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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3 에세이

세 가지 소원

2021.02.05 | 양수복의 일상수복

해가 저물고 새해가 떠오르던 12월 31일 자정 녘부터 1월 1일 새벽녘까지, 신나게 카운트다운을 하고는 복잡한 마음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화두는 목표였다. 올해는 뭘 하지? 아니, 뭘 달성하지? 2020년은 부침이 많은 해였다. 공부니, 친목이니, 운동이니 계획했던 모든 것을 코로나가 날려버렸다. 때때로 짜증이 솟구쳤지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신년계획의 상당수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처럼 다이어리 앞장에만 아련하게 남아 있기 마련인데, 코로나는 적극적으로 탓할 구실이 됐으니까.

2021년은 달라야 했다. 성취 없이 보낸 2020년을 만회하려면 올해 더 바삐 움직여야 했고, 작심삼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설정된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먼저, 운동과 식이요법.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 ‘복부비만 위험’이라 쓰인 결과지를 받아들고 충격과 혼란에 빠졌던 터라 가장 먼저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지방 3kg 감량이 됐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가 지속되고 있어 체육관에 나가지도, 한파 탓에 야외 운동은 꿈도 꿀 수 없어서 방치됐던 아령을 꺼내 격일로 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번째 목표는 한국인의 영원한 숙적, 영어 공부다. 초등학생 때부터 배웠던 영어를 도대체 언제면 잘하게 될지, 언제면 제대로 써먹을지 모르겠는데 올해의 목표도 영어 공부다. 탁월한 결정 하나는 미드와 팝송으로 실생활 영어 표현을 공부하겠다는 자기기만은 그만두고, 돈을 쓰기로 한 것이다. 분명 혼자선 차일피일 미룰 거고 그런 내가 부끄러워 술이나 마시고 잊으려 하는 <어린왕자> 속 술꾼처럼 될 게 뻔하니까 원어민과 채팅을 하면서 어휘와 표현을 숙지하는 서비스를 결제했다. 두어 번 시도해본 결과는 썩 긍정적이다. 원어민의 하이 텐션을 감당하기 어렵긴 해도 중저음의 목소리를 단전부터 끌어올려 온갖 과장스러운 수사를 쓰는 게 꼭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재밌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
마지막은 꾸준히 적금 붓기라는 소소한 목표다. 좋아하는 여행도 못 가겠다, 버는 족족 써버리는 건 그만하고 미래를 생각해 목돈이란 걸 모아봐야겠다고 결심했건만, 얼마 전부터 방해하는 존재가 생겼다. 바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혹은 ‘N잡’을 통한 수입 파이프라인 다변화로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해서 번 수익, 곧 ‘패시브 인컴’(일해서 버는 돈인 ‘액티브 인컴’과 구분해 부동산 임대료, 저작권 로열티, 이자, 배당 등 일하지 않고 얻는 소득)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게 되면 월급은 푼돈처럼 느껴지고,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푹 빠진 사람들이 주 40시간의 노동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아니, 전 국민이 주식 투자를 하고 불로소득을 기대하면 어디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또 잡지는 누가 만들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달콤한 말들에는 영 마음이 가지 않는다. ‘N잡러’가 되면 N개의 일을 더 해야 하는데, 노는 게 너무 좋은 나는 그 시간에 만화책을 읽고 아무도 안 읽을 일기나 쓰면서 여가를 즐기고 싶다. 누군가는 바보라서 돈을 못 번다고 하겠지만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주식이나 경매, 부동산에 뛰어들기 싫은 건 누군가 가지면, 누군가는 잃는 제로섬 게임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정적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데 열중하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다. 누구 한 명이 집을 열 채 가지면 다른 아홉 명은 평생 남의 집 월세를 살아야 한다. 누군가 주식으로 시세 차익을 얻으면 주가 폭락으로 전 재산을 잃는 사람도 생긴다. 안 그래도 불균형한 세상에 굳이 나까지 불균형에 기여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정리했다. 뛰어든다고 부자가 되리란 법도 없겠지만 그 시간에 올해의 목표인 운동과 영어 공부, 그리고 가진 돈이나 잘 지키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 같다는 결론과 함께 유튜브 상단에 뜬 ‘주식으로 부자된 썰’ 동영상에 ‘관심 없음’을 클릭해 지워버렸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없는 구조 안에서 아득바득 모든 수단과 자원을 활용해봐야, 올해 안에 복부비만에서 탈출하고 영어를 꽤 잘하게 되는 편이 훨씬 가망 있을 거다. 버는 한에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성취하면서 뿌듯한 마음을 느끼는 것. 목표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가치관에 따라 살기일지도 모르겠다.


양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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