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셋이 사는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 남매는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게 된다. 어느 날 고모까지 들이닥치며 할아버지 혼자 살던 쓸쓸한 집엔 다섯 식구의 활기가 피어난다. 식구들은 때로는 티격태격하고, 때로는 아끼고 위하는 정을 나누며 저마다 성장을 이룬다. 한 가족의 여름날을 따라가며 소박한 감동을 안기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개봉을 앞둔 윤단비 감독, 최정운 배우를 만났다.
고등학생 옥주는 아픈 할아버지를 걱정할 땐 나이에 비해 성숙한 것 같다가도 쌍꺼풀 수술을 하게 70만 원만 달라고 하거나 어린 동생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철없고 귀엽다. 어떤 캐릭터로 그리려고 했나.
윤단비 나도 고등학생 때는 또래에 비해 철이 빨리 들었고 성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미성숙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옥주는 두 가지 면이 다 있는 복합적인 나이다. 할아버지를 챙기는 깊은 마음이 있는 반면 쌍꺼풀 수술을 욕망하는 것도 당연하다.
정운 배우는 옥주를 어떻게 해석했나.
최정운 당시 내가 열여덟 살이었고 옥주가 나와 같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옥주는 어릴 때 엄마와 헤어져서 마음속에 상처가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강한 척하는 아이로 봤다. 하지만 센 척해도 엄마를 엄청 보고 싶어 하는, 속은 여린 친구라고 생각했다.
촬영장에서 감독으로서 배우들에게 요구한 디렉션이 있나.
윤단비 사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개인적으로 연출이나 연기 디렉팅을 할 때 배우의 개인적인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크다. 그래서 주로 내 경험을 이야기했다. 정운이도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는 터라 촬영할 때 합의가 충분히 되어서 진행하기 수월했다.
정운 배우에게도 첫 장편영화 현장이었을 텐데.
최정운 단편은 4~5일 찍었는데 장편은 훨씬 장기간 촬영하다 보니 역할에 정도 많이 들고 부담도 컸다. 시간이 갈수록 역할도 나도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았다. 선배들에게 배울 점도 많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감정이 올라와야 하는데 안돼서 힘들었다. 양흥주 선배님과 박현영 선배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위로해주시고 지금 어려워하는 건 당연하다고 기운을 북돋아주셨다.
윤단비 신을 준비하는 동안 잠깐 배우들이 쉬고 있는데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들여다보니까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정운이 대학 입시 고민을 하고 있더라.(웃음) 매우 화기애애한 현장이었다.
동생 동주로 출연한 박승준 배우와 호흡은 잘 맞았나.
최정운 둘이 여덟 살 차이가 나는데 승준이가 아주 솔직하고 가감 없이 표현하는 성격이라 연기가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잘하면 “누나, 잘한다.” 하고 칭찬해줘서 재밌게 찍었다.
할아버지 생신 때 동주가 막춤을 추는 장면이 무척 귀여웠다.
윤단비 시나리오에 춤을 춘다고만 정해져 있었고 승준이에게 편한 대로 추라고 했다. 그런데 부끄럽다며 사전에 절대 안 보여주는 거다. 승준이 어머니한테 집에서 영상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는데 승준이가 안 보여준다고 해서 못 찍으셨다. 현장에서 어색해하다가 자연스럽지 않은 장면이 나올까 봐 긴장했었는데, 막상 촬영하니까 너무 뻔뻔하게 춤을 춰서 다들 진짜로 웃었다. 그 장면은 연출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다.(웃음)
옥주와 동주가 남매인데, 고모와 아빠도 남매다. 두 남매를 등장시킨 의도가 있나.
윤단비 두 남매가 서로 성인 남매의 과거 모습일 수도 있고, 어린 남매의 미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두 남매가 부딪치는 모습이 다르지 않나. 집 문제로 부딪치지만 대처하는 모습이 다르다. 어른 남매와 어린 남매 간 시간의 격차가 느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연출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윤단비 밥 먹는 장면이 많아서 가장 고민했다. 이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선이 뚜렷하기보다 일상적인 사건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신을 찍을 때마다 못 찍으면 지금껏 쌓아온 작업이 무너질 거란 불안이 컸다. 그래서 항상 시간을 얼마큼 들이든, 다른 신을 포기하더라도 매 장면 소홀히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영화를 볼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윤단비 <남매의 여름밤>이 관객에게 오래 남아서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들 때는 관객과 영화제로부터 관심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 수 있지만(웃음) 소수의 관객에게라도 깊게 다가가고 싶다. 어떤 사람에겐 소중한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윤단비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좋아한다. 레퍼런스로 생각한 건 아닌데 내 영화에서 대만 뉴웨이브 무비의 느낌이 감지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나.
윤단비 고3 때까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조바심이 났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고향 광주를 벗어나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고3 2학기 때부터 부랴부랴 준비했다. 그러다가 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를 보고 큰 위안을 받았다. 영화의 세계가 참 좋더라.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져 영화콘텐츠학과에 진학했다.
최정운 어릴 때 드라마 <대장금>을 좋아했고(웃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중학생 때 진로를 고민하면서 취미로 연기 학원에 다녔는데, 연기할 때 가장 재밌고 설레서 배우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고1 때 단편영화에 출연하게 된 거다. 부모님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가 내가 진짜로 영화에 나오니까 신기해하신다.
감독으로서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차기작도 가족영화가 될 가능성은.
윤단비 구체적으로는 정해진 게 없다. 성장영화와 가족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여건이 되면 계속 하고 싶다. 아니면 연애 이야기도 좋을 것 같다.(웃음)
글 양수복
사진 김화경
장소 제공 한평책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