]

빈칸이라는 공간, 용산미군기지
언론은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시끌벅적한데 바로 옆 용산, 지하철 녹사평역 옆에 사는 필자는 멀리 국회의사당 내에서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일처럼 외딴곳에서 벌어지는 먼일로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윤석열 당선인이 가겠다며 이야기하는 지역은 단 한 번도 내가 시민으로서 누려보지 못한 공간이다.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용산미군기지는 감각의 빈칸이다. 남산 자락에 서서 바라보는 용산 풍경에 자리 잡은 금단의 공간 메인포스트는 그저 끼어 있는 낯선 도시의 사진 같을 뿐이다.
갑자기 끊기며 둘로 나뉘는 동작대교를 지날 때도, 용산과 신용산역이 나란히 붙어 있는 비효율적인 대중교통 동선에서도, 기름 냄새가 나는 집수정을, 정부가 가린 곳들을 지날 때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다. 당연한, 또 익숙한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한 빈칸이었다. 이 비어 있는 감각 자체를 이상하다고 되돌아본 건 녹색연합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때부터다.

짓밟히고 버려지는 것이 일상인 땅
미국이 내가 숨 쉬고 발 딛은 땅에 한 짓을 알게 되면서 오래도록 이어지는 무책임한 폭력에 분노했다. 미군기지 바로 옆 녹사평역 공사를 하면서 원유국도 아닌데 지하수에서 기름을 발견해야 할 만큼 기름 범벅인 땅이 드러났다. 이후 녹사평역 옆에 기름에 오염된 지하수를 모아두는 집수정이 생겼고, 일주일에 한 번씩 탱크로리 차량이 와서 지하수를 양수하는 정기적인 관리도
이어지고 있다. 한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주한미군은 한국의 환경 법령을 존중한다’는 환경 조항이 있다. 그러나 녹사평역 근처에는 1급 발암물질 벤젠이 기준치의 1100배 이상 검출되기도 했다. 1100배라니. 고속도로에서 10%(1.1배) 이상 기준 속도를 넘어도 벌금을 낸다. 그런데 1100배다. 미국에서 ‘존중’이라는 단어의 뜻은 우리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YRP)을 체결하면서 역대 정부는 모두 금방이라도 용산미군기지 터를 돌려받을 것처럼 행동했다. 협정에 따라 그동안 혈세로 미군을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최신식 평택기지를 만들었다. 당연히 그곳에 터를 잡고 있던 사람들은 쫓겨나고 고향을 잃었다. 한국이 혹독하게 협정 내용을 이행하는 동안 미군은 용산 내 기름 오염을 묵인했다. 미 국방부에 정보 공개를 요청해 취득한 1990~2015년의 극히 일부 자료에만도 84건의 오염 내용이 있었다. 미국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단 5건만 알렸다.
용산기지 내부의 땅은 기름으로 덮여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중 84건은 미 국방부 보고서를 통해 알게 됐으니, 미국도 이 실상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상식이라는 게 있다. 친구에게 물건을 빌리면 깨끗하게 쓰고 돌려준다. 망가뜨리면 고쳐주거나 책임을 진다. 그런데 세계 패권국가이자 기축통화를 가진 세계에서 제일 돈 많은 미국은 그러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을 여기서 전제인 친구,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하등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고 봐야 미국의 태도가 이해된다. 우리 땅을 오염시키고 치우기는커녕 한국에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고 있다. 미국은 미군기지의 땅을 식민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사진제공. 녹색연합]

용산 집무실이 아닌 생태공원이 먼저
땅의 오염은 비단 용산기지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반환받을 땅에서도 나타난 문제다. 용산기지는 국내 미군기지 중 가장 많은 토양 지하수 오염 사고가 발생한 곳으로 지난 30년 동안 100건이 넘게 보고됐다. 가장 오염이 심한 공간이기에 협상 과정을 계기로 국내 환경법을 준수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거나 환경 정책을 개선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에 놓여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윤석열 당선인이 들어오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혼자 집무실 이전이 급하다고 이런 절차를 건너뛰고 바로 돌려받겠다고 하고 있다. 우리가 급하게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니 빨리 돌려달라고 한다면 협상에서 환경문제는 한국 정부가 다 책임지기로 하고 받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비로 고작 500억원도 안 든다고 말한 건 용산 땅에 벌어진 일을 당선인이 모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우편번호를 쓰는 곳, 그 이전인 일제강점기에는 주조선 일본군 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이 용산기지다. 미군기지 반환 절차로 100년 이상 국민이 밟지 못했던 군사기지에서 공공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기름 덩어리 땅을 방치하고, 수탈당한 땅의 역사를 기반으로 공원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북한산에서부터 관악산까지 연결된 서울 남북 녹지축과 동서 수경축인 한강이 교차하는 중심에 용산공원이 들어서게 된다. 서울 도심 내에 대규모 녹지 공간을 만드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이 녹지 공간은 시민들의 기억이 되는 공공의 영역을 넘어 대기질 악화와 폭염, 기후변화에 직면한 서울의 허파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생태축으로서 용산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공을 들여 땅을 회복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다 한들 시민과 연결될 수 없는 장벽이 놓여 있다. 오래도록 논의하고 협의해온 데에는 그만한 배경과 사정이 있다. 오염 문제 해결, 생태축 연결과 복원, 근현대사 의미 기록 등 용산을 둘러싼 과제를 푸는 데 집무실 이전에 보이는 의지를 발휘해주어야 할 때다.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73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박이윤정 | 사진제공.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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