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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2 스페셜

어쩌다 발견한 고양이

2021.01.15 |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 리뷰

어쩌다 ‘냥줍’한 고양이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다. 우연히 길냥이 밥을 만난 홈리스 제임스 보웬은 밥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살피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거리에서 잡지를 팔고 버스킹을 하고, 꼬여가던 인생을 바꾸기 위한 마약중독 치료를 시작한 제임스의 어깨 위엔 언제나 밥이 있었다. 밥은 제임스에게 친구, 그 이상이었다. 거리의 마스코트가 된 밥은 여러 차례 《빅이슈》 표지를 장식했을 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둘의 이야기는 책과 영화로 만들어지며 큰 감동을 안겼다. 제임스가 삶을 포기하지 않게 했던 밥, 그가 쏘아올린 작은 용기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가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세상 사람들이 가족, 친구, 연인과 “메리 크리스마스!”를 연호할 때 성대한 만찬은커녕 당장 먹을 저녁거리도 없고 즐거운 이벤트는 언감생심인 거리의 빈곤층에게 명절은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키는 날일 뿐이다. 제임스 보웬(루크 트레더웨이)에게도 그랬다.

전편에서 노숙하던 시절부터 어깨 위 고양이 밥과 함께 《빅이슈》를 판매하는 버스커로 화제가 되어 책을 출간하고 마약중독을 극복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르는 제임스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담았다면, 속편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A Christmas Gift from Bob)>에선 제임스와 밥이 처음으로 함께한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짧은 기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번 영화를 기획한 프로듀서 애덤 롤스턴은 속편 제작을 위해 책 <밥의 선물(A Gift from Bob)>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는 전편에 버금가는 흥행을 기대하며 연말연시 극장가를 겨냥한 영화다. 밥이 제임스를 집사로 간택해 서로가 서로를 살리게 된 놀라운 실화 바탕이어서 ‘기적’을 이야기하기에 제격이다.

밥과 만들어가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영화가 보여주는 제임스와 밥이 함께 맞은 첫 크리스마스는 녹록지 않다. 에세이 <내 어깨 위 고양이, 밥(A Street Cat Named Bob)>을 쓰기 전 제임스는 생활비 걱정으로 패닉에 빠지고, 돈을 벌기 위해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빅이슈》를 팔아야 하는 빈곤층이었다. 게다가 그는 크리스마스에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떠올리는 크리스마스는 정신병원에서 깨어난 날이거나 아빠가 옆에 있기를 바랐지만 전화로만 연락할 수 있는 쓸쓸한 날이었다.

과연 제임스에게도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찾아올까?

기적이 찾아오려면 시련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영화는 중반까지 제임스에게 닥치는 고난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끼니 걱정, 밥의 의료비 걱정 등 가난 때문에 비참한 순간을 수없이 맞닥뜨리는데, 어느 때보다 제임스가 정신적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하는 건 고양이 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다.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동물보호국 직원 한 사람 때문에 밥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진 것. 이 직원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임스와 밥 사이를 갈라놓을 힘을 가진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동물보호국의 다른 직원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유명한 고양이를 잡아가 매스컴을 타는 상황을 꺼리기 때문에 그 직원 혼자만 딴지를 걸어 고난의 드라마는 약해진다. 엄청난 시련이 없어 크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건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설정상 외부 환경의 압박보다는 원래 불안정했던 제임스의 심리 상태가 더 불안하게 다가온다. 다른 집이라면 밥이 지금보다 더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의 환경을 자조하기 때문이다.

제임스를 지지하는 친구들, 비와 무니 그리고 밥
제임스가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건 주변 아시안 이웃들의 존재다. 전편에서 밥을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제임스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지원 주택 이웃 ‘베티’에 이어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에선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비’(크리스티나 톤테리 영)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모디’(팔두트 샤르마)가 등장한다. 흥행 성과를 거둔 중국과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설정으로 보인다. 중국과 필리핀 혼혈인 배우 크리스티나 톤테리 영이 연기하는 비는 가난한 제임스에게 필요한 무료 반려동물 의료 서비스 정보를 알려주고 동물보호국에 밥과 제임스의 신뢰 관계 대해 증언하는 등 둘 사이를 지지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비라는 인물은 입양아라는 사실 외엔 개인사가 밝혀지지 않고 감정 변화를 드러내는 장면에 대한 부연 설명도 없다. 제임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설정된 캐릭터이지만, 비를 위한 서브 플롯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한편 남아시아계 이민자로 추정되는 무니 아저씨는 제임스가 인생의 풍파에 흔들릴 때마다 교훈적인 옛이야기를 들려주어 상황을 곱씹어볼 수 있게 한다. 이웃들의 조력으로 제임스는 크리스마스라는 쓸슬한 명절의 기억을 따뜻한 환대의 자리로 바꿔놓을 수 있게 된다. 따뜻한 집에서 친구들과 만찬을 나누는 제임스와 밥의 크리스마스는 소박하고, 그래서 더욱 뭉클하다.

전편에 이어 실화의 주인공 밥이 본인을 연기했고, 대역으로 생김새가 닮은 여섯 마리 고양이가 함께했다. 일곱 마리 고양이 배우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고양이 밥은 여전히 귀엽고 위풍당당하다. 크리스마스가 연상되는 빨간 옷을 입은 밥은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픈 연기를 펼칠 땐 힘들어하는 밥을 안고 병원으로 내달리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메소드급 연기를 해낸 밥은 2020년 6월, 열네 살 나이로 안타깝게도 제임스 곁을 떠났다.

그의 친구 제임스를 넘어 온 세상에 기적 같은 이야기로 감동을 선사한 밥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슬프지만 우리는 이 영화 덕분에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밥의 마지막 선물일지 모른다. RIP, Bob.

전체 관람가 / 2020년 12월 24일 개봉


양수복
사진제공 (주)블루라벨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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