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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6 인터뷰

숲의 아이는 청록색 토끼를 쫓는다 2

2020.10.19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본 기사는 이전 기사 '숲의 아이는 청록색 토끼를 쫓는다 1'에 이어집니다

‘집’은 어쩌면 커다란 껍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자취’라는 단어는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한다는 뜻이지만, 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라는 동음이의어도 있잖아. 자세히 보면 네가 자취하는 곳에서 네 자취가 많이 느껴져.
나를 가두는 곳이기도 하지만 보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 가장 편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 어디서 잠을 자도 여기서 자는 것보다 덜 편하고, 어디서 아침밥을 먹어도 여기서 먹을 때보다는 즐겁지 않길 바라며. 내 방은 ‘반려식물과 수평으로 쌓인 책과 많은 일기와 그림이 곳곳에 숨겨진 곳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가진 재주를 모두 부릴 수 있는 만능의 공간, 손님이 찾아오면 내 토끼 굴에 들어오는 것 같아.

지난해 프랑스를 여행할 때 꼭 좋은 집에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며?
그때 다른 사람들의 집을 볼 기회가 많았어. 집집마다 다른 창문과 벽지의 색깔과 무늬, 액자와 틀 따위를 세세하게 보면서 나도 멋진 집에서 살고 싶었지. 파리에서는 일주일 정도 하녀 방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머물렀는데. 건물 맨 꼭대기의 지붕과 창문이 사선이며, 현관문을 열자마자 침대가 있고 그 바로 옆에 부엌과 화장실이 있으며, 여유 공간에 협탁 하나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방이었어. 당시 나는 사랑에 실패한 상태였고, 마음이 한없이 누추하고 허름한데, 그런 집에서 머물러야 한다니 무척 슬펐지. 그날 고맙게도 아는 언니가 와줘서 같이 잤어. 다음 날엔 오기가 생기더라고. 백화점에 가서 초, 램프, 잠옷, 슬리퍼를 샀어. 언니에게 ‘나 여기서 살아볼래, 집처럼 만들어볼래. ’라고 말했고. 램프를 조립하고 켜두니 조금 괜찮았어. 잠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밥을 해 먹으니 조금 더 괜찮은 거야. 지금은 그 집이 제일 많이 생각나. 지금 내 책상에 있는 램프가 그때 쓰던 거야. 지금 신는 슬리퍼도 그때 산 거고. 이후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지 멋지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말을 들으니 <새들은 세 들어 살지 않는다>는 시가 생각난다. 가지치기 과정이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집에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아. 그때 실연으로 누군가는 떠났지만, 집에 대한 취향과 욕망,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 것이라는, 그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남았고, 결국엔 더 단단해졌지.

네가 이 집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어.
나라에서 무주택 청년들에게 지원하는 ‘청년주택’인데, 엄마의 권유로 일하던 도중에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해서 우체국에 달려가 보냈지. 심사를 통과하고, 최종 추첨에서 당첨됐어. 경쟁률이 147:1이었대.

너는 운이 갑자기 좋으면 왠지 후폭풍이 불 것 같다며 불안해했지. 이후로는 무탈했어?
침실은 각자 따로 있지만, 하우스메이트와 거실, 베란다, 주방, 화장실을 공유해. 처음에는 이 친구와 얼마나 가깝게, 어떤 사이로 지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면서 괴로웠어. 지금은 동거라는 개념에 편안히 녹아들었고, 오늘 하루는 어땠느냐고 먼저 물어보고, 내가 신경 쓰는 만큼 상대도 신경 써주는 사이야. 우리가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는 하우스메이트가 악몽을 꾸고 내 방으로 왔을 때였는데, 감동적이었어. 친구가 무서워서 내 방으로 나를 찾아왔구나, 나는 다독여줄 수 있는 동거인이구나, 나도 무서울 때 쟤 방으로 달려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네가 시기마다 삶의 서사처럼 느끼는 앨범이 있다고 했잖아. 요즘의 나날은 어떤 음악이야?
<정원영 5집>이라고 적힌 앨범. 이사한 뒤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밥을 먹었는데, 그때가 5월 즈음이었지. 친구가 이 앨범의 ‘그 여름의 끝’이라는 곡을 들려줬고, 나는 동명의 시를 읽어줬어. 이제 입주한 지 세 달 정도 지났네, 초여름부터 한여름까지 이곳에 살고 있잖아. 여름을 나고 있어. 그래서 계절이 시작될 때 들었던 앨범이 지금 나의 서사가 되어준다고 생각해. 나는 친구들의 노래를 많이 들어. 인화의 노래나 위수 언니의 ‘편지’, 다린이가 나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저 별은 외로움의 얼굴’ . 집에서 외로울 때면 그래도 나의 외로움을 노래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창밖을 보며 생각해. 멀고 아득한 마음을 노래로 받지. 친구들의 노래가 있어서 감사해.

지금의 토끼 굴에 처음 빠졌을 때를 기억해?
처음에는 벽지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심하게 옥색인 거야. 막상 살아보니 괜찮더라고. 마음이 편해지는 색깔이더라. 베란다가 있어서 좋고, 여기서 처음 노을과 야경을 봤을 때 ‘와, 내가 이런 곳에서 이런 경치를 보다니.’ 싶었어. 지금은 더 좋고 정들었지. 본가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살았던 어떤 집보다,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 살게 될 어떤 집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아. 그래서 더 잘 해놓고 살고 싶어. ‘혜진이 집은 참 혜진이 같다.’라는 말을 가끔 듣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무척 좋아.

모든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싶어?
하얗게 칠한 벽에 아주 큰 서재를 두고, <줄리 & 줄리아>의 셰프 줄리엣 차일드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물이 많고 빈티지한 부엌에서 요리하면서 살았으면 해. 모든 좋은 것은 식사에 있는 것 같아.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식사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부 초대해서 아주 긴 탁자를 놓고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내가 찾아뵐 때마다 외할머니가 너무나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셔서 하루는 여쭤봤어. 어떻게 이렇게 요리를 잘하시느냐고. 나를 생각하면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어.
나도 외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다.(웃음) 집에 사람을 초대하면 음식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해. 그 사람들이 내 음식을 먹고 기뻐했으면 좋겠고, 배가 불렀으면 좋겠어.


조은식
소개말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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