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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9 에세이

지옥고와 200만 원

2020.11.25 | 지방 청년 이야기를 시작하며

청년 세대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참 오래 들었다. 대학에 들어가자 청춘 시트콤 <논스톱>에서는 “청년실업이 40만인데…”라는 말을 했다. 졸업하자 우리 세대가 한 달에 88만 원밖에 벌지 못할 거라는 <88만원 세대>의 경고를 들었다. 청년 노동자를 프레카리아트(취약 노동자)이자, ‘워킹 푸어(근로 빈곤층)’라고 불렀다. 청년은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취직을 하자 집을 물려줄 수 있는 부모와 조부모를 가진, 즉 금수저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흙수저 청년들은 ‘지옥고’(지하, 옥탑, 고시원)을 전전하게 됐다는 말을 듣게 됐다. 단 한 번도 청년들의 현재가 괜찮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어쩌다 보니 또래들은 어른이 됐다.


세대론을 펼치려는 건 아니다. 세대 전체가 착취당하고 빈곤에 허덕인다는 말은 참으로 강력하다는 사실은 짚고 가고 싶다. 기성세대는 양보를 해야 할 것 같고, 정부는 청년을 지원하기 위해 눈에 띄는 ‘액션’을 하려고 애를 쓴다. 정당들은 선거만 있으면 ‘세대교체’를 전면에 내세워 얼마나 청년 친화적인지를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9월 국무조정실 하에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일자리, 주거,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 관점’을 통해 정부의 정책과 예산을 조정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청년이 ‘어떤 청년’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다. 그나마 수저 계급론처럼 청년의 상태를 부모의 자산과 소득, 그리고 그를 통해 만들어놓은 ‘스카이 캐슬’ 속에 있는 사람의 승리와 아닌 사람들의 박탈감을 대조시키는 일종의 계급적인 관점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 점령’을 외쳤던 아이비리그 대학의 학생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1%의 부자가 99%를 독식하는 상황을 규탄하며 학자금 대출로 빚더미에 쌓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월가를 규탄한 학생들 중 많은 수는 실리콘밸리에 취업하거나 로스쿨을 졸업해 상위 10% 전문직과 지식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는 미시간-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 이른바 러스트 벨트의 ‘보통 청년’들과의 접점은 없었다. 월가를 점령하겠다는 청년들은 신자유주의를 물리쳤을지는 몰라도, 생산직 노동을 하거나 우버 기사를 하는 평범한 청년들과는 만날 수 없었다. 수저 계급론은 수저의 은유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상위 10% 고학력자가 상위 1%와의 공정한 경쟁을 말하기 위해 동원되는 레퍼토리로 전락한다. 언제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할 뿐 경쟁하지 않는 사람들은 애초에 배제해버리니 말이다. 수저론의 한계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진짜 청년이 아니다
즉, 청년에 대한 이야기 대부분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우선 청년들이 살고 있는, 일하고 있는 곳의 장소성이 없다. 우리는 독립한 청년들의 거주지가 지하방이거나, 옥탑방이거나, 고시원 중 하나일 것이라고 전제하지만 수도권을 벗어나면 그런 주거에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500만 원 보증금에 20만 원 월세를 내면 6평 이상의 원룸에 살 수 있다. 대학생도 직장인도 주거를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서울 대학가의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40~50만 원을 내고 살아야 하는 원룸 상황을 비교하면 주거비 부담의 수준이 다르다. 집을 지을 때 애초 반지하를 짓지 않고, 단독주택의 집주인들은 옥탑방을 구태여 임대로 내놓지 않는다. 지역 간 차이를 무시하고 일반적인 청년의 주거 문제가 등장하다 보니 수도권 청년들의 주거만 과대 대표된다. 두 번째로 상위 20%의 ‘선망직장’(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80%의 청년들의 이야기가 없다. 평소에는 잊혀 있다가 산재가 났을 때, 광주형 일자리 같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개시될 때,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만 갑자기 ‘청년 노동자’로 등장한다. 월급 200만 원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퇴근해서 친구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2020년 동시대의 일상을 영위하는 청년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요즘 중·고등학교 한 반에는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다. 그중 앞에서 5~6명은 서울과 수도권의 대학, 때때로 지역거점대학으로 진학한다. 대학 진학률 70%의 한국 사회에서 나머지 25명 중 20명도 지방대학에 진학한다. 누군가는 수도권에서 밀려나간 ‘복학왕’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집에서 가까운 대학으로 진학한 지역의 학생일 수도 있다. 나머지 5명은 바로 일터를 향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5명들이 취업하고 싶어 하는 ‘인국공’이나 ‘대기업’ 문턱이 높아지거나 공정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문제인가. 아무 상관없이 살고 있는 20명은 청년이 아닌가? 사실 이 나라의 청년 다수는 그들이 아닌가.

앞으로 수도권 바깥에 있는 80%에 속하는 다수 청년들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겪게 되는 지역에서의 일상에 대한 사연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을 해보려 한다. 지역의 청년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지역 간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일터에서의 성차별, 저출생 고령화, 제조업의 현 수준 등에 대해서도 다르게 볼 수 있게 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서 나고 자라 경남과 서울을 버스와 기차로 오간 지 10년째가 되어간다. 지방살이의 처음에는 직장인, 지금은 연구자. 엔지니어와 제조업 그리고 지역의 일자리를 연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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